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경찰서는 지난해 12월 31일 진료 상담 중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에게 흉기를 수차례 휘두른 박모씨를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치료를 받았으나 사건 당일 오후 7시 30분께 결국 사망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사건 발생 이후 애도성명서를 발표하며 별도의 추모 과정을 통해 고인을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한 일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시에 완전하고 안전한 진료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이사(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훌륭한 동료를 잃어 비통하다”라며 “유족분들이 두가지 말씀을 주셨다.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것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백 이사는 “진료환경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최근 (응급실 폭행 방지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현재 외래나 병동 진료환경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부족한 부분이 있다”라며 “의료인이 다치는 일은 환자에 대한 피해로 연결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안전시스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회의를 갖고 의료인의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는 치료를 중단한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지원방안을 수립, 발표했다. 지원방안의 주요 내용으로 △퇴원환자 방문 관리 시범사업 도입, △정신과적 응급상황 대응 매뉴얼 발간, △지역사회 정신질환자 보건-복지 서비스 연계 강화 등이 있다.
백 이사는 “학회에서 계속 이야기해 왔던 부분이 지난해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탈수용화 방향은 맞지만 후속대책이 부재하다는 것이다”라며 “퇴원 후 사례관리나 외래치료명령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일부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편견이 악화되고 치료를 안 받게 되는 악순환을 우려해왔다”고 말했다.
동시에 이번 사건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피의자 박모씨는 조울증으로 불리는 양극성 장애로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백 이사는 “의사협회도 정신감정이나 명확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낸 걸로 안다”라며 “우려가 있지만 매우 조심스럽다.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인지에 대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도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해 지역사회 관할 경찰서와의 매칭 시스템, 법 개정 등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상훈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회장은 “정신의료기관에 대한 안전사고 위험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물론, 지역사회 관할 경찰서에서 특별히 전담 매칭해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응급실 응급의료종사자에 폭행이 발생할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통과된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응급실에서 응급의료종사자를 폭행해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1억원 이하의 벌금, 중상해의 경우 3년 이상의 징역, 사망의 경우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이 회장은 “그 다음에 근원적으로 법을 좀 바꿔야 한다. 최근 응급의료법이 개정됐다. 응급실뿐만 아니라 모든 진료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의료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다. 이 회장은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자·타해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환자를) 입원시키기가 굉장히 어려워졌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입원을 하지 않고 지역사회에 있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