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키워드 순위

    메디게이트 뉴스

    “응급실 뺑뺑이 막겠다더니 환자만 맡기면 끝?”…전공의 71% 호남권 응급이송 시범사업 ‘부정적’

    대전협, 전공의 실태조사 공개…전공의 82% “의료사고 법적 부담이 최대 문제”

    기사입력시간 2026-05-14 16:12
    최종업데이트 2026-05-14 16:12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 문제 해소를 위해 호남권에서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을 시행 중인 가운데, 기대와 달리 현장 전공의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시범사업이 병원의 수술실·중환자실·배후진료 역량은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환자를 어느 병원으로 보낼 것인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환자 처치 지연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 책임을 현장 의료진에게 전가하는 구조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다.

    전공의들은 “수용 이후 책임은 결국 현장 의료진 몫”이라며 의료사고 법적 안전망과 실시간 협의체계, 배후진료 연계가 선행되지 않는 한 ‘응급실 뺑뺑이’는 해결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4일 대한전공의협의회 산하 젊은의사정책연구원(YPPI)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정책브리프 2호 ‘호남권 응급환자 이송체계 시범사업 현장 전공의 르포 및 정책 제언’과 부록 ‘전공의 실태조사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번 브리프는 호남권 응급의료기관에서 근무 중인 응급의학과·내과계·외과계 전공의들의 현장 목소리와 지난 4월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됐다.

    보건복지부와 소방청은 지난 3월부터 광주·전북·전남을 대상으로 광역상황실 기반 응급환자 이송체계 개편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중증 환자의 수용 가능 병원을 신속히 파악하고 이송을 조정해 응급실 뺑뺑이를 줄이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이송 단계의 행정 효율화만으로는 응급의료 현장의 병목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봤다.

    전공의 71% “운영 만족도 3점 이하”…내과·외과계서 부정 평가 높아
    출처=젊은의사정책연구원(YPPI) 정책브리프 2호

    이번 실태조사에는 호남권 전공의 376명 중 44명이 응답했다. 응답률은 11.7%로 높지 않았지만, 실제 응급환자 이송과 수용, 배후진료에 참여하는 현장 전공의들의 목소리가 반영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사 결과 시범사업의 전반적 운영 만족도는 낮았다. 전체 응답자의 71.0%가 10점 만점에 3점 이하를 줬고, 최하점인 1점을 부여한 응답자도 32%에 달했다. 진료과별로 보면 내과계는 82%, 외과계는 83%가 부정적 평가를 보였다. 응급의학과 역시 60%가 3점 이하라고 응답했으며, 7점 이상 긍정 응답은 없었다.

    현장 전공의들이 지목한 가장 큰 문제는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이었다. 시범사업 운영 중 가장 큰 문제를 묻는 문항에서 전체 응답자의 82%가 ‘의료사고 법적 부담’을 꼽았다. 이어 광역상황실의 현장 수용 역량 파악 미흡 59%, 119 사전고지 의무 폐지 57%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시범사업이 환자 이송을 강제하거나 우선 수용을 유도하면서도, 수용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악결과와 의료사고 책임은 여전히 개별 의료진과 병원에 남겨두고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병상 숫자만으로 수용 가능 판단 못 해”…수술실·ICU·당직 전문의 반영 미흡

    이번 조사에서 광역상황실 운영 방식에 대한 불신도 확인됐다. 광역상황실의 이송 지원과 우선 수용 지시가 병원의 실시간 진료 자원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묻자 전체 응답자의 78%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특히 외과계에서는 부정 응답이 92%에 달했다.

    외과계 전공의들의 불만은 단순히 응급실 병상 여부만으로 환자 수용 가능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더라도 수술 가능한 의료진이 없거나 수술실이 가동되지 않으면 최종 처치가 지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외과계 전공의는 “다른 파트 교수님이 당직을 담당하는 날이라 배후 진료 연결이 불가능해 수술·처치 지연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응급의학과 전공의도 “막상 환자를 받았지만 배후 진료는 안 되고, 수습은 알아서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내과계 전공의들도 중환자실 포화 상태에서 추가 환자를 받는 구조를 우려했다. 전북의 한 내과계 전공의는 “중환자실이 모두 차서 환자를 받을 여력이 없는데 추가적으로 환자가 오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결국 환자에게 해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공의는 “중환자실이 없는데 중환자실 입실할 환자를 보내기도 하고, CPR 환자를 연달아 2명 보낸 경우도 있다”고 했다.

    pre-KTAS 신뢰도도 낮아…응급의학과 80% “실제 임상 상태와 불일치”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환자 중증도를 분류하는 pre-KTAS에 대한 신뢰도도 낮았다. 전체 응답자의 66%가 구급대원의 사전 중증도 분류와 실제 임상 상태의 일치도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응급의학과에서는 부정 응답이 80%에 달했다.

    사전고지 없이 이송된 중등증 이하 환자가 실제 내원 후 응급수술이나 중환자실 입실이 필요한 중증 환자로 판명된 경험도 적지 않았다. 전체 응답자의 55%가 이러한 중증도 분류 역전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지역별로는 광주 45%, 전북 64%가 중증도 불일치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는 현장 분류 단계에서 환자 상태가 과소평가될 경우 병원이 사전 준비 없이 중증 환자를 맞게 되고, 반대로 경증 환자가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몰릴 경우 중증 환자 진료 역량이 잠식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 전공의는 “walk-in 환자로 진료역량이 포화되는 상황에서 사전 문의 없이 이송했을 때의 대책이 있느냐”고 했고, 또 다른 전공의는 “경증 환자이지만 환자가 원한다는 명목으로 연락이 오고, 안 된다고 하면 병원 앞에 내려주는 관행이 있다”고 말했다.

    사전고지 없는 이송으로 기존 환자 진료 지연도

    사전고지 없는 이송이 기존 환자 진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도 많았다. 전체 응답자의 68.0%는 사전고지 없이 이송된 중등증 이하 환자로 인해 기존에 진료 중이던 환자의 응급 처치가 지연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진료과별로는 내과계 77%, 응급의학과 60%, 외과계 58%였다.

    또 진료 지연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 중 52.0%는 시범사업 시행 전과 비교해 사전고지 없는 이송에 따른 진료 지연 사례가 증가했다고 봤다. ‘전혀 아니다’라는 응답은 없었다.

    결국 전공의들이 지적하는 문제는 ‘이송 병원 지정’과 ‘실제 치료 가능성’ 사이의 간극이다.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 해소를 목표로 구급차의 목적지를 정하더라도, 도착한 병원에서 중환자실·수술실·배후진료과가 연결되지 않으면 환자 안전은 담보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젊은의사정책연구원은 “정부가 말하는 응급실 뺑뺑이 종료는 구급차가 목적지를 정했다는 의미일 뿐”이라며 “그 환자가 적절한 처치를 받았는지, 수술실까지 연결됐는지, 환자에게 악 결과가 발생했는지는 이송체계에 기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YPPI “형사 면책·배후진료 연계·사전 협의체계 선행돼야”

    젊은의사정책연구원은 시범사업의 전국 확대나 제도화에 앞서 세 가지 선결 과제가 응급의료법 개정안 심사 및 시범사업 종료 평가에 즉시 반영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원은 첫째 과제로 중증·응급 환자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의 형사처벌 위험 및 배상·보상 국가 지원 체계 미비를 지적하며, “중증·필수의료 진료 중 발생한 의료사고의 형사처벌 면책 법제화, 배상·보상에 대한 국가 책임 보장, 방어 진료 없이 최선의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임상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둘째로는 응급실 수용 이후 수술실·중환자실 연계 보장 체계 미비 및 전원 기준 불명확성을 문제로 꼽았다. 연구원은 이에 대해 “응급실·수술실·ICU 치료 연속성을 보장하는 원내 연계 프로토콜 사전 수립 및 전문의 인력 확충 지원, 연계 실패 시 전원 기준 명확화 및 기준 사전 고지, 원내 전 진료과 대상 응급의료 연계 교육·브리핑 정례화”를 제안했다.

    셋째로는 이송 체계 거버넌스의 실효성 확보를 강조했다. 연구원은 현 체계에 대해 정적 병상 정보 기반 부정확한 이송 지시 및 수용 병원 전문의 사전 협의 절차 부재가 있다고 봤다.

    연구원은 “ICU 가동 현황·수술실 운용 상태·배후진료과 당직 인력을 포함한 실시간 데이터 공유 체계 구축과 광역상황실 기능 전환: 일방적 수용 지시 → 사전 조율 중심 운영, 수용 병원 응급실 전문의의 임상적 수용 여부 판단을 위한 사전 고지·협의 절차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응급환자 이송체계 개편은 단순한 행정 효율화가 아니라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시범사업 종료 이후 반드시 현장 의료진의 경험과 데이터를 중심으로 제도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