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키워드 순위

    메디게이트 뉴스

    정신질환자와 가족이 짊어진 '부담'...국가가 책임져야 할 때

    제2의 '진주방화사건' 막으려면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 필요...예산·수가·거버넌스 개선해야

    기사입력시간 2022-09-07 06:34
    최종업데이트 2022-09-07 06:34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제사회특별위원장.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금처럼 정신질환에 따르는 부담을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제사회특별위원장(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6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신건강 정책 세미나’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비자의 입원·이송, 환자 가족 부담 커...검진·예방 조치 등도 미흡
     
    그는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을 다 하지 않고 있는 대표적 예로 지난 2019년 진주방화사건 당시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비자의 입원 문제를 꼽았다.
     
    비자의 입원 요건은 지난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더욱 까다로워졌다. 자타해 위험이 큰 응급입원 상황이 아닌 이상 환자 본인 동의 없이는 정신응급 진료를 받게 할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실제 진주방화사건이 발생하기 전, 범인 안인득의 이웃이 7차례나 경찰에 신고했지만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참변을 막지 못했다.
     
    비자의 입원이 가능하더라도 병원까지 이송하는 과정은 가족들에게 또 다른 부담이다. 2018년 7월부터 2019년 6월까지 5개 국립병원 입적심에서 심사한 3만6096건 중 경찰과 구급대원을 통한 이송 비율은 16.2%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입원은 여전히 가족 책임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기 전 조기에 질환을 발견하고 예방하는 조치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신질환은 환자 스스로 인식이 어렵고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게다가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 탓에 질환을 알게 되고도 병원 방문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 개입을 통해 검진·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편견과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 필요...정신응급센터 구축 시급

    백 위원장은 “정신건강치료를 신체건강치료와 동일한 수준으로 전국민 보장해야 한다”며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을 갖고 민관협력으로 시스템을 짜고 공동체를 복원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이어 “후진국형 장기입원서비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의 국민정신건강 증진을 통해 마음이 아픈 국민이 편견과 차별없이 언제든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는 사회로 나아가 보건·복지 서비스에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가족이 아닌 정신건강심판원을 통한 입퇴원 결정 ▲광역별 정신응급센터와 공공이송제도 확립 ▲접근성 높은 정신건강서비스 시행 ▲민간보험·실손보험의 정신과 환자 차별 철폐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대한 획기적 투자 ▲지역사회 중심 치료 지속성과 지원 체계 구축 ▲환자·보호자·소비자 참여 확대 ▲안전한 병원 환경 구축 등을 골자로 한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도입을 제언했다.
     
    특히 백 위원장은 최소한 정신응급센터는 필수의료서비스로 보고 국민생명과 인권보호차원에서 시급히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신응급센터는 임세원법의 하나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현재 예산으로 센터 운영은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실제로 현재 운영 중인 센터는 2곳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급성기 치료, 자원 소모 크지만 수가 비슷...병원들 급성기 환자 꺼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병철 보험이사(한림대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정신건강을 위한 보건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은 보건예산 중 정신건강에 쓰이는 비율이 5%인 반면 우리나라는 1.6%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특히 급성기 환자의 경우 치료에 더 많은 자원이 들어갈 수 밖에 없음에도 안정기 등과 수가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병원이 급성기 환자를 꺼리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이 보험이사는 “우리나라는 만성환자 중심의 수가체계다. 급성기 환자의 경우 3~5배 가량 더 자원이 들어가는데 수가 차이가 거의 없다”며 “이로 인해 가장 증상이 심한 환자를 가장 열악한 기관에서 치료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실제 2011년 1021개였던 상급종합병원 정신과 보호병상 수는 2020년 840개로 18% 감소했다. 광주세브란스병원, 청량리정신병원, 성안드레아병원 등 정신과를 폐쇄하거나 경기도립정신병원, 용인정신병원 등 정신과를 축소하는 곳들도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저수가와 횟수 제한, 환자부담 등으로 효과가 입증된 여러 치료법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대표적으로 작업 및 오락요법은 수가가 일본 대비 20% 수준인데 그 마저도 음악치료·미술치료·운동치료 등을 모두 포함해 하루 1회만 청구가 가능하다. 장기 지속형 주사제는 재발과 입원 감소에 대한 근거가 분명하지만 환자 비용부담 탓에 사용이 제한적인 실정이다.
     

    정신건강 다룰 국가적 거버넌스 구성 필요...복지부 "제도 개선 위한 재원 관건"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오강섭 이사장(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은 국가정신건강위원회 등 새로운 거버넌스 구성 필요성을 언급했다.
     
    오 이사장은 “중증정신질환은 단순히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 예산 등 여러 문제들이 얽혀있다”며 “국가정신건강위원회 같은 것들을 만들어 급성기 치료, 자살 예방 등 관련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며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김영희 정책연구원은 보호의무자 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다.
     
    김 연구원은 “비자의 입원부터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지우는 것이 정신건강복지법상 보호의무자 제도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이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의 시작이자 핵심”이라며 “모든 관련 단체나 직역에서 해당 제도의 폐지에 찬성하고 있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정치권에서 결단을 내려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전명숙 과장은 결국 재원 문제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주민발의법안 63’을 통해 연 수입이 100만 달러 이상인 주민에게 세금 1%를 더 부과해 저소득층 정신건강 문제 해결에 사용토록 하고 있는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비자의 입원과 관련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응급 입원을 시키려 해도 가능한 곳이 별로 없다”며 “응급입원이 가능한 시설을 늘려야 하고 그 외에도 여러 대안이 필요한데 제도 개선을 위해선 결국 재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