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황재희 기자] 신의료기술평가를 사후평가로 전환해 의료현장에서 생산되는 자료(real world data)를 바탕으로 평가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재의 신의료기술평가는 근거를 창출하는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색출하는데 집중하고 있어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07년부터 시행된 신의료기술평가 제도는 새로운 의료기술의 임상적·유용성 평가를 통해 안전하고 유효한 신의료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그러나 의료기술의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전제조건인 신의료기술평가가 의료시장으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규제로 작용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혜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17일 주최한 '신의료기술평가 제도 발전 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네카) 이영성 원장은 "식약처에 허가·신고되는 의료기기 중 약 2%만 신의료기술평가를 시행 한다"며 "세상을 바꾸는 기술은 1%에 숨어있을 수 있다. 행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기회가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혁신적인 방안을 제안하고자한다"고 밝혔다.
신의료기술평가제도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지적에 따라 신의료기술이 현장으로 신속히 들어올 수 있도록 지난 2016년 5월, 법정 평가기간이 1년에서 280일로 단축됐다. 최외진단과 유전자 검사의 경우에는 140일로 단축됐으며, 식약처와 네카가 허가·신의료기술평가를 동시에 진행하는 제도인 허가평가 원스탑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
이 원장은 "그럼에도 신의료기술평가제도에 대한 개선의 요구는 끊이지 않아 네카가 현장의 어려움을 반영해 제도개선에 대한 방안을 제안하겠다"며 "먼저 의료기술평가를 사전평가에서 사후평가로 전환해 real world data를 바탕으로 평가에 활용해야 한다. 지금은 해당기술에 대한 근거를 확인하기도 전에 외국의 논문이 없으면 평가에서 다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과감히 열어서 단계적으로 허용 가능한 기간 하에서 의료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현장의 데이터로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면서 "최근 면역항암제의 경우, 복지부가 허가초과사용을 해도 보험급여로 인정하도록 92개 의료기관을 선정했다. 이와 같은 좋은 사례를 신의료기술평가에도 적용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신의료기술을 먼저 사용할 수 있는 기관을 지정하고, 여기서 생성되는 데이터로 사후평가를 해보자는 설명이다. 이영성 원장은 "공공병원이나 연구병원 등을 지정해 적용해본다면 의료기술이 시급한 환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따라서 데이터를 어떻게 모을 것인가 하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인데, 네카는 자료를 연계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며 "사후에 이러한 자료를 받아오기 위한 법적 근거는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복지부와 식약처가 사전협의를 통해 사후평가를 실시할 기관을 지정하면, 이 자료들을 네카에서 모아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참여병원의 아카데믹 CRO를 이용하면 자료를 모을 수 있다"며 "또한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평가해 건강증진, 만성질환관리, 장애재활 등에 타겟 비즈니스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가치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밝혔다.
'신의료기술평가제도에 대한 업계의 시각과 대안'에 대해 발표한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보험위원회 이상수 부 위원장도 "지금 전 세계 헬스케어 산업 동향을 보면, 과거에는 에비던스(evidence)인 근거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벨류(value)기반이 중요시되고 있다"며 "실제로 가치기반의 신의료기술평가가 기존의 근거기반보다 더 많은 근거를 창출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의료기술평가의 사후평가에 대한 기준과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명화 국가연구개발분석단장은 "사후평가를 도입했을 때, 실제로 환자들에게 해당 의료기술이 안전하지 않거나, 기대했던 것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며 "그렇다면 이 기술을 평가해 퇴출까지 연계할 수 있는지 등도 고려해야 하는 엑시트(exit)제도 설계도 분명히 필요하다. 더불어 안전성과 유효성을 업체가 자율 규제하는 등의 문화도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중앙대 의대 김재규 교수는 의료인의 관점에서 새로운 의료기술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은 실제로 중요함을 언급하며, 사회적 합의 또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국가적으로 가치기반의료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사후평가를 통해 결과를 내놓는 것이 사회적, 혹은 윤리적 합의와는 다를 수 있다"며 "만약 심박동기를 개발해서 사용했더니 사후에 몇 명이 죽었다더라 하는 이런 것들이 진정으로 괜찮은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료를 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의료를 시행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면 이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 수 있도록 정책당국이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김교수는 "리얼 월드 데이터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 데이터 또한 어떤 방식으로 창출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면서 "만약 의료기관마다 에비던스가 같지 않다면 이를 또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알 수 없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실제로 어렵다. 훌륭한 제도라도 실행이 어려울 수 있다"며 논의가 더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네카의 주장을 상당부분 받아들여 신의료기술평가제도를 개선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곽순헌 과장은 정부의 신의료기술평가제도의 기본방침을 사전허용과 사후규제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곽 과장은 "첨단의료기술의 경우 문헌근거가 쌓이기도 전에 평가에서 배제돼 문헌근거를 축적할 기회도 상실하고 있다. 근거 외에 임상 근거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와 잠재적 가치를 고려해 일단 임상현장에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재평가해 미래유망기술이 신의료기술평가로 사장되지 않도록 방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정부의 정책방향도 포괄적 네거티브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라며 "올해 사전허용 사후규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본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