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의사’로 누릴 수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위험을 무릅쓰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의사들의 일대기를 담은 ‘독립운동을 한 의사들’이 오는 8월 15일 오전 11시 5분 KBS1에서 방송된다고 밝혔다.
‘독립운동을 한 의사들’은 구한말 한국군대 강제해산, 3·1운동 등 굵직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브란스의학교(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와 경성의전(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의 의사 이태준, 곽병규, 나창헌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일대기와 숨겨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KBS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 날’의 패널이자 인기 한국사 강사인 최태성이 프레젠터로 참여했다.
몽골의 신의라고 불린 세브란스의학교 출신 이태준은 독립운동을 위해 김규식과 함께 몽골로 가서 독립운동의 연락거점이자 군자금 유통경로인 병원 ‘동의의국’을 개설했다. 또한 몽골에 만연한 전염병을 치료해 몽골 황제의 주치의로 활약했다.
몽골인들의 존경과 신뢰를 발판으로 많은 자금을 모아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그는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던 이태준의 비극적인 일대기를 소개한다.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출신 곽병규는 3·1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 블라디보스톡 신한촌 등지에서 의사로 활동했다. 의사 활동과 더불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기독교청년회 총회, 해삼위기독교예술단 등의 다양한 단체활동을 하며 신한촌 한인들과 함께 독립자금을 모았다. 그는 동료와 가족에게도 숨긴 채 우직한 성품으로 묵묵히 독립운동의 길을 갔다. ‘의술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환자에게 봉사하는 직업’이라는 내용의 딸에게 남긴 친필편지와 함께 셋째딸 곽연찬씨가 회상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공개한다.
나창헌은 3·1 운동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학생 대표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대동단에 가입, 의친왕 망명 사건에도 참여했고, 제2만세 운동으로 일제의 수배령이 떨어지자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상해에서 세웅병원을 운영하며 임시정부의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상해 임시정부내 밀정 제거와 일제 기관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무장저항단체인 병인의용대를 만들어 상해 일본 총영사관 폭파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이승만임시정부 대통령의 탄핵 심판위원장을 맡는 등 오직 한길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그의 삶은 그의 장남이자 광복회 부회장인 나중화씨의 증언을 통해 들어본다
의협 최대집 회장은 “일제 강점기때 우리 선배 의사분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독립운동이라는 것이 드러내놓고 하는 일이 아니다보니 이분들의 업적이 많이 묻혀있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시대정신에 투철했던 지식인이었던 이분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 의사들의 독립운동이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최 회장은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에 핍박받던 시기에 지금보다 몇 배나 힘들게 공부해서 의사가 된 이 분들이 지금 우리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