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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랑 끝 몰린 필수의료과들..."위기라고 말하는 것도 지쳤다"

    내외산소에 흉부외과∙비뇨의학과∙신경외과까지 국회 간담회 총출동..."정부지원 시급" 한 목소리

    기사입력시간 2022-04-29 05:52
    최종업데이트 2022-04-29 09:48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위기라고 말하는 것조차 지친다. 20년 전부터 학회 차원에서 지원을 요청해왔지만 상황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김경환 이사장)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가부터 각종 규제와 의료사고 위험, 저출산 기조까지 세부적인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필수의료과들의 붕괴는 최근 들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정부가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에 필수의료과가 고사 위기까지 내몰린 것이다.

    28일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는 필수의료과 의사들이 자신들이 속한 전문과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경쟁적으로 털어놓는 서글픈 풍경이 연출됐다.
     
    왼쪽부터 내과학회 조영석 총무이사, 소청과의사회 임현택 회장, 외과학회 이우용 이사장, 비뇨의학회 이상돈 회장. 사진=신현영TV 갈무리

    소청과 "전공의 충원율 자유낙하 수준"...산부인과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제도 개선"

    저출산 기조로 직격탄을 맞은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는 인프라가 한 번 붕괴될 경우 회복이 어려운 만큼 정부가 더 이상 지원을 주저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이 거의 자유낙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며 “보건복지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소청과와 논의의 장을 마련했지만, 여기서 마련된 대책이 시행된다하더라도 소청과 진료 인프라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는 경기도 수원 같은 대도시에서도 소아 환자를 받아줄 곳이 없어 길 위에서 아이가 사망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며 “시급하게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앞으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일”이라고 우려했다.

    대학병원 소청과의 경우는 전공의 부족 문제가 심각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실제로 2022년 소청과 전공의 충원율은 27.5%로 다른 필수의료과들 가운데서도 가장 낮았다. 특히 소청과 전공의 수련기간이 3년으로 단축되면서 내년에는 인력난이 더욱 극심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임 회장은 “내년에 소청과 전공의 3, 4년차가 같이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나오면 당장 내년 3월부터는 대부분의 병원에서 전공의가 거의 한 명도 없는 상황이 된다”며 “지금도 대학병원 교수들이 낮에는 외래, 밤에는 당직을 서며 힘들어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덧없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박중신 이사장은 젊은의사들이 산부인과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문제를 언급했다. 현재도 의료분쟁조정법 46조에 따라 불가항력적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고 있지만 맹점이 많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임산부가 사망하더라도 보상금액이 3000만원에 그치는 것도 문제고, 그마저도 재원 마련시 의료기관이 30%를 부담토록 하고 있다”며 “불가항력이라는 건 의사가 잘못한 게 없다는 의미인데 돈을 내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산부인과 취약지 문제 해결을 위해 300병상 이하 병원의 필수과 개설과 관련한 법 개정 필요성도 주장했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300병상 이하 병원 설립시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중 3개만 개설해도 되다보니 산부인과가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이 같은 제도는 산부인과 전문의의 일자리 감소와 전공의 지원율 하락으로 이어진다”며 법률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이 외에도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신생아 출생 통보 의무를 부여한 출생통보제와 의료기관 다인실 비율 관련 규제 등도 개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외과 "수가 정상화 및 상대가치 전면 개편"...흉부외과 "수가 가산금 학회 관리"

    전공의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외과와 흉부외과도 상황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2022년 전공의 충원율은 외과 66.8%, 흉부외과 34.8%였다.

    대한외과학회 이우용 이사장은 첫 번째로 수가 정상화를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수가를 인상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가를 정상화해 달라는 것”이라며 “상대가치도 전면 개편하거나 그게 어려우면 필수의료에는 상대가치에 더해 절대가치 점수를 주고, 이에 대해 국고를 더 투입해달라”고 했다.

    지역 불균형 문제 해결을 위해선 지역 필수의료 담당 병원들을 대상으로 한 수가 지원 시범사업 실시를 제안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해 지역가산 법안이 통과됐는데, 필수의료 특히 외과부터 관련 시범사업을 시행해 지역의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강소병원들을 지원하자”며 “정부가 부담이 되면 비용의 절반을 대겠다는 지자체부터 실시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전공의 교육에 대한 지원도 주문했다. 이 이사장은 “필수의료 전공의 교육이 도제 중심에서 역량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며 “학회를 지원해 역량을 갖춘 전공의들을 길러낼 수 있도록 하면 결국 이득은 국민이 받는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의사들의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고의성이 없는 의료사고에 대해선 형사처벌을 면제받을 수 있게 하자고도 주장했다. 그는 “수술하다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필수의료과 의사들을 전부 감옥에 보내면 누가 수술을 하려하겠느냐”며 “민사적 책임은 지더라도 형사처벌은 면할 수 있도록 하면 의사들이 마음 놓고 수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김경환 이사장은 지난 2009년 도입된 외과∙흉부외과 수가가산 제도의 변경 필요성을 주장했다. 가산금을 지금처럼 개별 병원에 주는 대신 학회에 제공해 달라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병원은 가산금 중 얼마를 흉부외과와 외과에 쓰면 병원 수지가 맞을 것인지를 계산할 수 밖에 없다”며 “지금은 외과학회와 흉부외과학회 모두 법인이 됐기 때문에 지원금을 학회가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전공의 부족 문제나 시스템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학회가 가산금의 일부라도 관리∙운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그는 수가가산 제도에도 불구하고 전공의 지원율이 높아지고 있지 않다는 일각에 지적에 대해서는 “가산금이 없었으면 전공의가 매년 10명 이하로 들어왔을 것”이라며 “그나마 20명대로 유지되는 건 의대생들에겐 가산금의 존재가 흉부외과 일이 중요하다는 걸 국가가 무언으로 지지해준다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수술료 책정에서 수술 시간을 고려해줄 것도 주문했다. 그는 “지금은 A라는 수술에 3시간이 소요되는 게 일반적이라면 어려운 환자를 받아서 7~8시간 수술하는 의사는 병원에서 바보 취급을 받는다. 인건비도 안나오는 데 여러 사람을 고생시켰다는 것”이라며 “수술 난이도는 대개 시간과 비례하는 만큼 수술료에서 이런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부족한 일손을 채워주고 있는 보조 인력들의 존재를 제대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그는 “전담간호사나 인공심폐기를 돌리는 체외순환사 등은 흉부외과 의사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다. 이들의 일을 수면 위로 올리고 제대로 끌어줘야 한다”며 “이들의 도움 없이는 환자를 수술할 수가 없다”고 했다.
     
    왼쪽부터 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김경환 이사장, 신경외과학회 김우경 이사장, 산부인과학회 박중신 이사장.

    내과 "전공의 교육∙지도전문의 지원"...비뇨의학과∙신경외과 "지원 누락 박탈감"

    최근 전공의 충원율이 증가세인 내과도 어려움을 호소했다. 대한내과학회 조영석 총무이사는 “전공의 3년제 전환과 주 80시간 준수를 위한 노력 등으로 다른 과들에 비해 전공의 충원율은 나은 편”이라면서도 “지역간 불균형 문제는 내과도 동일하다. 지방 수련병원들은 정원을 맞추기 어려운 만큼 맞춤형 전공의 선발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도교육전문의, 야간 응급실 당직 전문의에 대한 지원도 요청했다. 조 총무이사는 “전공의 교육에 대한 지원은 물론이고 진료와 교육 등으로 업무 부담이 큰 지도교육전문의에 대해서도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며 “재원을 투입하지 않더라도 의무를 줄여주거나 교육 시간을 논문 한 편으로 인정해주는 식의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최근 환자 내원이 많은 응급실에서는 필수의료과가 당직을 많이 서게 되는데, 전공의들은 왜 응급실 당직까지 서야하냐며 불만을 제기한다. 이에 야간 응급실 당직 전문의를 채용하는 병원도 있는데 이런 부분들에 대해 지원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비뇨의학회는 전공의 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에도 다른 필수과들과 달리 지원에서 소외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비뇨의학회 이상돈 회장은 “전공의 충원율이 50% 이하인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있고, 수도권 쏠림에 따른 지역간 불균형 문제가 심각함에도 지원에서 누락돼 서자의 느낌을 받는다. 실제 앞서 여러 차례 흉부외과∙외과 가산금 수준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변화가 없었다. 다른 외과계와 동일하게 지원해달라”며 “전공의들이 활력을 받을 수 있도록 전공의 수련비용에 대한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또한 “전국 수련병원 비뇨의학과의 70% 정도가 전공의가 0명이거나 1명밖에 없다. 하지만 인원도, 파워도 적은 마이너과다 보니 이런 부분이 이슈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심각성을 고려해 복지부가 필수의료협의체에 포함시켜 준 부분은 감사하지만, 오늘같은 자리가 단순히 하소연하는 기회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충원율이 90% 중후반대를 기록하고 있는 신경외과도 고충을 토로했다. 중도에 이탈하는 전공의들이 많아 높은 충원율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한신경외과학회 김우경 이사장은 “충원율이 높다고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원자들은 처음에는 수술이 하고 싶어 들어오지만 1년차에 다 도망가 버린다. 이탈률이 7~20% 수준”이라며 “한 때 60% 초반대까지 떨어졌던 전공의 충원율을 끌어올린 것도 신경외과학회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모집을 위해 노력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신경외과 내에서 인력 대부분이 척추 분야로 몰리는 문제도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뇌 쪽은 무너지고 있다. 실제 심뇌혈관센터를 돌리려면 최소 3명은 있어야 하는데 지원을 하지 않으니 제대로 운영이 되지 못 한다”며 “결국 그 부담은 전문의에게 가고 결국 펠로우 지원도 떨어진다. 응급 수술할 자원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김 이사장은 전공의 교육에 대한 지원과 수가 대폭 인상을 주장했다.

    이 같은 필수의료과들의 호소에 복지부는 올해 안에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겠다고 답했다.

    복지부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관은 “지난해 11월에 코로나 일상회복에 들어가면서 필수의료협의체 회의를 적극적으로 하려했는데 12월부터 대유행 상황이 계속되면서 3번 밖에 하지 못했다”며 “올해 중에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지역이나 필수∙공공 분야에 인력들이 적정하게 배치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부족 현상이 생긴다면 의료계와 논의해 확충이 필요한 부분은 어떻게 확충을 할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