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의료계와 이공계에서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가 이공계 인재들의 대거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14일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실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 주최로 '의대정원 확대 제2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의대정원 확대의 영향으로 인한 이공계 인재 유출과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방안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의대정원 확대하면 의대쏠림 심화…지역의대 중심 증원과 지역인재 전형 확대로 완화
이공계를 대표해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 최세휴 회장(경북대 공과대학장) 역시 우수 인재들의 의대 쏠림을 우려하며 의대정원 확대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최 회장은 “20년 전에 의대정원 확대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면 그 때는 찬성이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반대”라며 “과거 학력고사 시절 역대 자연계열 수석들이 선택한 학과는 의예과, 물리학과, 전자공학과, 화학공학과 등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술 패권 시대가 됐지만 정작 산업 현장에선 첨단 기술을 개발할 우수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며 “특히 반도체 전문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지만, 고급 인력들은 공대가 아닌 의대로 몰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올해 수도권 주요 대학의 반도체 계약학과 최초 합격자의 등록 포기율은 155.3%에 달한다”며 “우수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의대정원이 확대돼 서울대 공대에 내신 3등급도 들어갈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장하기 힘들다. 출산율 저하로 인적자원이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수 인재들이 각 산업 분야별로 고르게 분포할 수 있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 임재준 공공부원장은 "사교육 업계에선 의대정원이 500명 늘면 이공계 재학생들 상당수가 의대에 도전할 거고, 1000명 이상이 늘면 석박사 과정 학생과 국책·기업체 연구원들도 의대 입학을 시도할 걸로 예측한다는 전망이 나온다”며 이공계 인재 이탈 현상 완화를 위한 두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먼저 “젊은 세대들은 수도권 거주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수도권 의대의 정원이 늘면 이공계 인재 이탈이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며 “지방 소재 의대정원을 중심으로 늘리면 그런 현상을 조금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여기에 더해 지역인재 전형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며 “해당 지역 출신 졸업생들이 그 지역에 남는 비율이 더 높다는 실증 데이터가 있다. 부족한 지방 의료인력을 늘리기 위해서도, 이공계 이탈 최소화를 위해서도 지방 소재 의대에서 지역 인재 전형 중심의 증원을 제안한다”고 했다.
의사과학자도 이공계 이탈 마냥 못 반겨…"성적순 학생 선발 시스템 손봐야" 주장도
연세의대 김철훈 약리학 교수는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더 투자할지를 충분히 고려해 ‘전략적 결정’을 내려야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특히 이공계와 협력해 융합연구를 해야하는 입장에서 이공계 이탈이 우려되는 의대정원 증원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복잡한 심정도 털어놨다.
김 교수는 “의대정원이 늘어 인재들이 의대로 많이 오게 되면 다른 분야의 인재풀은 반드시 영향을 받게 된다. 결국은 국가에서 전체적으로 보고 전략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이어 “최근 가장 강조되는 게 융합연구다. 의학도 엔지니어링, 데이터 등 이공계와 융합해야 우수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 먹거리르르 만들 수 있다”며 “그런데 이공계 쪽에 인재풀이 줄어든다면 그게 이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한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과기의전원) 설립을 추진 중인 카이스트 김하일 교수는 의대를 비롯해 모든 분야가 ‘성적’이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다투는 현 체계를 고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의사가 되는 데 어느 정도 지적 능력이 필요한 건 맞지만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다. 의대 입학을 성적순으로 정하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해당 직업에 맞는 사람을 선발하고 교육해야 하는데, 지금은 모두가 우수 인력을 데려오려고 다투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가적으로 어떻게 인재를 배분하고 어린 아이들이 장래에 선택할 직업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우수한 인력이 우리 쪽에서 이탈해서 저쪽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의 논의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의대 교육체계 개편하고 의사과학자 처우 개선…병원 내 연구중심 교수 제도 도입
이날 토론회에서는 바이오헬스 산업을 이끌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정부 차원의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애기도 나왔다.
과학고등학교 출신인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전 회장(고대의대 예방의학과 전공의)은 의사과학자 의대 교육 시스템의 변화와 이공계 인재에 대한 처우 개선을 주장했다.
강 전 회장은 “지금 의대에 입학하면 임상 의사가 된다고 봐야 한다. 특히 교육 과정이 빡빡하다 보니 과학기술 등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가 어려운 현실”이라며 “의대를 다니면서도 다른 전공을 듣고 학위를 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관심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주변 친구들을 보면 이공계 이탈 가속화 문제는 의사와 처우 차이가 너무 큰 영향도 있다”며 “특히 대학원생들의 경우 작게는 30만원부터 많아야 290만원 정도를 받는데, 이공계 인재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재준 부원장은 병원 내 연구중심 교수 제도의 신속한 도입을 제안했다. 그는 “젊은 의사과학자들은 기초의학교실 보다 병원 소속으로 연구하는 걸 더 선호하는데, 막상 대형병원 스태프가 되면 진료를 보느라 연구에 집중할 수가 없다”며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연구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연구집중 교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