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말마따나 현재 그의 직함엔 실체가 없다.
올해 5월, 인천시의료원을 대표하던 그가 성남시의료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성남시의료원은 내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인 터라, 그는 현재 존재하지도 않는 의료기관의 대표인 셈이다. (그리고 의료원장의 임기가 3년이니, 성남시의료원이 완공되는 순간 그의 임기 절반이 끝나 있을 것이다.)
성남시의료원 '초대' 원장 조승연.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 중인 공사장 옆에서, 그에게 성남시의료원과 공공의료에 관해 물어봤다.
메디게이트뉴스: 원장님 외과 전문의시더라고요. 외과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지금 비인기과가 되었고요.(웃음)
외과는 꼭 필요한 전문과지만, 병원 수익 관점에선 우선순위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 외과가 처한 상황이 공공의료가 처한 현실과 맞닿는 면도 있는 것 같은데요.
혹시 본인이 선택한 전문과의 상황이, 공공의료에 관심 두게 된 이유와도 관련이 있을까요?
-글쎄요.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어차피 사람은 자기 처지를 의식할 수밖엔 없으니깐요.
사실은 제가 외과를 선택했을 때는 지금 같진 않았고요.(웃음)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 보였는데, 지금 관점에선 아니라고 말은 못하겠네요.
메디게이트뉴스: 조 원장님은 뭐랄까요, SNS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면 '공공의료 전도사'라는 이미지십니다.
-아. 그런가요? (웃음)
메디게이트뉴스: 공공의료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제가 공공기관에 근무한 건 2001년도 적십자병원부터였습니다.
거기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공공병원의 문제점(만)을 많이 느꼈었는데요.
2010년 인천의료원에 왔을 땐, 원장의 위치에서 여러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고자 했지만, 이번엔 어떤 충돌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공공의료에 관심을 두게 됐죠.
그 이후에는 진주의료원 사태 등 공공의료가 가진 시대적 딜레마를 몸소 체험하면서, 구체적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성남시는 요즘 지방자치단체장(이하 지자체장)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여론조사에서 당내 대선 2위 지지율을 얻으셨더라고요.
작년 메르스 사태 땐 신속한 대처로 국민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남기기도 했고요.
처음 이재명 시장한테 의료원장 제안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사실 처음에 제안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웃음)
제가 지원을 했죠.
성남시의료원은 공공의료를 하는 사람 모두에게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저도 2013년도부터 설립 자문단에 들어갔었고요.
이미 해마다 회의도 서너 차례 참여하면서 이미 관여를 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인천의료원과 협약도 해서 성남시의료원에 많은 도움을 줬죠.
그러다 보니 관심을 가지던 터에 원장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지원을 한 겁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코드인사라는 게 언젠가부터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사실 시장처럼 선출직 공무원이 자기 철학을 정책으로 실현하려면, 당연하게도 철학을 이해하고 코드가 맞는 사람을 인선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입니다.
두 분 일단 SNS를 많이 활용하시는 면은 비슷하시던데요.(웃음)
-(웃음)사실 시장님은 제가 SNS를 많이 하는지도 잘 모르실 겁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적어도 공공의료에 관한 코드는 이재명 시장과 잘 맞는 것 같나요?
-잘 맞는 편이죠.
성남시장 자체가 여기(성남) 구도심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셨고,
여기에 있던 큰 병원이 문을 닫아, 의료 공백 지대가 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고,
공공의료를 계기로 여러 복지에 관심을 가지셨던 것 같아요.
지금도 의료뿐만 아니라 여러 복지에 대해 선도적인 역할을 하시잖아요?
거기에 중요한 한 축으로 의료를 심도 있게 이해하는 지자체장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당연히 코드가 같다고 볼 수 있죠.
메디게이트뉴스: 진주의료원 사태에서도 느끼는 거지만, 지자체 특성상 선거에 따라 의료 정책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기도 하고요, 공공의료기관의 생사가 갈리기까지 합니다.
지금 성남시의료원도 현 시장이 의지를 갖고 건립을 추진합니다만, 그 뜻의 좋고 나쁨과는 상관없이 차기 시장이 반대당에서 나올 경우, 의료원의 방향도 뜻하지 않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장님도 이런 고민을 많이 해보셨을 텐데요.
-사실 그렇진 않습니다.
의료를 포함한 공공복지에 대해 반대하는 정치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번 정권 역시 진주의료원 외에는 공공의료에 대해 부정적인 정책이 별로 없었습니다.
공공의료 지원도 많이 늘었고요.
(이런 점에서) 결국 공공의료를 포함한 복지를 확대하는 건, 누구나 원한다는 뜻일 겁니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에 대한 차이는 있을 수 있죠.
제가 인천시의료원에 있을 때도 처음엔 송영길 시장이었고, 다음에 (다른 정당인) 유정복 시장으로 바뀌었습니다만, 인천시 재정이 어려워도 지원을 줄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여야가 아니고 한 지자체장의 철학 문제죠.
그런 문제를 막는 게 결국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고요.
진주의료원 사태 이후 지자체장이 맘대로 의료원 폐쇄를 못 하도록 법적으로 막아놨잖아요?
그것도 시스템인 거죠.
어느 누가 여기 시장으로 오든, 공공의료가 갈 길을 근본적으로 해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여야 어느 정치인을 만나도 의료원이 잘 안 될까 봐 그걸 걱정하지, 공공의료원 자체를 하지 말자고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이미 끝난 아젠다라고 생각합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원장님 임기가 3년인데, 개원 전에 반절이 끝나더라고요?(웃음)
-그렇네요
메디게이트뉴스: 아마 준비를 제대로 하라고 원장을 일찍 뽑은 게 아닌가 싶은데요.
-당연한 건데요.
의사도 보통 개원할 때 그냥 누군가에게 맡겨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관여하잖아요?
병원 다 지어놓고 그때야 "원장 뽑아 운영하면 되겠지"라는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성남시에선 알고 있었던 것 같고요.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지금 원장님처럼 의료기관의 설립 초기부터 의료 인력을 구성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의사로서 흔한 경험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두고두고 회자할 수 있는, 그야말로 초대 원장이 되시는 거죠.
완전히 무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만, 책임감이나 스트레스도 만만친 않을 것 같은데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소회 같은 게 있을까요?
-책임은 당연히 막중하게 느낍니다. 고민도 많고요.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게 힘들고요. 대한민국에서 이런 공공의료기관을 처음부터 만드는 사례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기대가 큰 만큼 관심 있는 사람도 많고, 관심의 분야도 다양하더라고요.
설립 단계부터 병원의 미션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오가서, 그런 의견을 잘 통합하는 게 어려운 일 같습니다.
기술적으로 사람을 잘 고용하고 운영하는 것은 경영전문가라면 할 수 있는 거고요.
사실 원장이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은, 유례없이 만들어지는 이런 공공의료원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제대로 기틀이 잡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격이 비교적 낙천적인 편이라, 크게 스트레스는 안 받는 편입니다.
잘 되겠죠, 뭐.
메디게이트뉴스: 보통 어떤 프로젝트에 매몰되다 보면, 몇 가지 미션이 머릿속을 계속 맴돕니다.
나중에는 그 문장이 또 단어로 축약돼 다시 맴도는데요.
요즘 원장님 머릿속을 가득 채운 단어가 무엇일까요?
-공공의료에 관한 단어면, 사실 뻔한 것들입니다만,
대신 성남시의료원은 독특한 게 있습니다.
소위 '시민사회의 공공성'이라는 거죠.
많은 공공의료기관이 들어서지만, 지역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지는 병원은 이게 처음입니다.
시민이 원해서 지은 병원이 가져야 할 지향성은 민간 병원과는 아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공공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자꾸 그 부분이 계속 머리를 맴돌고 있네요.
메디게이트뉴스: 어떤 분들은 분당에 병원도 많은데 공공의료기관이 제대로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우려를 어떻게 반박하시겠습니까?
-사실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남시의료원은 애당초 시민들이 원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시민들이 가장 필요한 위치에, 필요한 역할로 만들어질 겁니다.
만약 병원 생존에 문제가 된다면 시민이 선택을 잘못한 게 되는 거고요, 시민들이 필요 없다고 인정하면 병원을 없앨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생존이란 말은 의미가 없는 거고요.
오히려 생존을 걱정하는 건 주위 민간 병원입니다.
지금 주위 민간 병원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공공병원은 세금 지원을 받기 때문에, (경제적인) 스트레스 자체는 적을 수밖에 없지만, 민간병원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 부분을 조율하는 게 제 중요한 역할이기도 합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원래 목적인 공공성과는 무관하게, 공공의료기관은 경영 때문에 많은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흑자를 많이 내면 내는 데로, 적자가 많으면 방만한 경영이라는 이유로 비난이 일죠.
이전에 인천시의료원장을 역임하시면서, 공공의료의 경영에 관한 생각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원장님이 보시기엔, 도대체 어떤 게 적절한 거죠?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나라 의료가 공공적이지 않기 때문인 거죠.
우리나라 공공병원의 적자와 흑자 개념은, 단순히 민간병원 잣대를 들이대 병원에서 흑자가 나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공공'이란 개념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개념을 적용해서 문 닫아야 한다고 하면, 모든 공공기관이 다 닫아야 하는 거죠.
경찰서도 문 닫고, 군대도 닫아야 합니다.
공공기관의 사회 유지 기능을 인정한다면, 적자와 흑자 개념은 방만한 운영이나 낭비를 막을 수 있는 제한적인 방법으로만 고려해야지, 전체적인 경영을 가지고 따져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메디게이트뉴스: 공공의료기관의 모든 직원은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됩니다.
김영란법 때문에 직원들 교육도 필요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법에 관해 한 마디 부탁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어 놓은 거잖아요?
공공병원에서 자꾸 의사라고 국한하니까, 김영란법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요.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아닌) 계약 담당 직원이 계약당사자와 3만원이 넘는 식사를 함께하면, 누가 좋게 보겠습니까?
그 사람도 병원 직원이고, 의사도 마찬가지죠.
의사든 의사가 아니든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국민들의 세금을 지원받기 때문에, 김영란법의 방향은 옳다고 봅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전에 보건소에서 일할 때 보면, 개원가에선 지자체가 정책적으로 뭔가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공공의료기관이 진료까지 하는 것에 대해, "내가 먹고살기도 힘든데, 저기랑 경쟁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고요.
성남시의료원을 준비하면서 인근 개원의들의 저항은 없었나요?
-많았죠.
저도 민간병원에 있었습니다만, 다들 어렵죠.
개원가 어려운 것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의료원 개원 준비를 하시면서, 제대로 된 의료전달체계를 위해 특별히 신경 쓰시는 게 있으신가요?
-당연하죠.
저는 큰 틀에서 우리나라 의료 문제 해결은, 공공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공공의료 인프라를 늘리는 겁니다.
지금 너무 적은데, 공공병원을 더 지어야 합니다.
두 번째가 의료전달체계의 회복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공공성을 회복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들이 지금처럼 경영 압박을 벗어날 수 있는 것도 그 길이라고 봐요.
공공병원을 지원해주고 본인도 관심 가져서 일할 수 있는 자리도 많이 만들고, 의료전달체계 모델도 같이 구축하고요.
의료전달체계를 회복하는 대안은 공공의료기관만 만들 수 있습니다.
공공병원은 보건복지부에서 정책적으로 외래 보지 말고 입원 환자만 보라고 해도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만, 민간병원에선 불가능하죠.
결국은 공공병원과 민간병원, 그리고 개원의들이 큰 틀에서 같이 맞물려서 나가야 합니다.
메디게이트뉴스: 결국 공공의료가 제대로 실현되는 게, 개원의혹은 일차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럼요.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마음 속에 다 공공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돈벌이를 위해 환자를 희생시키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현실의 벽에서 자꾸 왜곡되고, 비급여에만 몰리고, 비싼 주사만 놔주게 되고…
이런 점도 의사 스스로가 공공의료에 참여하게 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봐요.
어차피 보건의료 예산을 똑같이 써야 한다면, 의사들이 국민을 위해서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도록 쓰는 게 맞죠.
메디게이트뉴스: 사실 우리나라 모든 의료기관장이 마찬가지겠지만, 소속이 공공의료기관이라 정책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일정 기간 일하다 보면, 나의 철학을 구현하고 싶은 정책이나 아이디어도 떠오를 거고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선, 조금 더 큰 권한이 있는 자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 같거든요.
혹시 그런 생각은 없으신가요?
-저보단, 그런 능력 있거나 방향성이 있는 분께서 그런 자리에 갔으면 좋겠어요.
좋은 분들이 정책을 만들거나 정치를 하는 자리에 가서 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메디게이트뉴스: 개인적인 질문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원장님은 어떤 의사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의사를 한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아픈 사람을 고쳐주려는 맘이 있는 거잖아요?
제가 지금 개업을 해서 누구를 치료해 줄 수 있는 시기는 지난 것 같고요.
공공의료나 그 정책적인 측면에서 한 획을 긋는 의사였다고 인정받으면 좋겠지만…
그게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