[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이번 의사 3명의 실형 판결은 이례적으로 의사들을 법정구속까지 했던 만큼 의료계는 큰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의사라면 누구나 신이 아닌 이상 항상 100%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는 없다. 이번 사건으로 의료계는 짧은 시간 내에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국내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이번 사건이 곧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바른의료연구소는 1일 보도자료를 통해 “부당한 판결로 억울하게 구속된 의사들은 구속의 사유가 없기 때문에 마땅히 풀려나야 한다”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대부분의 의료분쟁에서는 업무상 과실치사가 인정되더라도 벌금형이거나 집행유예를 통해 인신구속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번에 구속된 의사 3명 역시 각각 자신의 상황에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정황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특히 “드문 질환인 횡격막 탈장을 확실하게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사들에게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하는 것은 부당하다”라며 “의사들은 일반적인 의학적 수준과 의료 환경에서 벗어나지 않는 의료행위를 했지만, 이를 업무상과실치사로 처벌하는 것은 대법원 판례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이번 사건의 철저한 재조사 및 의학적 재검토를 촉구했다. 연구소는 “부검이 이뤄지지 않았고 횡격막 탈장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조차 규명되지 않았다"라며 "앞으로도 이번 횡격막 탈장 사건의 추가적인 의문점과 부당한 점들을 밝혀나가겠다. 사법부의 공정하고 현명한 판단을 요구한다”고 했다.
앞서 지난 10월 2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2013년에 발생한 8세 어린이 사망 사건과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의사 3명에게 1년 이상의 금고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의료진이 제 때 진단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횡격막 탈장을 놓쳤다. 탈장에 의한 합병증으로 환아가 사망했기 때문에 주의의무 위반에 의한 업무상과실치사”라고 밝혔다.
①호흡기 증상 없는 폐렴 이상소견
연구소는 “환아는 처음에 병원을 방문했을 때 폐렴과 관련된 발열, 기침, 가래, 호흡곤란 등의 증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복통만을 호소했다. 추가 검사가 필요 없었다”고 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X-레이에서 폐렴이 의심되더라도 관련된 증상이 전혀 없다면 자연회복 단계일 수 있고, 추가 검사 없이 경과 관찰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연구소는 “흉수와 폐렴 소견은 복통과 관계가 없다. 이에 대해 추가검사를 시행하지 않았다며 주의의무 위반으로 보는 것은 의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당시 환아의 증상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소아과 전문의는 5월 27일 환아를 외래에서 처음 진찰하고 경과를 보기 위해 2일 후인 5월 29일 병원에 다시 방문할 것을 권고했다. 환아는 3일 후(5월 30일)에 내원했으나 3일 전과 비교해 증상 변화가 없었다.
연구소는 “소아과 의사는 처음부터 복통과 흉부 X-레이 판독결과의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해 환자를 진료했을 수 있다. 특별한 활력징후(vital sign)나 증상 변화가 없는 환아에게 추가적인 진단검사를 한다면 과잉진료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소아에게 전단화단층촬영(CT) 검사를 한다면 방사선 피폭을 우려하는 보호자들이 많다. 소아과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만 방사선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연구소는 “소아과 의사는 환아 보호자에게 6월 4일에 외래를 재방문할 것을 권고했지만, 환아는 외래를 방문하지 않았다(6월 8일 응급실 방문, 9일 사망)”라며 “만약 환아가 6월 4일에 소아과 외래에 방문했다면 소아과 의사는 환자 상태를 제대로 진단했고, 후속조치를 취했을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X-레이에서 나타난 질환과 복통의 연관성은 결과를 알고 난 이후에 내릴 수 있다. 이런 판단은 결과를 다 알고 난 이후에나 내릴 수 있는 가설일 뿐”이라며 “일반적인 의학의 수준과 의료환경 등의 조건 등을 고려했을 때 당시 상황을 주의의무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②전공의 진단 책임 부당
연구소는 X-레이 판독에 미숙한 가정의학과 전공의에게 드문 질환인 횡격막 탈장 진단을 놓쳐 형사처벌을 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환아가 6월 8일 오후 3시경 응급실을 재차 방문했을 때 환자를 진료한 의사는 수련을 갓 시작한 가정의학과 전공의 1년차였다. 당시 환아는 이전 세 차례 진료 때와 같이 복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다른 호흡기 증상이나 활력 징후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다 보니 전공의는 환자의 주 증상인 복통에 집중했을 것이다. 복부 X-레이 검사에서 복부 이상만을 집중하느라 흉강 내 이상 소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라며 “만일 이상을 발견했어도 횡격막 탈장과 같은 극히 드문 질환보다 비정상적 횡격막 상승 등 흔한 소견을 먼저 의심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환자에게 호흡곤란이나 활력 징후 이상이 보였다면 해당 전공의는 추가 검사를 하거나 소아과 전문의 등에게 바로 의뢰했을 것이다”라며 “전공의가 변비에 의한 복통으로 진단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해당 전공의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강하게 복통을 호소한다고 판단했고, 급성 복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렸다. 이는 의사로서 주의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횡격막 탈장이 극히 드물다는 것을 고려하면 영상의학과 전문의나 소아외과 전문의가 X-레이를 봤더라도 진단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소는 “환자로 붐비는 응급실에서 극히 드문 질환인 횡격막 탈장을 가정의학과 1년차 전공의가 복부 X-레이 사진만 보고 제대로 진단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라며 “만일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가정의학과 전공의 1년차 1명이 소아 환자를 진료할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 응급의료 시스템과 이를 만든 사람에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③대법원 판례와 기준에 맞지 않아
연구소는 대법원 판례와 법률적인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도 이번 판결은 무리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즉, 최고 수준의 소아외과 및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부과할 것이 아니라, 각자 진료상황에 맞는 주의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의사의 과실을 인정하려면 결과 발생을 예견할 수 있고 회피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과실의 유무를 판단할 때는 같은 업무와 직무에 종사하는 일반적 보통인의 주의 정도를 표준으로 해야 한다. 이 때 사고 당시의 일반적인 의학의 수준과 의료환경 및 조건,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의사가 진료를 할 때 환자의 상황과 당시 의료수준, 그리고 자신의 지식 경험에 따라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상당한 범위의 재량을 가진다. 이는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닌 한 진료의 결과를 놓고 이 중 어느 하나만이 정당하고 이와 다른 조치를 취한 것은 과실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8. 8. 11. 선고 2008도3090 판결, 대법원 2011.9.8. 선고 2009 도 13959 판결)
연구소는 “대법원 판례에 비춰보면 이번 사건 의사 3명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소아과 전문의, 가정의학과 전공의 1년차 등은 각각 당시 의학 수준, 환경, 조건, 행위 특수성 등을 고려한 일반적인 의사의 주의 정도를 표준으로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환아가 사망했다는 진료 결과만을 근거로 진료의 적절성을 평가하면 안 된다. 의사들에게 추가적인 검사를 ‘주의의무’라고 보는 것은 최고 수준의 소아외과 및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부과하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이번 판결은 부당하다”고 했다.
연구소는 “담당판사가 굳이 의사 3명 모두를 법정구속까지 시킨 것은 유족 측이 민사판결을 통해 받은 배상금(1억4000만원) 외에 별도의 형사합의를 하라는 판사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는 일종의 괘씸죄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유족 측과 합의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아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공탁도 하지 못했다. 이에 현재 개원하거나 봉직하고 있는 의사 3명 모두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법정구속까지 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④초기 상태를 최종 진단명에 억지로 꿰맞춰
연구소는 횡격막 탈장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소견이 존재한다는 감정인 중 한 명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 것을 비판했다. 초기 상태만으로 도저히 알 수 없는 최종 진단명을 억지로 꿰맞췄다는 것이다.
연구소에 따르면, 재판부는 5월 27일 응급실에서 시행한 흉부 사진의 이상 소견에 대해 해당 병원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판독결과인 ’흉수를 동반한 폐렴’을 배척했다. 대신 감정인 중 한 명의 의견인 ‘횡격막 탈장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소견이 존재한다’를 그대로 수용했다.
연구소는 “횡격막 탈장이 환아를 처음 진료했던 5월 27일에도 존재했다면 당시부터 환아에게 기침, 호흡곤란, 가슴통증 등의 횡격막 탈장 증상이 나타났어야 한다. 횡격막 탈장의 일반적인 증상을 비춰보면 증상이 점차 악화해 6월 8일까지 환아가 견딜 수 없는 상태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재판부가 당시 추가 검사를 하지 않아 진단을 놓쳤다고 처벌하는 것은 당시 환아의 상태를 횡격막 탈장이 이미 진행하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의미”라며 “그러나 환아 사망은 5월 27일을 기준으로 13일 후였고, 횡격막 탈장은 그 사이 어느 기간에라도 발생했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라고 했다.
연구소는 “일반적으로 폐렴 및 흉수로 오인될 수 있는 횡격막 탈장은 학술지에 증례보고될 정도로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라며 “더욱이 언제 발생했는지 확실히 규명되지 않은 질환을 진단하지 못했다며 의료진을 구속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