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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를 꿈꾸던 아이는 왜 '적폐'가 돼야 했나

    [젊은의사협의체 릴레이 칼럼]① 이원진 젊은의사협의체 보건정책위원장·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부회장

    기사입력시간 2023-06-12 06:52
    최종업데이트 2023-06-13 07:58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젊은의사협의체 릴레이 칼럼
    젊은의사협의체는 지난 4월 대한전공의협의회·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주축이 돼 출범한 단체로, 전공의·공중보건의·의대생·전임의·군의관 등 40세 이하 의사들로 구성돼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주요 의료현안과 관련한 젊은 의사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칼럼을 격주로 게재할 예정입니다.

    ①이원진 젊은의사협의체 보건정책위원장·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부회장 


    [메디게이트뉴스] 한 초등학생이 뺨을 꼬집어가며 졸음을 쫓아내고 공부를 한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꼬꼬마 시절에 밤을 세워가며 중∙고등학교 과정을 선행으로 끝냈다. 이러한 밤샘 공부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해도 큰 차이가 없었다. 어느순간부터 아이의 꿈이었던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기 때문이다.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의사’, ‘소외받는 이들을 치유하는 의사’ 등을 꿈꾸던 아이는 피말리는 노력 끝에 의대에 합격했다.

    이제는 성인이 된 아이는 의대생으로서 마땅히 해야하는 공부에 치이며 바쁘게 살아갔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그저 열심히 환자를 살리겠다고 살아왔을 뿐인데 타인의 눈에는 ‘적폐’, ‘기득권’, ‘돈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이 됐다.

    2020년, 코로나라는 신종 감염병 때문에 방역복을 입고 고생하던 선배들은 4대 악법인 의대 정원 증원, 공공의대 신설, 원격의료 확대, 한방 첩약 급여화를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의대생이었던 청년 또한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휴학계를 내고 시위에 참가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의료진이라고 표현됐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라며 선배들의 코로나 확산 억제를 위한 노력을 폄하했고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선배들을 고발했다. 결국 4대 악법은 철회됐지만 돈밖에 모르는 적폐 세력이 된 청년의 마음은 피폐해져갔다.

    2023년, 이번에는 동료 간호사들이 청년에게 ‘적폐’, ‘ 돈만 아는 의사’라는 타이틀을 씌웠다. 여당에서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다른 법을 만들고자 했음에도 이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만든 간호법으로 타 직역의 업무를 침범하고, 제한하고, 의료기관을 개설하려 했다. 공무원 신분인 청년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저 다른 선배들이 단식 투쟁, 총파업, 시위 등을 해가면서 온 몸으로 막는 것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간호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막혔다. 하지만 악법이 막혔다는 안도감 외에 남은 건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실망감, 허탈함 뿐이었다.

    뺨을 꼬집어가며 공부하던 초등학생은 어느덧 의사가 됐다. 의사가 된 후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지역에서 주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과 같은 만성질환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비록 남들이 말하는 의사 봉급에는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처음 들어보는 지역에서 일하고 있지만 “감사합니다 선생님”, “수고가 많으십니다”와 같은 말을 들으며 이웃들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어느새 정이 든 이곳을 떠난 이후의 삶이 그려지지 않지만 일반의로 곧 병원으로 들어가 수련을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요즘은 고민이 많다.

    비록 처음은 미미했지만 어느새 환자들을 열심히 돌보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의과대학을 졸업해 의사가 됐고, 처음 들어보는 지역에서 이웃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하지만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적폐이고 기득권이자 돈밖에 모르는 사명감 없는 의사다. 소위 말하는 ‘바이탈 과’인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을 하고 싶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다.

    2013년에는 산부인과에서 무과실 보상제도가 시행돼 분만 과정에 과실이 없는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피해보상액의 30%를 보상하고 있다. 2017년에는 이대목동병원에 입원해있던 4명의 미숙아가 하늘의 별이 됐다. 그 여파로 과실치사로 의료진 3명이 구속심사를 받았으며 항암투병중이던 교수님 한분을 제외하고 2명은 구속됐다. 추후 해당 사건은 무죄 판결이 나왔다. 내과, 외과 또한 사정이 이보다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른 필수 의료과인 응급의학과의 경우 6월부터는 응급의료법이 개정돼 응급실 진료가능여부에 상관없이 119가 응급실을 선정해서 데려갈 것이고, 제대로 된 처치가 되지 않으면 응급실 ‘진료거부행위’에 대해서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것이고 면책 조항도 없다고 한다.

    대학 동기, 선후배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비슷한 고민이다. 좀 더 소외받고 아픈 이들을 보다듬어주는 의사가 되고 싶지만 현실은 보상도 낮고, 명예도 없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2018년 소아과의 지원율은 101%였지만 2023년에는 15.9%로 한참 미달이다. 의사들 내부에서는 자조적으로 자식을 낳으면 성인이 될 때까지 아프지 않기를 빌어야 한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내과 외에 산부인과는 71.9%, 외과 65.1%이며 다른 필수의료 과들은 말할 것도 없다. 올해 85.2%의 경쟁률을 찍은 응급의학과는 잘못된 정책으로 지원율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잘못된 정책을 내놓고 그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돈밖에 모르는 적폐, 기득권으로 만들어 버리고 필수 의료를 지망하는 젊은 의사가 없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명예도 보상도 없고 범죄자 취급을 받는 일을 사명감 하나로 나서는 사람을 모두가 칭송한다. 하지만 그게 바로 ‘열정페이’인 것을 알까? 열정과 사명감이 조금이라도 있는 의사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만두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은 정책이 아닐까? 인기가 없을 정책인 것을 안다. 보상과 명예를 적폐들에게 보장해주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조금이라도 젊은 의사들이 고민 없이 국민들을 위해 필수의료에 힘써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오늘도 젊은 적폐인 학생들과 의사들은 부푼 꿈을 안은채 여명을 뚫고 각자의 학교,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들의 꿈을 꺾는 것이 아닌, 날개를 달아주는 정책들이 나오기를 오늘도 바래본다.

    ※칼럼은 젊은의사협의체의 공식 입장이 아닌 소속 위원 개인의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