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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 환자 치료 가로막는 '허가초과 제도' IRB·사후승인 등 개선 시급

    "빠르게 진화하는 치료제에 발맞춰 제도도 현실에 맞게 바꿔야"

    기사입력시간 2025-05-17 10:38
    최종업데이트 2025-05-17 10:38

    (왼쪽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국희 약제관리실장,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선영 교수, 의약품정책연구소 서동철 소장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정밀의료 시대 속에서 치료제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허가범위 초과 사용 제도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 환자 치료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IRB 승인 생략 등 유연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종양내과학회는 16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2025 춘계 정기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진행된 '항암제 허가 범위 초과 사용 제도의 문제점과 해결책' 정책 세션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국희 약제관리실장과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선영 교수, 의약품정책연구소 서동철 소장이 참석해 국내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의약품은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중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사항 범위 내에서 사용해야 한다. 단 '진료상 반드시 필요한'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의 고시에 의해 허가초과 사용할 수 있고, 중증환자에게 처방투여하는 약제는 심평원장의 공고로 허가초과 사용이 가능하다.

    허가초과 항암요법은 의학적 타당성을 평가기준으로 하며, 교과서, 임상진료지침, 임상 문헌 등 임상 근거자료에 따른 효과와 부작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학적 타당성을 평가한다.

    이날 발표자들은 현장의 허가초과 제도 활용의 어려움을 지적하며,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 심의를 생략하거나 간소화할 수 있는 구조 마련 등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전담 심의위원회를 신설하거나, 전문 학회가 빠르게 사안을 검토해 결과를 통보하는 체계도 대안으로 꼽았다.
     
    (왼쪽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국희 약제관리실장,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선영 교수

    "허가범위 초과 사용 제도, 현장과 거리 멀어…정밀의료 등 시대 흐름에 제도 개선해야"

    이날 심평원 김국희 실장은 법령상 허가범위 초과와 실제 임상에서 생각하는 허가초과의 범위가 다른 경우가 많아 이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허가초과 사용승인 현황과 결과를 분석해 필요한 환자에게 신속하게 약제를 사용할 수 있는 개선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식약처 허가 사항에는 효능 효과, 용법·용량, 사용상 주의사항 등이 명시돼 있다"며 "실제 임상에서 사용할 때 적응증이나 용법이 조금만 달라도 허가초과로 간주한다. 적응증이 완전히 다른 것과 조금 벗어난 것은 모두 허가초과에 해당한다. 이를 모두 동일한 승인 절차를 요구하는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치료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병용요법 등도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현재의 승인 방식이 이를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항암제는 어느 분야보다 전문성이 요구되고, 동시에 신속하게 환자 투여 가능하도록 제도가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반약제 사용 승인 과정의 비효율을 지적했다.

    현재 의료기관은 일반약제 허가초과 사용 시 관련 자료를 심평원에 제출한다. 심평원은 식약처에 평가를 의뢰하며, 이후 평가 자료를 바탕으로 심평원이 사용 승인을 통보한다. 통보기간은 60일로 정해져 있으나 비효율적인 평가 과정으로 실제 통보기간은 60일을 초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실장은 "항암제는 매번 암질환심의위원회에 바로 올라가기 때문에 적체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심사 주체를 일원화하거나 평가 절차의 간소화 필요성을 시사했다.

    김선영 교수 역시 현 제도가 정밀의료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암종 불문 항암제와 같이 특정 유전자 변이를 타겟해 암의 종류와 무관하게 사용하는 정밀 치료제가 늘어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최신 치료 패턴을 제도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요즘에 개발되는 타겟 치료제는 특정한 유전자 바이오마커를 갖고 있는 경우에 여러 암종과 관계없이 효과를 보인다. 암종 불문 치료제는 해당 바이오마커를 가진 환자가 아주 소수이기 때문에,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을 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실사용 데이터(RWD)나 실사용 근거(RWE) 기반의 허가 확대가 더 중요해지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실사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허가를 확대하지만, 우리는 초록 발표만 된 데이터는 근거로 인정하지 않아, 치료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임상적 가이드라인에 기반해 전문가의 자율성을 존중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정밀의료 시대에서 효과적으로 허가초과 요법을 운용하기 위한 방안으로 ▲임상 가이드라인에 기반한 허가초과 요법 허용 ▲학회와 협력해 체계적인 RWD 수집 및 성과 평가 ▲개별사례에 대한 실시간 전문가 패널토의 도입 등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사후 승인을 신청하려고 해도 병원에서 말릴 정도로 제도적 리스크가 크다. 불승인이 되면 병원이 관리 대상이 되고 이후 승인도 제한될 수 있어 병원 자체에서 제동하는 경우가 많다"며 병원 내 제도 활용 장벽이 있음을 언급했다.
     
    의약품정책연구소 서동철 소장

    "IRB 요구하는 나라는 한국뿐…제도가 환자 치료 발목 잡는다"

    서동철 소장은 해외는 의사의 자율로 허가초과 사용이 이뤄지는 데 반해 한국은 행정 절차가 우선인 점을 꼬집으며, 허가범위 초과 사용 제도의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서 소장에 따르면 한국의 허가범위 초과 사용은 해외 대비 미미한 수준이다.

    허가범위 초과 사용 현황을 살펴보면 미국은 질병과 처방 목적, 의약품 종류에 따라 53~94%까지 활용된다. 유럽은 성인 입원환자의 7~95%, 성인 외래환자의 6~72%, 소아 입원환자의 13~69%, 소아 외래환자의 2~100%에 사용된다. 한국은 개원의 200명 중 41.5%가 의약품 허가범위 초과 처방을 가끔 또는 자주 한다.

    서 소장은 "미국, 영국, 호주는 약제의 허가범위 초과 사용을 의사의 재량에 맡겨, 이에 대한 별도의 사용 신청 시스템이 없다"며 "프랑스는 허가범위 초과 사용 승인제도가 있지만, 관련 단체가 사용 승인을 신청한다는 점에서 국내 '신청 대상기관 확대' 제도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서 소장은 "의사가 허가초과 사용을 결정하기까지 소요되는 행정적 시간은 결국 환자에게 돌아간다"며, 복잡한 절차가 환자 치료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국내를 제외하고 5개 해외 주요국은 연구목적 외에 IRB 승인을 요구하지 않는다. IRB 승인까지 요구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부연했다.

    IRB는 원래 임상시험의 윤리성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지만, 이미 시판 허가를 받은 약제를 적응증 외로 사용하는 데까지 동일한 절차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서 소장은 IRB 문서 준비, 병원 간 심의 속도 차이, 사용 승인 이후의 사후 보고에 대한 부담은 결국 치료 포기를 야기하는 등 환자가 손해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사후관리 체계를 살펴보면 국내는 공적 규제기관에 연 1회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보고 내용의 활용도는 낮다. 해외는 심각한 부작용 발생 시에만 별도의 규제기관에 보고한다. 프랑스는 모니터링, 부작용 보고 등의 사후관리는 모두 제약회사가 담당한다.

    의사 법적 보호 수준은 모든 나라가 허가범위 초과 사용보다 과실 유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는 환자동의서를 받도록 권고한다. 향후 부작용 발생 시 의사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이에 서 소장은 ▲약제의 허가범위 초과 사용 정의 재정립 ▲허가범위 초과 사용 사전 승인신청 제도 개선 ▲긴급 상황을 위한 허가범위 초과 사용 사후보고 제도 보완 ▲허가범위 초과 사용 전담 플랫폼 개선 ▲RWD 활용을 위한 제도개선 등을 개선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현재 허가범위 초과 사용은 식약처 허가사항에 따른 나이·용량·체중 등을 초과하는 경우와 허가사항에 명시되지 않는 치료목적의 사용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며, 기준 초과 사용, 허가사항 외 사용으로 분류해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별도의 관리체계로 운영할 경우, 의료진은 상황별로 다른 절차로 처리해야 하는 행정적 부담이 발생한다"며, 단일 관리체계를 적용해 관리 절차의 일관성을 유지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의료진의 행정적 부담을 줄이고, 치료의 질을 향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허가범위 초과 사용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관리해 정책 개선과 허가사항 확대를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또한 IRB 승인 절차를 생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행 IRB 승인 절차의 문제점으로 ▲IRB 심사를 위한 서류작성의 부담 ▲IRB 심의 소요시간을 꼽으며, IRB 승인절차를 생략하고 환자 동의서와 부작용 보고 시스템을 보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외에도 허가범위 초과 사용 승인 전담 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허가범위 초과 사용 환자동의서를 통해 환자와 의료진 간 법적·윤리적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