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그날 밤. 흉부외과 사직 전공의 A씨는 12시간의 진통 끝에 아이를 출산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회복실에서 계엄이 선포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공포에 휩싸였다.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 5항은' 48시간 내 현장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는 처단하겠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남편 역시 사직 전공의었기에 자칫 갓 태어난 아이를 두고 부부가 잡혀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A씨는 8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앞에서 열린 ‘젊은의사의 의료게엄 규탄 집회’에 참석해 그날 느꼈던 감정과 이날 집회에 발언자로 나서기로 결심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집회엔 주최 측 추산 800여 명의 사직 전공의와 휴학생들이 참여했다. A씨의 남편은 집회에 사회를 맡았다.
A씨는 "회복실에서 남편에게 전화해 사태가 진정되기 전까진 집으로 가지 말고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자고 했다. 갓난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두려움이 앞섰다"고 했다.
이어 "솔직히 말하겠다. 며칠 전에 남편이 이 집회에 참여하겠다고 했을 때 가지 말라고 했다. 한치 앞을 모르는 세상인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아이는 어떻게 하냐고 비겁하다 생각해도 좋으니 이번엔 참아달라 했다"고 고백했다.
A씨는 "그러다 아기 수유를 하며 생각했다. 나는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틀린 건 틀렸다고 말하는 부끄럽지 않은 엄마이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A씨는 또 "흉부외과를 꽤 좋아했다. 남들이 기피과다, 낙수과다 해도 나는 흉부외과를 좋아했다. 하지만 나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게 있었다"며 "안정된 커리어,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 경제적 보상, 이 모든 것보다도 옳지 않은 권력에 무릎 꿇지 않을 용기가 나에겐 더 중요했다"고 했다.
이어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모두 나와 같은 마음임을 확신한다. 나는 이제 부모로서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며 "나는 내 아이에게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떳떳하게 가르칠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고 했다.
A씨는 "왜 두렵지 않겠나. 당연히 무섭고 당연히 혼란스럽다. 하지만 옳은 일에는 때로는 희생과 용기가 필요하단 걸 안다"며 "이 여정을 함께하는 여러분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했다.
뒤이어 연단에 오른 흉부외가 사직 전공의 B씨는 포고령에서 전공의가 ‘처단’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다.
B씨는 "나는 우리나라를 너무 사랑했었다. 의학도가 된 그 시점에 나는 이 나라에 헌신하자는 마음으로 정말 필요한 자리지만 힘들어서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는 흉부외과 의사를 꿈꿔 지원했다"고 했다.
이어 "전공의 생활을 하며 힘들었지만 많은 환자들을 만났고, 그분들을 살리기 위해 뛰어다녔다"며 "안타깝게 환자를 잃어 혼자 울기도 해봤고, 건강을 회복한 환자를 우연히 만날 때 너무 기뻐 반가워하기도 했다"고 했다.
B씨는 "그랬던 나와 여러분의 삶은 지난 2월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 의료계엄의 시작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며 "힘들면서 소송이 많아 하지 않던 비인기과들이 필수과라는 멸칭이 생겼고, 그 필수과라는 멸칭조차 정부에 무책임한 발언으로 공부도 못하고 실력도 없는 ‘의새’들만 선택하는 낙수과가 됐다"고 했다.
이어 "환자를 살려보려고 뛰어다니던 우리가 이렇게 국가가 폄하할 정도로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있었나"라며 "우리가 처단할 정도로 잘못된 삶을 살았나. 그렇게 우리가 잘못했나"라고 했다.
B씨는 "(정부는)사과부터 제대로 하라. 덮을 생각하지 말라"며 "비정상적으로 진행한 필수의료 패키지, 의대증원 등 모든 의료계엄을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