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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개혁성공: 일차의료의사 양성에 달렸다

    [칼럼] 정명관 가정의학과 전문의

    기사입력시간 2018-01-04 06:00
    최종업데이트 2018-01-04 06:00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윤영식 기자] 문재인케어를 둘러싸고 정부와 의사단체 사이에 많은 목소리와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차츰 의료수가와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문제라는 쪽으로 입장이 정리되어 가는 것 같다.

    의료전달체계 개편은 문재인케어와는 별도로 지난 2년 동안 논의해 온 결과물로 <의료전달체계 개편 권고문>을 만들었으나, 주로 외과계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급기야 서울시 의사회장은 우리나라는 의원급에 전문의들이 9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개원하고 있어서 전문의 숫자를 조정하고 난 이후에야 의원급에서는 외래를 담당하고 병원급에서는 입원 및 수술을 담당한다는 의료전달체계 개편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과거 30여 년 간 전문의 개원 문제와 전공의 정원 문제에 관해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던 의사회가 이제야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이를 핑계로 의료전달체계 개편안을 반대하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전문의들이 자유롭게 개원해서 하고 싶은 진료를 다 하겠다는 핑계에 다름 아닌 것 같다.
     
    그 동안 주치의제도나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라는 말을 할 때 마다 우리나라엔 일차의료의사가 부족하다거나 주치의를 담당할 의사가 부족하다며 불가능하다는 말을 해 왔다. 그러면서도 일차의료의사 양성 계획은 전혀 세우지 않고 오히려 반대해 왔다. 결국 일차의료의사의 증원과 확충이 없이는 의료전달체계 개편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일차의료의사 양성이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필수불가결한 과정이자 전제조건임을 깨닫고 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일차의료의사 양성을 함께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일차의료의사 양성 과정은 그동안 전무하다시피 했다. 우선 의과대학생을 보면, 의과대학 6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3차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의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학실습교육을 받고 졸업하게 된다. 의과대학의 교육 목표가 '양질의 일차의료의사를 양성한다'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의과대학생들이 앞으로 자신이 평생 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 중환자들만을 보다가 졸업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차의료기관에서의 실습 기회가 없는 까닭이다. 필자의 의원에 반나절 실습을 나오는 의과대학생과 이야기를 해보면 일차의료기관이 이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학생이 많다. 일차의료에 대한 교육과 실습이 턱없이 부족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영국의 의대생이 입학하자마자 지역의 의료기관에 2년 동안 2주에 한번씩 실습을 나가면서 지역 환자들을 추적 관찰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전공의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개원의의 90%가 전문의이지만, 전공의 과정동안 거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수술하고 입원 환자 진료를 담당하다가 전문의가 된다. 그리고 전문의 취득 후 병원에서 일하다가 막상 개원하게 되면 그 때부터 선배 의원을 찾아다니면서 귀동냥으로 처음부터 새로 배워가며 개원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일차의료 강국들이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의사, 다시 말해서 주치의 양성 교육을 할 때 수련기간의 절반 가량을 의원급에서 수련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들은 장차 자기가 일할 환경에서 자신이 진료하게 될 환자를 보면서 수련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지금까지 의대생과 전공의에게 일차의료 교육을 제대로 못 시켜 왔을까? 문제는 비용 때문이다. 의대생을 교육하고 전공의를 수련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 그러나 병원에서 전공의를 수련하는 데에 대한 별도의 비용이 지급되지 않는다. 그런 탓에 전공의는 의료인으로서 일을 해 가면서 수련을 받아 왔고, 그 때문에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문제점들이 슬슬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의원급 파견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수련 받을 의원급 의료기관이 있는지?' 하는 문제는 별도로 얘기하기로 하고, 어쨌든 일차의료기관이 의과대학생이나 전공의를 교육하고 수련하려면 돈이 든다. 영국의 경우 의대생 교육비용은 의과대학에서 내고, 전공의 수련은 국가가 일정 부분 비용을 부담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일차의료 강국에서 일차의료 의사 수련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그것이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비용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의대생과 전공의를 교육·수련하기 위해 의과대학 부속병원이나 수련병원을 둔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의 의대생 교육과 전공의 수련이 중요하기 때문에 각 의과대학마다 모델클리닉 설치를 의무화 할 필요가 있다. 의과대학마다 최소한 수련 의원을 10개 정도는 지정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의과대학 부속의원인 셈이다. 직속 부속의원을 많이 설치하기 어렵다면 일부는 일선 의원과 계약을 맺어서 운영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일차의료기관 수련이라고 해서 내시경하는 내과의원에 가서 내시경을 배우고, 비뇨기과의원에 가서 BPH 수술하는 것을 배우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 것은 일차의료가 아니고 병원급에서 수련을 받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서도 일차의료의사 양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의대생과 전공의에 대한 일차의료 교육은 비용 부담 문제와 전공의 정원 조정 등의 문제를 차차 풀어나가면 되는 반면, 우리에게 당장 시급한 문제는 개원의의 90% 정도가 전문의라는 사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일차의료 문제나 의료전달체계 개편안도 항상 겉돌게 마련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문재인케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해야 하고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이뤄지려면 양질의 일차의료의사가 다수 있어야 한다. 대략 전체 의사의 30%에서 50% 정도에 해당하는 일차의료의사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의사 11만 명 가운데 개원의는 3만 5천 명 정도이고, 그나마 가정의학과, 내과, 소아청소년과 등과 같이 비교적 일차의료의사에 근접한 의사는 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적어도 일차의료의사가 3만 명 정도는 돼야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구축된다고 할 때, 개원한 전문의들 가운데 일차의료의사 역할을 하고자 하는 의사를 재교육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이 부분은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동시에 즉시 시작해야 한다. 처음에 개원의 중 일차의료의사와 전문의 비율을 50 대 50 정도로 해서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시작해 나가다가 의료인 재교육과 전문의 정원 조정, 병원의 전문의 채용 등을 통해 10년 내로 그 비율을 90 대 10 정도로 만든다면, 제대로 된 일차의료 정책과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일차의료의사를 확충하고 일차의료의사 양성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 교육의 질을 올려야 하는 이유를 소비자, 국가, 그리고 의사의 입장에서 정리해 보자.
     
    첫째, 소비자가 신뢰하는 일차의료의사를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소비자들은 일차의료를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종합병원으로 몰려간 경향이 있다. 일차의료의사의 질이 높아져서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게 되면 의료전달체계 정착도 그만큼 쉬워질 것이다.
     
    둘째, 국가 측면에서는 문재인케어를 성공시키려면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돼야 하고,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려면 일차의료가 강화돼야 한다. 즉, 양질의 일차의료의사 양성은 문제인케어 성공의 출발점인 셈이다.
     
    셋째, 의대생이나 전공의 등 일차의료의사 교육은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지만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일부 의료기관이 자원해서 사명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증외상센터나 신생아중환자실과 같이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지만 비용 문제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면 수가를 정상화하거나 그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차의료의사 양성도 마찬가지다.
     
    일차의료의사 양성 계획이 없이는 일차의료 정책과 의료전달체계 개편은 공염불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