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또 다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26일 국회에서 논의된다. 이번엔 여야 국회의원뿐 아니라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환자단체 등이 대거 참여하는 만큼 향후 법안 심의 방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5일 국회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이번 국회 공청회는 수술실 CCTV법 관련 쟁점사항이 결정될 주요 논의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한의사협회와 병원협회 등 의료계는 원칙적 설치 반대를, 환자단체는 수술실 내부 설치를 주장하고 있어 어느 선에서 절충안이 마련될지가 관건이다.
인천 척추전문병원 대리수술 의혹 등 새로운 복병될 수도
현재 여당 측 강병원 의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의원들이 출입구 등 수술실 외부에 국한해 CCTV를 설치하는 것에 공감대를 이룬 상태다. 즉 어느 정도 절충안은 마련된 상황인 셈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 인천의 한 척추전문병원에서 붉어진 병원 직원의 대리수술 의혹이 새로운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당 사건이 부각되는 것 자체만으로 법안 통과를 찬성하는 쪽의 주요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청회에 법안 찬성 측은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장과 이나금 환자권익연구소장이 참석한다.
실제로 평소 수술실 CCTV법 재정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환자단체는 해당 사건이 터지자 일제히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 21일 자신의 SNS을 통해 인천 척추전문병원 사례를 소개하며 "단순히 의사의 진료행위를 위칙시킬 수 있다는 우려만으론 환자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반드시 의무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22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인천 척추전문병원 사례처럼 수술실 무자격자 대리수술은 유령수술 끝판왕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하다"며 "이는 의사 면허를 이용해 환자를 속인 사기 행위"라고 질타했다.
수술실 CCTV법에 원칙적 반대입장을 고수해 온 의협과 병협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의협 관계자는 “이런 사건이 터지고 시간이 얼마 정도 지나야 차분해지면서 이성적인 생각이 가능하다”며 일부 사건으로 인해 국민 여론이 호도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에 의협은 대대적인 사건 진화에 나섰다. 의협은 24일 인천 척추전문병원 관계자들과 의료진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하고 내부적으로도 중앙윤리위원회 징계심의를 요청했다.
법안 통과에 반대하는 측에선 신임 김부겸 국무총리가 수술실 CCTV 설치에 반대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앞서 지난 7일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김부겸 총리에게 "수술실 CCTV 설치와 관련해 의료계와 환자단체의 갈등이 첨예하다. 정부 차원의 입장 조율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질의했다.
이에 김 총리는 "의료인들은 현재 전 국민과 함께 코로나19 방역전선에서 고생하고 있다. 지금 당장 의료인들에게 수술실 내 CCTV를 설치하겠다고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 현장 자체를 CCTV를 통해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다. 그러나 환자가 약속된 의사에게 수술을 받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수술실 입구에 CCTV를 설치하는 방향으로 절충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의료계 관계자는 “보건복지부가 수술실 내부 CCTV 설치가 어려울 것 같다는 입장을 내고 있고 이와 함께 신임 국무총리가 CCTV 설치에 우호적이지 않은 견해를 보인 점은 주목할 만하다”며 “이는 향후 법안 통과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의협 “공익 효과 적고 부작용 발생”…병협 “상급종합병원 우선 적용 넌센스”
그렇다면 의협과 병협은 26일 국회 공청회에 어떤 입장과 전략을 갖고 임하게 될까.
큰 틀에서 의‧병협은 수술실 CCTV 설치 자체를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지만 세부적인 입장은 미세하게 다르다.
우선 의협은 ▲수술실의 특성상 CCTV 설치에 따른 공익적 효과가 적다는 점 ▲이에 따른 더 큰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점 등을 중점으로 설득한다는 전략이다.
공청회에 참석할 예정인 의협 김종민 의무이사는 "최근 유튜브 등만 봐도 해킹 사이트를 통해 퍼진 영상이 난무하고 있다. 한 개인의 민감한 개인정보인 수술 영상이 어떤 경로든지 간에 퍼지게 되면 그 파장은 굉장히 클 것"이라며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 입장에서 수술 테크닉이 줄어든다기 보단 방어진료가 성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의협 측에 따르면 수술실 내부에 CCTV가 설치될 경우 향후 의료분쟁 시 의사들은 수술에 따라 이뤄지는 모든 행위에 대해 근거를 갖고 소명할 의무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특히 긴박하게 진행되는 수술 과정에서 CCTV가 장애물로 간주되면서 위험성이 존재하는 모든 행위가 망설여지게 되는 것이다.
김 이사는 "대혈관 수술 등은 매우 긴박하게 수술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은 매순간마다 선택과 결단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소명을 먼저 고려하다 보면 방어진료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CCTV 설치 효과와 관련해서도 "앞서 어린이집 CCTV 설치 현황을 보니 CCTV 설치 이후에도 아동학대 사례가 줄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는 어린이집 교사의 처우개선과 인성교육이 병행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기도의료원 소속 의료기관들의 CCTV 영상 복사 사례도 1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CCTV 설치의 필요성이 현저히 적다"고 말했다.
반면 병협은 상급종합병원에 우선적으로 수술실 CCTV를 설치하는 대목에 반대 입장을 내비칠 것으로 예상된다. 병협 측은 24일 공청회 참석자를 한양대병원 이형중 기획조정실장에서 오주형 경희대병원장으로 변경했다. 오 병원장은 현재 상급종합병원협의회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앞서 수술실 입구에 CCTV를 설치하자는 다수 의견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하는 대신 42개 상급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의무화를 우선 추진하자고 발언했다.
병협 관계자는 "최근 복지부가 공공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결과는 대부분 부정적이었다"며 "반대 이유는 의료기관 중 가장 체계적으로 수술실을 관리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을 CCTV 의무화 설치 대상으로 우선 적용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술과정에서 중대 의료사고나 무자격자에 의한 대리수술 등은 상급종합병원에서 비교적 드물다"며 "타 종별에 비해 환자평가와 수술 전후에 따른 관리체계도 세분화돼 있고 환자안전위원회, 의료사고예방위원회 등이 운영되고 있어 설치 의무화 대상으로 상급종합병원이 거론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