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문재인 케어는 의학적 비급여를 급여화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현행 63.4%에서 70%까지 높이는 정책이다. 이는 환자가 전액 본인부담금을 내던 비급여 치료를 의학적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되면 건강보험에서 보장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22년까지 5년간 30조 6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문재인 케어를 시행하기 전에 원가 이하의 의료수가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문재인 케어로 비급여가 급여화되면 원가를 보존하던 수단인 비급여가 통제되기 때문이다. 급기야 대한의사협회는 21일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해 대정부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의료계가 문재인 케어 시행을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일 열린 대한보건경제정책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보건학자들의 발표를 토대로 문재인케어에서 논란이 되는 주요 쟁점을 10가지로 정리했다. 이날 발표자는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교수,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 등이다. 정 교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이고 신 교수와 김 교수는 문재인 케어 자문위원이다.
①건강보험료 인상은 10년간 평균인 3.2% 수준에 머무른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5년간 30조6000억원의 재원 마련이 가능한가.
“2022년까지 5년간 누적 예산이 30조6000억원이다.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2014년~2018년)에서 4대 중증 질환 3대 비급여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24조9896억원의 예산을 필요로 했다.(문재인 케어 예산과 6조 정도만 차이가 난다.)
건강보험료 인상이 없더라도 생산 인구 증가 등으로 10년간 평균 건강보험 재정의 자연증가율은 6.4%였다. 올해 건보 재정의 자연증가분도 3조원에 이른다. 또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에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을 건강보험료 수입의 15%에서 17%로 2%p만 올려도 매년 1조원의 재정이 늘어난다. 소요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방향이 중요하다.”(정형선 교수)
②비급여가 급여화되면 진료비가 저렴해져 환자가 늘고 소요 재정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런데도 건강보험료 인상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해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흑자)은 20조원이 넘는다. 건강보험료를 올리기에는 이 금액이 너무 많다. (이 금액을 소진하고 나서야 건보료 인상 주장이 가능할 것이다.) 이후에는 국민도 건강보험 보장률이 올라가면 건보료 부담 수준을 현재 소득의 6.12%에서 7~8%까지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8년 건강보험료율은 2.04%이고 국고지원금 예산안은 7조3000억원이다. 국고지원금 예산은 보험수입액(2016년 기준 약47조원)의 20%이지만 적게 책정된 측면이 있다. 문재인 케어를 추진한 이후에 내년에 급여로 비용이 늘어난 상황을 보면서 건보료율과 국고지원금을 결정하면 될 것이다.“(정형선 교수)
③의료계는 원가 이하의 저수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수가 문제를 비급여를 통한 수익으로 대체해왔다는 지적도 많다.
“비급여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전체 의료비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상이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경상 의료비 중에서 가계직접부담 비중은 36.8%로 OECD 평균(20.3%)보다 1.8배 높았다. 반면 임상의사수는 인구 1000명당 22명으로 OECD 평균(인구 1000명당 32명)의 3분의 2에 그치지만 OECD 평균에 가까운 의료비를 지출한다. 이는 의료인에게 많은 보상을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서비스당 단가는 외국보다 낮지만 건강보험에서 많은 서비스가 나눠져 있고 이용빈도가 높아 외국 사례와 단순히 비교하기 어렵다.
건강보험에 등재된 치료는 대부분 저수가이고 원가보상이 안 된다는 의료계의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할 때 무작정 수가를 올리게 만들 수 있다. 국민이 의료인의 수입을 위해 지불하는 부담이 커지게 된다.”(정형선 교수)
④비급여가 급여화되고 의료비가 저렴해지면 의료쇼핑이 심각해지고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릴 수 있다.
“환자들은 진료비가 낮아지면서 의료쇼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예비급여 제도를 통해 막을 수 있다. 이는 꼭 필요한 의학적 비급여는 대부분 급여화하고 상대적으로 급여화할 필요성이 낮은 치료는 예비급여로 편입한 다음 환자 본인부담율을 50%, 70%, 90% 등으로 두는 제도다.
예비급여로 편입되면 환자 본인부담금이 줄긴 하지만 부담이 확 줄어들진 않는다. 환자들은 높은 본인부담금을 내면서까지 의료 남용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의사들도 꼭 필요한 치료가 아니면 이를 권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예비급여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면 전체 의료비 증가 속도는 현재보다 줄어들 것이다. 문재인 케어는 전체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환자의 부담은 더욱 줄이는 정책이다.”(정형선 교수)
⑤예비급여에 편입된 치료는 전면 급여화되는 것인가.
“예비급여는 의학적 타당성이 일부 판단이 필요한 항목에 두는 것이다. 예비급여에 두다가 급여와 비급여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비급여를 전면 통제할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 다만 문재인 케어를 통해 비급여의 급여화가 되면 10년 뒤에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예비급여가 가능한 것은 4년 전 환자가 본인부담금을 30~90%를 지불하는 선별급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선별급여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예비급여 제도가 탄생했다.” (김윤 교수)
⑥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을 막기 위한 의료전달체계의 대안은 무엇인가.
“의원급 의료기관은 만성질환관리, 병원급 의료기관은 중증도에 따른 진료비 차등제 모형으로 갈 것이다. 1, 2, 3차 의료기관이 서로 협력하고 연계해서 균형있는 의료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적절한 수가 감산과 가산 방식을 도입할 것이다.” (김윤 교수)
⑦환자 치료의 질을 높이는 의료기관에 대한 보상 체계가 부족해 보인다.
“공급자가 시설과 장비를 구입하고 비싼 인력을 고용하면 원가가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높은 수가가 책정된다. 공급자가 자유롭게 서비스를 공급하는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원가 구성요소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의료서비스의 질적 측면은 고려하지 않아 질적으로 하향 평준화할 우려도 있다.
적정수가는 원가의 편차를 반영하고 질적 수준을 반영해 건강보험 제도가 추구해야 하는 목표와 연계해서 정해야 한다. 문재인 케어의 수가 개선 원칙은 일괄적인 인상이 아니다. 건강보험 지불제도를 건강보험 보장성이라는 고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두면서, 혼합적이고 보완적으로 가야 한다.”(신현웅 교수)
⑧지불제도 중에서 신포괄수가제를 전면 확대하게 되는 것인가.
“신포괄수가 참여 병원은 현재 42개에서 올해 하반기 50개, 2018년 80개, 2019년 100개, 2020년부터는 최소 200개 이상 등에 이르게 된다. 신포괄수가제는 검사 등 의료행위 때마다 수가가 적용되는 행위별 수가제에 질병별 정해진 의료비가 책정된 포괄수가제를 결합한 것이다. 신포괄수가를 당장 시행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 제도를 확대하면 비급여를 차단하는 데 의미가 있다.”(신현웅 교수)
⑨총액계약제도 검토하고 있는 것인가.
“총액관리제(총액계약제) 도입은 5년 안에는 어려울 것이다. 총액관리제는 병원에 지급하는 건강보험 재정 총액을 고정하는 제도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는 총액관리제를 포함한 건강보험 지불제도에 대한 방향성을 세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재인 케어는 건강보험 지불제도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문재인 케어와 건강보험 5개년 계획은 함께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행위를 늘릴 때마다 의료행위에 따른 수가를 받는 행위별 수가제를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신현웅 교수)
⑩급여와 비급여를 병행하는 혼합 진료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나.
“정부는 혼합진료 금지라는 계획을 문재인 케어 발표에서 뺐다. 혼합진료가 금지되면 급여 진료에 비급여 항목이 섞일 경우 진료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현재처럼 급여 범위가 적은 상태에서 (전액 비급여로 환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역풍이 생길 수 있는 것을 고려했다고 본다. 2020년, 2021년에서도 비급여가 줄어들지 않으면 혼합 진료 금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필수의료가 전면 급여화되면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일본은 건강보험에서 필수의료를 보장해주기 때문에 혼합진료 금지가 가능했다.”(김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