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안유상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한국 의사이면서 캐나다 의사다. 지금은 캐나다 응급의료 시스템에 적응한 상태지만, 그도 한때는 한국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지 못해 안절부절하던 때가 있었다.
안 전문의는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고려대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까지 끝냈지만 캐나다로 건너가 다시 응급의학과 전공의 생활을 최근 마쳤다. 두 나라의 응급의료 체계를 모두 경험한 독특한 이력 탓에 최근 한국의 소위 '응급실 뺑뺑이' 사건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남다르다.
"캐나다에선 환자 이송과 전원 등만 관리해주는 서비스가 따로 있어요. 이를 '크리티콜(CritiCall)'이라고 부르는데, 환자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해서 의료진이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캐나다도 응급환자를 법률상 거부할 순 없다. 다만 환자 이송 등 관련 시스템과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에서 의료기관에게 책임만 떠넘기기 급급한 한국에 비해 캐나다는 환자를 물리적으로 받기 어려울 경우 환자 이송과 전원을 도맡는 서비스가 별도로 존재한다.
의사가 전원 병원을 알아봤으나 마땅한 병원이 없다면 크리티콜에 의뢰할 수 있고 이때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응급환자를 처음 맡은 의사의 전원 확인 사인만 있다면 응급의료 관련 훈련을 거친 간호사와 구급대원 출신으로 이뤄진 크리티콜 전원 인력들이 이송을 책임진다.
응급실 의사 부족에 따른 문제도 주나 연방정부 차원에서 즉각적으로 이뤄진다. 일시적인 인력 공백을 매우기 위해 상시로 파트타임 형식의 인력 채용이나 이동이 이뤄지며 이 경우 평소 2~3배의 급여가 제공되기 때문에 인력 부족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안 전문의는 "한국에서 최근 응급실 뺑뺑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여러 정책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물론 타당한 내용도 있지만 우려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에 앞서 병원과 의사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응급실 의료진이 환자를 받을 수 있고 당장 받기 어려운 곳은 환자 이송이 원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 개선부터 선행돼야 다"고 말했다.
더욱이 캐나다는 응급의료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적 결과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지우지 않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응급의료의 특성상 환자 초진 과정에서 100% 병명을 진단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한국에선 이에 대한 법적 공방이 자주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2013년부터 4년간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판례가 670건에 이른다. 최근에도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3년차 전공의가 응급진료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반면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경우 지난 108년간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이 1건에 불과하다.
안유상 전문의는 "캐나다에선 일부러 마음먹고 환자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이런 점이 개선되지 않으면 응급실 의사로 살아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만 형사적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대신 면허관리기구 같은 곳에서 자정작용이 이뤄진다. 이런 부분이 한국에서도 실행되기 위해선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며 "공정성을 인정받기 위해 대한의사협회도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안유상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Q. 의사로서의 히스토리가 특이하다고 들었다. 간단하게 소개해 줄 수 있나?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한국으로 돌아와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고려대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을 했고 전문의 취득을 한 후엔 다시 캐나다로 이주해 오타와대학병원에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생활을 다시 시작해 최근 끝마쳤다.
Q. 최근 한국 응급실에선 환자 이송과 전원 문제가 이슈다. 캐나다 응급의료체계에서 환자 이송은 어떻게 이뤄지나?
캐나다는 일단 응급의료기관에 환자가 도착하게 되면 무조건 담당의사 배정이 먼저 이뤄진다. 응급실이 포화상태여서 만약 전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져도 환자를 담당하는 의사의 사인이 있어야 전원이 가능하다. 환자를 누가 처음 받았는지, 상태가 어떤지 확인 전원 받는 병원 의사 이름도 있어야 다른 병원으로 구급차가 출발할 수 있다.
Q. 또 다른 병원으로 응급환자가 이송되는 과정에서 소위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나?
주 단위로 약간 차이는 있지만 온타리오주 같은 경우는 환자 이송과 전원 등만 관리해주는 서비스가 따로 있다. 환자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해서 의료진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를 '크리티콜(CritiCall)' 서비스라고 부르는데, 중증환자가 아닌 경우 의사가 전원 병원을 알아봤으나 받아주는 병원을 찾지 못하면 크리티콜에 의뢰하면 바로 도와준다. 크리티콜 전원 인력은 굉장히 고도의 중증의학 훈련을 거친 간호사 및 구급대원 출신 인력으로 최소한의 훈련을 받은 한국 사설 구급차 이송과 차이가 크다.
이송 과정에서 가끔 의사가 따라가기도 하는데 의사가 같이 가지 않아도 24시간 당직을 서고있는 응급의학 및 중환자의학 전문의의 실시간 자문을 얻을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져있다. 필요하다면 이송하게 될 현장 의사와도 직접 연결이 가능하다.
Q.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캐나다에서 더 적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응급의학과 전문의 트레이닝 자체가 한국에 비해서 훨씬 포괄적이다. 다시말해, 캐나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대부분의 1차진료를 볼 수 있도록 트레이닝 받는다.
세부전공으로 극도로 세밀화돼 있는 한국에 비해 캐나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어느 정도 전과목에 걸쳐 포괄적인 수련을 받는다. 예를 들어 골절에 따른 정형외과적 처치, 임산부 응급환자에 따른 산부인과적 수련, 안과, 소아응급 환자 등 웬만큼 대부분의 진료가 가능하다. 이는 지역적으로 땅도 넓고 인구밀도가 낮은 캐나다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문성은 좀 떨어질 수 있지만 대신 응급실 뺑뺑이 등 공백 문제는 좀 줄어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Q. 캐나다 응급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없는지?
인력 부족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캐나다도 인력 부족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이전부터 그런 경향은 있었지만 코로나를 계기로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인력 부족과 더불어 의료인 번아웃 이슈도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한국은 과별로 진료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면 캐나다는 일부 지방이나 중소병원의 문제다. 캐나다 응급실의 경우 여름 휴가 기간 동안 주말이나 야간 당직 진료를 보지 못해 응급실 문을 닫는 사례가 있는 정도다.
Q. 응급의료인력 부족 문제 해결은 어떻게 이뤄지나?
공공의료 시스템인 캐나다 특성상 인력 부족에 대한 해결은 주나 연방정부 차원에서 긴급하게 이뤄진다. 캐나다 의사의 임금은 기본 급여와 수당으로 나뉘는데, 여기서 수당은 환자를 본 만큼 차이가 발생한다. 인력이 부족한 지역의 주는 관련 예산을 늘려 급여 또는 수당 부분을 높여서 추가 인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일례로 정부가 운영하는 포탈이 있는데 여기에 어느 지역 응급실 공백이 발생한다는 정보가 뜨면 파트타임 개념으로 2~3배 정도 급여를 주고라도 인력을 채용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이런식으로만 일하는 이들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고자 채용에 제한도 두고 있다.
Q. 캐나다의 의료취약지 해결 대안으로 꼽히는 것은 무엇이 있나?
캐나다에선 도심 이외 지역에서 전공의 수련을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해당 지역에서 수련을 받다 보면 그 지역에 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외에도 온타리오주의 경우 외국 의과대학 졸업생을 받을 때 전공의 과정 졸업 이후 도심이 아닌 지역에서 5년 이상 풀타임 근무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Q. 캐나다와 한국 응급의료 문화차이가 있다면?
캐나다는 의료비가 무료고 정부에서 돈을 대기 때문에 최대한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려는 노력이 많이 보인다. 영국 NHS(국가보건서비스)도 비슷하지만 캐나다도 의대생 때부터 이런 부분을 많이 강조한다.
Q. 한국은 의사에게 응급의료 과정에서 발생한 악결과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지우는 사례가 많다. 캐나다는 어떤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굉장히 드물다고 보면 된다. 일부러 마음먹고 환자에게 해를 끼치려고 작정한 것이 아니라면 의료사고에 따른 형사처벌이 이뤄지는 경우는 없다. 대신 캐나다는 의료단체 안에 면허관리기구가 따로 있어서 문제가 되는 의료인의 면허관리를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캐나다에선 의사단체 홈페이지에 모든 의사의 면허 관련 정보나 처벌과 면허 정지 등 인력이 공지되고 있다. 이런 부분은 한국 정부도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한국 응급의료 시스템 중 가장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거시적인 시스템적 문제는 의사협회와 정부 차원에서 더 세밀하게 따져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응급의학을 전공하고 직접 응급실에서 일을 했던 의사로서 보면 전공의 수련 체계 자체가 살짝 변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응급의료에서 뺑뺑이 등 환자 수용 상황에 문제가 된다고 한다면 캐나다의 사례처럼 응급의학과 수련 과정에서 각 과의 세분화된 진료를 좀더 포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을 도입하는 것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실제 캐나다에서 경험해보니 이런 부분이 병원 내 배후진료 인프라 부족 등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를 '역량바탕 의학교육학 시스템' 구축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