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드라마에서도 절대 빠지지 않는 것 #1.
의학드라마에서마저도 드라마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다.
깨끗한 하얀 가운을 입고
머리를 잘 빗어 넘겨 깔끔하게 셋팅한
잘생긴 남자 외과계 레지던트와 미모의 여의사,
또는 간호사와의 로맨스...
" 에이... 저런게 어딨어..."
하지만...
그 깔끔하고 잘생긴 것과 미모만 빼면
현실에서도 로맨스는 존재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감초역할의 웃기는 의사?
물론 그것도 존재한다.
웃기는 방법이 달라서 그렇지...
그 거지같은 인고의 세월도 흐르기는 흐르더라.
어느새 나는 그 이름도 빛나는 4년차 의국장 레벨이 되었고
서울 여의도의 모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stomach cancer(위암)를 주로 수술하는 우리 파트에는
2년차 한명과 내가,
hepatobiliary cancer(간담도계암)를 주로 수술하는 파트에는
1년차 한명과 3년차 한명.
breast cancer(유방암)와 colorectal cancer(대장, 직장암)를 주로 수술하는 파트에는
2년차 한명과 또다른 4년차 한명.
이렇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중 1년차가 조용하고, 수줍음 많고, 예쁘장한 여자아이(?)였다.
이 아이는 사실 외과를 하기에는 너무 여자여자한 아이였는데,
그래서인지 교수님들께 조금이라도 혼나게 되면 같은 파트의 남자 3년차가 안절부절 못하였었다.
난 그게 1년차가 도망 갈까봐 겁내는 것인줄로만 알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지금이야 각 subspecial part 별로 회식도 각각 하지만...
2002년만 해도 외과 회식이면 모든 part가 함께 모여서
거한 저녁회식을 했었더랬다.
( 난 지금도 예전 회식 방법이 더 옳다고 믿는다.)
회식을 하면 당연히 술이지...
1차에서는 고기에 소주,
2차에서는 치킨이나 마른안주에 맥주,
3차에서는 가라오케 비스무리 한 유흥주점에서 과일에 양주...
이미 1차에서부터 얼큰하게 취한 상태라
2차를 어디로 갔는지,
3차에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알 턱이 있으랴?
아무튼 그날은 여러 개의 룸과 중앙에 스테이지가 있는
가라오케가 3차 장소였다.
하필 그날따라 산부인과도 회식이어서
하필 그 장소에서 같이 놀게 되었다.
나야 고매하신 4년차시라
어디 쫄따구들 노는데 경박스럽게 끼겠나?
아랫것들이야 스테이지 가서 흔들고 있을 때에도
난 교수님 이하 스텝, 펠로우 선생님들과
룸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인턴 녀석이 급하게 룸으로 뛰어 들어오더니만...
" 선생님, 큰일 났어요, 싸움 났어요 !! " 한다.
" 뭔 소리야? 누가? "
펠로우 선생님(전번에 얘기 했잖나... 그 남자같은 여선배...)과 황급히 밖으로 나가보니...
이건 한 두 놈이 아니고 패싸움이다.
외과 레지던트 Vs 산부인과 레지던트
어느 놈들을 먼저 말려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떼어놔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찰나...
우리 2년차와 산부인과 4년차가
서로 펀치를 날려가며 내 쪽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잠깐...
이 2년차 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01년 겨울, 내가 의정부 모 병원에서 근무할 당시의 1년차로
어찌나 놀기 좋아하고, 사고치고, 술 좋아하고, 일 안하고 하는
놈인지...
그때부터 ' 이놈 좀 스스로 관뒀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가져왔었는데,
이놈이 또 버티기는 엄청 잘 버티는 놈이라
꾸역꾸역 1년차를 마치고 2년차가 되어
또 나와 같이 여의도로 오게 된 것이었다.( 젠장... )
암튼,
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갈라놓고 나서
이 2년차 녀석을 룸에 밀어 넣는데
갑자기 내 등 뒤에서부터 오른쪽 어깨 위를 지나 맥주병 하나가
이 2년차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2편에서 계속
※’Antonio Yun의 진료실 이야기'의 저작권은 저자인 외과 전문의 엄윤 원장이 소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