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선 등재 후 평가 제도를 도입했을 때 A7 조정 최저가 수준으로 항암제를 선 등재하면 연간 87억 원 가량의 재정 지출로 암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 암치료 보장성확대 협력단은 18일 롯데호텔서울에서 열린 대한종양내과학회 제16차 정기 심포지움 및 총회에서 '암환자 약제 접근성 확대를 위한 길' 특별세션을 열고, 항암 신약 등재기간 단축을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중앙보훈병원 혈액종양내과 김봉석 교수는 '약제 보장성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과제' 주제발표에서 "암 사망률은 전체 사망률 1위를 차지하고 사망자 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치료에 있어서 가장 힘든 부분은 비용 문제다. 전체 항암 치료 비용 가운데 60%를 비급여 항암제가 차지하고 있다"면서 "괄목할만한 효과를 지닌 약물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어 신속한 급여화가 시급하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약물의 기준비급여 급여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신장암환우회 백진영 대표는 비급여 약제를 1년 이상 장기간 복용하고 있는 환자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암 치료 환경을 살펴보면, 적응증이 허가된 약제는 다수이지만, 정작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돼 환자가 쓸 수 있는 약제는 거의 없다. 비급여 약제는 환자 입장에서 치료비 부담이 상당한데, 중산층도 소득보다 높은 의료비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백 대표는 "4기 암은 완치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환자마다 치료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실제 환자가 본인에게 효과가 있는 치료제가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치료 환경에 맞춰 효과가 입증된 약제는 급여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이대호 교수는 "최근 새로운 항암 신약 개발과 함께 암 치료 전략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국내의 보험급여 제도는 아직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약제마다 성격이 다른 만큼 제도를 다양화해 제도에 맞게 약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접근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약을 구분해서 제도를 접근해갔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중앙대 약대 김요은 교수는 비급여 약제의 신속 급여화 방안 가운데 하나로 선 등재 후 평가 모형의 적용 방안과 재정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현행 제도에서는 의약품 허가를 받은 뒤 제약회사가 약제 급여 평가를 신청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임상적 유용성을 평가하고,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비용효과성을 평가한다. 이후 건강보험공단이 OECD 등 해외 약가를 참조해 제약사랑 가격을 협상하고, 보건복지부는 약제 급여 고시를 한다. 이 과정은 연구 대상이 된 항암제 18종 기준 평균 23개월이 소요된다.
김 교수가 제안한 선 등재 후 평가 모델에서는 암질환심의위원회 평가 이후 먼저 '특정 가격'을 등재 한 뒤 현행 비용효과성 평가 및 협상 절차를 현재와 동일하게 진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건복지부가 후 평가 가격을 고시했을 때 발생하는 차액은 제약사가 부담한다.
김 교수는 "분석 대상 약제 실제 판매량(IMS)를 적용해 산출한 1년간 재정 영향은 A7(미국, 일본, 영국, 독일, 스위스 등) 조정 평균가 약 1370억 원 A7조정 최저가 약 87억 원, A9(A7+호주, 캐나다) 조정 평균가 약 1223억 원, A9 조정 최저가 -111억 원이다"면서 "제도 수용성 및 등재 시기 단축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선 등재 후 평가 모형에 적정한 가격은 A7 조정 최저가로, 이를 적용하면 연간 약 87억 원의 재정 부담으로 환자 접근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A7 조정 최저가 또는 9개국의 조정 최저가 수준으로 항암제를 선등재하면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며 "시급하게 약제를 사용해야 하는 환자 입장에서 항암신약의 환자 접근성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한편, 제약사 환급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의 중립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부 패널로 참석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강희정 실장은 "현재 심평원에서는 신약의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2016~2017년 항암제의 보험 급여율은 거의 배제되는 약제 없이 90% 이상 급여권에 진입하고 있다"며 "항암 신약의 심평원 검토 기간은 약 150일로 내부적으로도 기간을 더 단축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심평원이 단독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 분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는 만큼 합의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곽명섭 과장은 "항암 신약의 신속 급여 등재 방안에 대해 수차례의 개정을 통해 발전하고 있고 최근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며 "선등재 후평가 제도 도입의 경우, 이후 재평가 과정에서 수용되지 않았을 때 환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를 먼저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들을 충분히 두텁게 보호할만한 장치가 있을지가 핵심적인 상황이다"고 강조했다.
또한 허가초과제도와 관련 "허가초과 부분은 보통 보험에서 관리하지 않고 의료계에서 자율적으로 관리하는데 우리나라는 보험 속에서 풀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며 "환자분들과 전문가 분들의 견해 차이가 극렬하게 대비되고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어서 현재 제도개선협의체를 통해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날 좌장으로 참석한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태유 교수는 "일선 의료현장의 목소리가 제도화돼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한국 암치료 보장성확대 협력단의 출범되었다고 볼 수 있다"며 "약의 보장성 강화 정책에 있어서 전문가 집단의 역할도 중요한만큼, 대한종양내과학회도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