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미국도 의료기관 내에서 발생하는 폭행 사건을 막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의료기관 종사자들의 폭행이 일반 직장인보다 5~12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대신 미국은 의료진 안전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고 내부에서부터 대응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공권력이 강해 사건 발생 초기에 강하게 제압하는 것이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으로 볼 수 있다.
미국도 폭행 사건에 골머리, 타 직종보다 5~12배 폭력 노출
미국에서 최근 떠들썩했던 의료기관 폭행 사건은 2015년 하버드대 브링엄 여성병원에서 환자의 아들이 총기로 외과의사를 살해한 것이다. 당시 사회적인 공론화는 이뤄졌으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도 의료진 폭행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11일 미국 산업안전건강청(OSHA) 통계를 확인한 결과,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의료기관 내 폭력으로 58명의 의료진 또는 직원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기관 종사자는 다른 직업 종사자보다 폭행 위험에 5~12배 더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1월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따르면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의 78%가 지난 1년간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이 중 75%는 구두 협박, 21%는 신체 폭행, 5%는 직장 외에서의 대치, 2% 스토킹 등을 경험했다고 보고했다.
특히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40%는 신체적 폭행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에서 폭행을 저지른 사람은 대부분 치매, 정신 이상, 약물 중독, 정신 질환 등으로 나타났다.
OSHA은 "응급의학과, 정신병원, 정신질환 클리닉, 약물중독 클리닉, 만성질환 시설, 커뮤니티 케어 등 일차의료기관은 물론 가정 방문 등에서 모든 의사, 간호사, 직원 등이 폭행의 위험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모든 의료기관 폭행 예방 프로그램 마련하고 보안요원 고용 등 검토
이에 따라 미국 보건당국은 모든 의료기관을 상대로 의사와 환자 안전을 위해 폭행 예방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폭행 예방 프로그램은 의료기관 내 폭력이 없어야 한다는 인식을 공론화하자는 데서 출발했다. 일반인들에게 의료진 폭행은 의료진의 공백이 생기고 다른 환자들에도 피해를 준다는 경각심을 일깨우면서, 의사 안전이 환자 안전에 직결된다는 사실을 안내하도록 했다.
미국국립간호사연합(NCC)은 “현재 의료기관은 폭행에 대비하지 않고 있다. 병원은 환경 위험 요인, 특정 환자 위험요인, 직원 배치와 보안시스템 등을 충분히 평가하고 문제점이 있다면 이를 고쳐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응급의료법과 의료법에서 처벌 기준을 두고 있지만 의료기관 차원의 상시 대응도 필요해보인다. 대한응급의학회 유인술 전 이사장은 2014년 대한의사협회지 기고문을 통해 경비인력 채용과 권한 부여를 제안했다. 현재 많은 경비업체가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경비업법 제15조의 2(경비원의 의무) 제1항에서 “타인에게 위력을 과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경비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의료기관은 경비업법의 특수경비업무지역으로 지정하고 이에 대한 요건을 의료법 및 경비업법에 규정해야 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안전요원에게 준사법권이 주어져 있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한병원협회 임영진 회장은 “대형병원에서 보안요원을 배치했을 때 폭행 사건이 줄어든 측면이 있다. 병원에 보안요원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라며 "이들을 배치한 병원은 수가 가산을 주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네바다주립의대 유지원 교수는 “미국에서는 공권력이 워낙 강해 일단 폭행 사건이 일어나는 자체로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환자들 스스로 조심하는 측면이 있다"라며 "우리나라도 공권력 권한을 강화하고 의료진 안전이 위협받으면 환자안전에 영향을 준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