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실손보험 청구대행의 예상 부작용
현재 대한민국 건강보험 제도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고효율, 저비용의 구조를 갖고 있다. 원가 이하의 저비용으로 언제 어디서나 전문의를 바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효율을 보인다. 이런 구조를 가능하게 한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보험금 청구 대행법이다.
환자는 병원에서 의료행위를 받고 일정 부분의 본인부담금만 병원에 지불한다. 나머지 보험 적용이 되는 비용은 병원이 환자 대신 건강보험공단에 청구를 한다. 이 과정에서 건강보험공단은 비용 지불에 있어 환자를 직접 상대하지 않고 병원과 상대한다.
돈을 지불해야 할 대상이 바뀜으로 인해 정부는 국민들의 불만을 직접 상대하지 않으면서 마음껏 비용 통제를 할 수 있게 됐다. 사정이 있으면 돈을 늦게 줘도 괜찮았고, 여차하면 삭감이라는 무기로 이런 저런 기준을 적용해 돈을 주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에 따른 모든 피해는 이미 의료 행위를 공급한 병원이 부담했고, 정부라는 ‘갑’을 상대로 ‘을’인 병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대한민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장 낮은 의료비 지출을 할 수 있었던 묘수 중 하나가 이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구조를 부러워한 건 다른 나라들뿐만이 아니다. 국민들에게 실손의료보험 상품을 판매한 기업들도 이 구조가 너무 부러웠을 것이다. 기업이 보험을 운영하는 것은 국민 건강을 위해 봉사 활동으로 하는 게 아니다. 철저히 이윤 추구를 위해 보험을 운영한다. 보험사들이 보험 운영 자금을 마련하려면 일단 고객 유치를 경쟁적으로 해야 한다.
보험사가 고객 유치를 위해 상품을 만들어 판매했는데, 예상보다 지급해야 할 돈이 너무 많아졌다. 보험사가 고객에게 약속을 지키기 힘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보험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고객들의 항의에 직접 부딪혀야 한다. 아마 보험사는 이 구조를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
보험사는 국민건강보험의 청구대행법을 실손 보험에도 도입하고 싶어했고 이 소망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고용진, 전재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고, 이 법안은 지난 3월 27일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다.
이 제도에 대해 보험사들은 ‘청구 건수 증가로 지급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지급률이란 보험사가 고객에게 받은 보험료 중 보험금으로 지출되는 돈의 비율을 말한다. 다시 말해 지급률이 높아진다는 건 기업의 이윤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보험사들은 그동안 이 지급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해 10월, 지상욱(바른미래당)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의 보험금 지급률은 최대 80%에서 최저 58%까지 회사간 최대 22%의 차이가 났다. 표준 약관으로 통일된 같은 상품을 판매하고도 지급 심사, 약관 심사, 복잡한 청구방법 등을 동원해서 지급률을 낮춘 것이다.
거의 모든 가정에서 팩스 기기를 찾기가 어려운데, 서류 제출을 오로지 팩스로만 받고 받은 팩스 자료를 눈으로 확인한 다음 일일이 수기로 입력하는 직원을 고용하면서까지 청구 방법을 어렵게 유지해 온 보험회사도 있었다.
실손보험 청구 대행이 이뤄지면 보험금 청구 건수가 급증할 것이 뻔한 제도를 보험사들은 환영한다. 그 이유는 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정부처럼 이런 저런 방법으로 지급률을 낮출 수 있다는 확실한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제도는 정부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불합리함을 납득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사기업의 이윤 증대를 위해 국가가 제도적으로 도와줘야 할지는 의문이다.
실손보험 청구대행법이 시행되고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거나 차일피일 미뤄지면 당장 손해를 보는 것은 병원이다. 하지만 그 관행이 지속되면 병원이 의료 행위를 축소하고 지급률이 낮아진다. 궁극적으로 기업은 이윤을 남기고 보험 계약자는 손해를 보게 된다.
기업은 이윤 추구를 위해 존재한다. 이 당연한 전제를 부정하고 싶지도,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기업이 마치 선심을 쓰는 척 하면서 이윤 추구를 버린다는 거짓 주장을 하는 것은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어떤 제도든 장점과 단점이 있는 법이고 그 제도가 가져올 장점과 단점을 국민들에게 모두 정확하게 밝히고 동의를 얻는 것이 마땅하다. 그 단점을 밝히기 어렵다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현재 대한민국 건강보험 제도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고효율, 저비용의 구조를 갖고 있다. 원가 이하의 저비용으로 언제 어디서나 전문의를 바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효율을 보인다. 이런 구조를 가능하게 한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보험금 청구 대행법이다.
환자는 병원에서 의료행위를 받고 일정 부분의 본인부담금만 병원에 지불한다. 나머지 보험 적용이 되는 비용은 병원이 환자 대신 건강보험공단에 청구를 한다. 이 과정에서 건강보험공단은 비용 지불에 있어 환자를 직접 상대하지 않고 병원과 상대한다.
돈을 지불해야 할 대상이 바뀜으로 인해 정부는 국민들의 불만을 직접 상대하지 않으면서 마음껏 비용 통제를 할 수 있게 됐다. 사정이 있으면 돈을 늦게 줘도 괜찮았고, 여차하면 삭감이라는 무기로 이런 저런 기준을 적용해 돈을 주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에 따른 모든 피해는 이미 의료 행위를 공급한 병원이 부담했고, 정부라는 ‘갑’을 상대로 ‘을’인 병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대한민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장 낮은 의료비 지출을 할 수 있었던 묘수 중 하나가 이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구조를 부러워한 건 다른 나라들뿐만이 아니다. 국민들에게 실손의료보험 상품을 판매한 기업들도 이 구조가 너무 부러웠을 것이다. 기업이 보험을 운영하는 것은 국민 건강을 위해 봉사 활동으로 하는 게 아니다. 철저히 이윤 추구를 위해 보험을 운영한다. 보험사들이 보험 운영 자금을 마련하려면 일단 고객 유치를 경쟁적으로 해야 한다.
보험사가 고객 유치를 위해 상품을 만들어 판매했는데, 예상보다 지급해야 할 돈이 너무 많아졌다. 보험사가 고객에게 약속을 지키기 힘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보험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고객들의 항의에 직접 부딪혀야 한다. 아마 보험사는 이 구조를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
보험사는 국민건강보험의 청구대행법을 실손 보험에도 도입하고 싶어했고 이 소망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고용진, 전재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고, 이 법안은 지난 3월 27일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다.
이 제도에 대해 보험사들은 ‘청구 건수 증가로 지급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지급률이란 보험사가 고객에게 받은 보험료 중 보험금으로 지출되는 돈의 비율을 말한다. 다시 말해 지급률이 높아진다는 건 기업의 이윤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보험사들은 그동안 이 지급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해 10월, 지상욱(바른미래당)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의 보험금 지급률은 최대 80%에서 최저 58%까지 회사간 최대 22%의 차이가 났다. 표준 약관으로 통일된 같은 상품을 판매하고도 지급 심사, 약관 심사, 복잡한 청구방법 등을 동원해서 지급률을 낮춘 것이다.
거의 모든 가정에서 팩스 기기를 찾기가 어려운데, 서류 제출을 오로지 팩스로만 받고 받은 팩스 자료를 눈으로 확인한 다음 일일이 수기로 입력하는 직원을 고용하면서까지 청구 방법을 어렵게 유지해 온 보험회사도 있었다.
실손보험 청구 대행이 이뤄지면 보험금 청구 건수가 급증할 것이 뻔한 제도를 보험사들은 환영한다. 그 이유는 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정부처럼 이런 저런 방법으로 지급률을 낮출 수 있다는 확실한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제도는 정부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불합리함을 납득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사기업의 이윤 증대를 위해 국가가 제도적으로 도와줘야 할지는 의문이다.
실손보험 청구대행법이 시행되고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거나 차일피일 미뤄지면 당장 손해를 보는 것은 병원이다. 하지만 그 관행이 지속되면 병원이 의료 행위를 축소하고 지급률이 낮아진다. 궁극적으로 기업은 이윤을 남기고 보험 계약자는 손해를 보게 된다.
기업은 이윤 추구를 위해 존재한다. 이 당연한 전제를 부정하고 싶지도,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기업이 마치 선심을 쓰는 척 하면서 이윤 추구를 버린다는 거짓 주장을 하는 것은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어떤 제도든 장점과 단점이 있는 법이고 그 제도가 가져올 장점과 단점을 국민들에게 모두 정확하게 밝히고 동의를 얻는 것이 마땅하다. 그 단점을 밝히기 어렵다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