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디지털헬스케어가 기존의 의료가 가진 한계점들을 보완해줄 것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제도적 장벽 등으로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단 지적이 나왔다.
5일 국회의원회관 1세미나실에서는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과 연세대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의 주체로 디지털헬스케어 관련 정책 포럼이 열렸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디지털헬스케어의 특성을 고려한 제도 개선과 지원이 이뤄질 때 국민건강 증진과 경제적 가치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진∙개인정보 보호 문제는 최소화 가능...생태계 조성위해 정부 역할 중요
발제자로 나선 서울대 경제학부 홍석철 교수는 급격한 인구고령화와 의료비 증가 추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디지털헬스케어가 헬스케어 분야의 효율성을 높이고, 소비자 편의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먼저 수요 측면에서는 진단 정확도∙미래 건강위험 예측력 향상,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지며, 헬스케어 서비스 접근에 대한 시∙공간 제약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했다. 공급 측면에서는 환자 1명당 서비스 한계비용이 감소하면서 서비스 가격을 낮추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헬스케어 산업은 물론이고 관련 및 이종 산업과의 시너지까지 낼 수 있다고도 했다.
홍 교수는 오진 및 의료사고, 개인의료정보 보호 문제를 둘러싼 우려에 대해서는 “디지털헬스케어에 대한 우려의 대부분은 실현된 비용이 아니다. 기술과 제도 개선을 통해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령 현재는 안전성이나 정확도 등에 대한 우려때문에 의사의 진단 보조용으로만 쓰이고 있는 디지털 기기 등도 기술이 발달하면서 독자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형태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개인정보 문제 역시 블록체인 등 관련 보안기술이 지속 발전하면서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봤다.
홍 교수는 디지털헬스케어가 유망한 분야임에도 국내에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는 낮은 지불의사, 낮은 참여율, 낮은 경제성 등 3가지를 꼽았다. 그는 이에 대해 “기업들은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한계비용을 낮추고 기술과 서비스 품질을 높여 경제성을 확보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했다.
디지털헬스케어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지불자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진단이나 치료 부분은 건강보험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건강관리나 사전 예방은 기업도 중요한 지불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정부는 진입장벽을 낮춰 창의적인 스타트업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하고 신규 기술 및 서비스 확산이 가능하도록 규제 완화, 데이터 인프라 구축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과거 제조업 중심으로 기적적인 고도 성장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서비스업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는 없다”며 “이제는 디지털헬스케어가 서비스업의 국가대표로 나서야 한다. 세계적으로 탑을 다투는 의료와 ICT 기술이 융합한다면 국가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존 체계론 디지털헬스케어 가치 제대로 평가 어려워...환자중심성 등 고려 필요
연세의대 예방의학과 신재용 교수는 ‘디지털헬스케어의 환자중심성과 임상적 가치’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그는 현행 제도가 디지털헬스케어를 평가하기엔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환자중심성 지표 등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실제 독일의 디지털헬스케어법은 낮은 위험성 등 5가지 기준을 충족한 디지털 치료기기에 대해 먼저 수가를 적용해주고 1년후 긍정적 임상 및 환자 중심성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환자 중심성 결과는 환자 순응도, 환자 접근성, 건강정보이해능력, 환자 자주권, 질환관리 능력 향상, 환자와 가족의 간병 부담 감소 등의 지표를 통해 평가한다.
신 교수는 디지털 치료기기를 예로 들며 디지털헬스케어에 대한 경제성 평가를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직접비의 영역에서 벗어나 간접적인 영역이나 사회 전반적인 경제적 가치도 환자 중심성으로 포함시켜야 디지털헬스케어가 가져다주는 유무형의 가치를 모두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디지털헬스케어에 대해 얼마를 지불할 것인지에 대해선 “독일의 경우 연간 2000유로까지 디지털 치료적 중재에 대한 선지불을 하기로 한 상태”라며 이해 관계자들이 함께 논의하며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지불 방법과 관련해선 “현행 상대가치 수가체계에선 디지털 행위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에 가치 중심 체계로 변환이 필요하다”며 “그 과정에서 의사들은 관련 서비스에 대해 얼마의 수가를 받아야 하는지 그에 따른 책임과 제공하는 서비스는 무엇이 돼야 할지도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끝으로 신 교수는 “디지털헬스케어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봐야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디지털 치료기기의 가치는 그것이 전문의가 많은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쓰일 때와 의료 취약지에서 쓰일 때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치원 상무 "활성화 위해 물꼬 터야"...의협 유소영 이사 "산업적 측면만 부각돼 우려"
패널로 참석한 카카오벤처스 김치원 상무는 수가가 낮고, 의료 접근성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디지털헬스케어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구축이 쉽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국내 기업임에도 투자 유치 과정에서 우리 국민에게 최선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이 가능한지 여부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보수적인 보험분야가 아닌 기업의 고용주들이 직원 대상 복지 차원에서 디지털헬스케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시장에서 서비스가 사용되면서 데이터가 쌓이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 기술과 서비스가 고도화되면 보수적인 보험사들도 해당 서비스를 도입하게 되는 식이다.
김 상무는 “누군가가 물꼬를 터주지 않으면 보수적인 보험이 먼저 나서기는 쉽지 않다”며 “그런 시스템 설계의 좋은 예가 독일의 디지털헬스케어법이다. 독일은 이 법을 통해 디지털치료제에 대해 선도적으로 수가를 적용해줬다. 우리도 그런 시스템이 마련되면 디지털헬스케어가 산업으로 작동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유소영 정보통신이사는 디지털헬스케어가 산업적 측면만 지나치게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비대면 진료를 겨냥해 국민 건강 증진이 최우선 목표가 돼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유 이사는 “일각에선 의협이 비대면 진료를 찬성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비대면 진료는 어떤 경우라도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없고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게 대원칙”이라며 “회원들은 환자안전 문제를 가장 큰 우려점으로 꼽고 있고 최근 내과의사회 설문에서는 비대면 조사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지난해보다 10%가량 더 높아져 70%를 기록했다”고 했다.
이어 “환자를 포함한 국민들이 디지털헬스케어에 대한 우려와 쟁점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며 “정부가 디지털헬스케어 정책을 구상 및 발표할 때는 기존에 의료진에게만 부과되던 책임과 의무가 국민에게도 생길 수 있다는 점과 그 한계에 대해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환자 안전이라는 중요한 가치는 지키면서도 신기술의 빠른 시장 진입을 돕고, 환자중심성을 고려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보험급여과 정성훈 과장은 “복지부는 건강보험 측면에서 신기술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지만 다른 한편으론 새로운 의료기술이나 기기를 환자의 선택권 차원에서 보장해줘야 하는 역할도 갖고 있다”며 “이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난해 말 디지털 치료기기 등재 방안에 대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보고 한 바 있다. 유효성의 경우는 시장에서 쓰여야 축적이 가능하단 점에 공감해 안전성이 보장되면 선진입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임상 가치뿐 아니라 환자중심적 측면도 고려할 생각”이라며 “건강보험 입장에서 산업계와 보건의료가 윈-윈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