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최근 ‘억’ 소리 나는 고가 신약들이 줄줄이 출시되며 급여화에 따른 건보 재정 지출 증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해당 약제들에 대한 사후 모니터링과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변지혜 부연구위원은 19일 심평원 주최로 서울시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고가의약품 급여관리 포럼’에서 척추성 근위축증 치료제인 스핀라자의 사례를 소개하며 사전승인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심평원은 환자의 약제 접근성 제고 차원에서 지난 1992년부터 고위험∙고비용이거나 대체 불가능한 행위, 약제에 대한 요양급여 적용 여부를 사전에 심의하는 사전승인제도를 운영해왔다.
6회 투약비용 5억 넘는 '스핀라자'...운동기능 개선 효과 적거나 전무한 환자도
지난 2019년 4월부터 사전승인제가 적용된 스핀라자는 치료 첫해 6회 투약비용이 약 5억5000만원에 달하며, 그 다음해부터는 매년 3회 투여에 2억7000만원가량을 부담해야 하는 초고가 약제다.
변 위원이 2019년 4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약 2년간 국내에서 스핀라자를 사용한 환자 124명을 분석한 결과, 환자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MCID(의미있는 임상 개선을 나타내는 운동기능 평가 점수)를 충족하는 비율이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2년동안 스핀라자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운동기능 평가 점수 결과가 계속 0점인 사례들도 있었다.
이에 변 위원은 환자 모니터링을 통한 성과기반 급여 관리 필요성을 제기했다.
변 위원은 “개별 환자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효과가 있으면 계속 급여를 유지해주고 반대의 경우는 급여 여부를 다시 고려하는 게 필요하다”며 “영국의 경우, 주기적으로 효과를 모니터링하며 급여를 유지할지를 결정하는 ‘스탑 룰’이 있다. 우리도 급여화를 할 때 스탑 룰에 대한 것도 함께 고민해야 합리적 지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장기 모니터링을 위한 전향적 자료 수집 전산 시스템 마련도 주문했다. 그는 “국내의 경우, 심평원 사전승인 제출 자료가 누적되고 있지만 온라인 제출 및 DB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의약품 급여관리 우선순위에 대한 전문가와 일반 국민들간의 의견차도 줄여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심평원이 지난해 말 실시한 설문조사의 1차 분석 결과에 따르면 희귀질환, 고가의약품에 대한 급여 지출 우선순위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전문가와 일반 국민들간 의견이 갈렸다.
변 위원은 또한 위험분담제를 활용해 재정을 관리하고 재평가 결과에 따른 급여기준 및 임상가이드라인 제시를 통해 고가약 급여를 관리해야한다고 제언했다.
경제성 평가 면제 신약, 사후관리 없이 방치...재평가 위한 자료수집 체계화∙위험분담제 확대
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안정훈 교수는 약제에 대해 주기적 평가가 부재한 현행 경제성 평가 면제 제도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실제 우리나라와 달리 호주, 프랑스, 영국 등은 환자자료, 환자∙의사 대상 설문조사, 레지스트리, 환자 삶의 질, 의약품 효과성 및 안전성 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1~2년을 주기로 재평가하는 제도를 마련해두고 있다.
안 교수는 “약의 가치는 시간에 따라 변하게 되는데 우리는 처음에 신약이 도입될 때 집중해서 약값을 최대한 떨어뜨려놓고 그 후에는 잊어버리는 식”이라며 “반면 외국은 도입 시에 우리나라보다 느슨한 측면이 있지만, 사후에 약에 대한 주기적 평가를 통해 약가를 조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험분담계약 제도 내에 고가 약제 사용의 실제 임상에서 효과, 비용효과성 등을 평가하는 명확한 재평가 제도가 없다보니 근거 기반의 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이는 보험자의 과도한 재정부담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명확한 재평가 및 사후관리 제도를 수립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자료 수집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수집된 자료도 전산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이처럼 수집되는 RWD(Real World Data)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이를 병원평가와 연계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현재는 자료수집 과정에서 병원 IRB와 환자동의를 거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만큼 이와 관련한 전향적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안 교수는 위험분담제 확대도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희귀난치질환 치료제와 항암제 일부에만 위험분담제를 적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보험재정영향 감소를 목적으로 여러가지 이름으로 시행중”이라며 “우리도 더 다양한 고가약제로 위험분담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현재 소득 10분위에 따라 본인부담금 상한액이 다르게 적용되고 있지만 위험분담제 환급비율은 다르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며 “이를 소득분위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 소득재분배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