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미국은 식품의약국(FDA)이나 국립보건원(NIH)같은 기관을 통해 단계별로 희귀의약품에 대한 연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난치병 연구를 장려하되 공식적인 기관에서 진행하지 않았으나 최근 미국을 따라가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체계와 충분한 협의를 통해 환자 중심의 미충족 의료 수요를 충족하는 규제와 인프라를 구축했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여재천 사무국장은 23일 열린 '신약개발의 혁신성과 글로벌의료시장의 미충족 의료 수요'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여 사무국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증상 완화 목적의 프라이머리 케어(primary care) 약물이 블록버스터화 됐으나 최근에는 생존율 증대, 질병 진행 지연 등 스페셜티(specialty) 약물의 매출이 증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FDA의 최근 신약 승인 추세에서도 드러난다. 여 사무국장은 "FDA 약물평가연구센터(CDER)는 지난 5년간 연평균 43개 신약을 승인했는데, 희귀의약품 허가 비율이 높았다. 2017년에는 항암제, 감염병, 신경성 질환 순으로 많이 허가됐고, 생물학 무기 공격 위험 대비 천연두(smallpox) 치료 신약이 2018년 첫 승인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FDA 바이오의약품평가연구센터(CBER)도 키메릭 항원 수용체(CAR) T세포유전자치료제, 대상포진백신, 혈우병 A/B 치료제 등 랜드마크 승인을 해왔다.
여 사무국장은 "2018년 CDER로부터 승인받은 신약 59개 중 43개(73%)가 한 개나 그 이상의 신속허가 프로그램으로 승인을 받았고, 19개(32%)는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 신약이었다. 특히 HIV-1 환자들 중 여러 개의 약물로도 치료가 성공적이지 못했던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단클론항체가 처음으로 승인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희귀의약품이 보험으로 여러가지 선순환구조를 갖는 체계에서 작동하게 되려면 규제 완화가 아니라 더욱더 확실한 규제를 통해 신속 허가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우선순위를 매겨 자원을 투입하고, 치료에 성공적이지 못했던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빠른 규제 개선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FDA는 신속허가 프로그램으로 신속심사(Fast Track), 혁신 치료제(Break-through Therapy), 우선심사(Priority Review), 조건부허가(Accelerated Approval)를 가지고 있다. 또한 미국 NIH와 FDA 두 기관장은 2018년 유전자치료제를 다른 의약품과 동일한 수준으로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 사무국장은 신약개발의 오픈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단일 타깃(단백질 수용체)을 제어함으로써 분자의 반응에 초점을 두는 것에서 나아가 다양한 타깃에 작용하는 다중약리학 의약품(polypharmacology drug)이 신약으로 개발 가능하게 됐다"면서 "유전자/유전체 분석과 더불어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증가하면서 이런 의약품들이 앞으로 더욱 각광받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해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은 멀다. 여 사무국장에 따르면 희귀질환 관련 정책 목적이 미국과 유럽은 '희귀의약품/의료기기 개발 촉진', 일본은 '의료비 지원 또는 희귀의약품 공급 지원' '의약품/의료기기 개발 촉진'이지만 한국은 '의료 비 지원 또는 희귀의약품 공급 지원'에 국한되고 있다. 정의에 따른 추정 희귀질환 환자 수도 인구의 1%로 미국 8~10%, 유럽 6~8%에 비해 매우 적다.
또한 희귀의약품에 대한 지원 정책을 보면 미국은 희귀의약품법(Orphan Drug Act, 1983), 일본은 약사법 규정(1993), 유럽연합은 유럽의약품청(EMA) 규정(2000)에 따라 기본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근거 규정이 없다. 희귀질환 연구개발 인프라 지원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여 사무국장은 희귀질환 연구개발사업의 주요 경제효과는 희귀질환 의료서비스 개선에 따른 국민 의료비용 절감과 희귀질환 의약/의료기기 제품 부가가치 증대를 꼽았다.
그는 "희귀의약품 연구개발에서 '얼마만큼 시장을 차지하고 경제적으로 이득을 얻을까'라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 시대가 바뀌고 미국도 모든 정부 정책이 그쪽을 포커스하지 않는다"면서 "환자와 보건의료체계 속에서 건강보험료나 재정 선순환적인 흐름 측면에서 인식을 달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보건의료재정에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이는 우선순위에 대한 보건당국의 철학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식약처가 방향성에 있어 자신감이 없는 것이 아닌가, 식약처를 탓하기 전 식약처만의 독립성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을 던지며 보건당국은 국민의 보건과 복지를 위해 좀 더 전방위적으로 다수의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