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의사들의 단체행동에 대해 정부가 이렇게 강경한 조치를 취하는 건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세계의사회(World Medical Association, WMA) 루자인 알코드마니(Lujain Al-Qodmani) 회장은 3일 메디게이트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의사들의 행동은 세계의사회의 의사 단체행동 윤리 지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공의들의 사직은 의사로서 윤리를 저버린 것이라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진료를 재개하라며 법적 처벌을 경고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행보가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세계의사회는 지난 1일 한국 정부의 의대증원 결정과 의사들에 대한 강경 조치를 비판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해당 성명서에서 세계의사회는 한국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에 대해 “명확한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의료계의 혼란을 초래했다”고 했다. 또 전공의들의 개인 사직, 학생들의 수업 거부∙휴학을 막으려는 정부 조치에 대해선 “잠재적 인권 침해로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의대 증원,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반발하는 의료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는 가운데 세계의사회의 성명서는 의료계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며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다음날(2일) 즉각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대한의사협회의 일방적 견해를 대변한 것”이라며 세계의사회의 성명서를 평가 절하했다.
이와 관련, 루자인 회장은 메디게이트뉴스를 통해 한국 정부의 의료정책 추진 방식과 의료계에 대한 강경 대응 기조를 재차 비판하며 “대화와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947년 설립된 세계의사회는 대한의사협회를 포함해 전 세계 120개국 의사회와 의사 900만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명실공히 전 세계 의사들의 대표 기구다. 국제보건기구(WHO)의 공식 파트너(Official Relations) 기관이며, 국제노동기구(ILO), 유네스코 등 다양한 UN 산하 조직과도 협력하고 있다.
의협은 1949년 세계의사회에 가입했으며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지역이사국을 맡았다. 그러다가 박정율 의협 부회장이 지난해 4월 세계의사회 의장으로 선출돼 활동하고 있다. 박정율 부회장은 세계의사회 공식 홈페이지에도 '세계의사회 리더 11인' 중 1인으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1987년 일본의사회에서 의장을 배출한 이후 37년 만에 아시아 지역에서 선출된 의장이라는 의미도 더했다. 또한 세계의사회 제226차 이사회가 4월 10일 총선 이후인 오는 4월 18일~20일 3일간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 세계의사회가 이번 사태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세계의사회는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 전 세계 의사들의 권리와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국제 의료 및 인도주의 단체로서,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성명을 발표해야 한다고 느꼈다. 다수의 언론 보도와 한국의 의료계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의사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의협 집행부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있다. 이에 한국의 의사들과 의협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 정부의 조치를 공개적으로 규탄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 한국 정부는 사직한 전공의들에게 진료 유지를 명령하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행정 처분과 법적 처벌을 경고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나.
전공의를 포함한 의사들은 파업 등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를 갖고 있다. 세계의사회는 이러한 권리를 의사 단체행동의 윤리에 대한 성명서(WMA Statement on the ethical implications of collective action by physicians)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해당 성명서는 이러한 행동의 적절한 실행 방식에 대한 명확한 지침도 제시하고 있다.
한국 의사들의 행동은 이 지침에 부합하며 윤리적 기준에 위배되지 않는다. 의사들의 단체행동에 대해 정부가 이처럼 강경한 조치를 취하는 건 드문 일이다.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답안을 내놓기 위해선 정책 입안자와 의료전문가들 간의 건설적 대화와 상호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한국 정부는 지역∙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내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현재 정원 대비 약 65%(2000명) 늘릴 계획이다. 이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
정부가 의대정원을 1년 만에 65%나 증원하겠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건 의학교육과 보건의료 시스템 전반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고려할 때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의학교육과 의료전달체계의 복잡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의협을 비롯한 주요 이해관계자들과 협의 없이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단기간에 학생이 급격히 증가하면 의대 교육 시스템의 수용 능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의대생은 충분한 임상 교육과 실습 기회, 풍부한 자원과 체계적인 교육 환경이 갖춰진 곳에서 배울 권리가 있다. 갑작스러운 증원은 미래에 의사가 될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교육과 훈련의 질을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의대정원 등에 중대한 변화가 예상될 때는 관련 이해관계자와의 충분한 협의가 필수다. 그래야 의료 서비스 향상과 교육의 질 유지라는 장기적 목표에 부합하는 조정이 가능하다.
또 의대정원을 늘리는 건 특정 의료 분야나 전반적인 의사 부족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의료 시스템상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고 국가 보험 시스템에 과도한 재정적 부담을 줄 수 있다.
- 정부는 전공의들이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벌인다고 비판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의사에 대한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전공의들이 환자 치료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로 묘사되는 건 매우 우려스럽다. 이는 의료계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다. 언론은 의사들이 사직한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함으로써, 의료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알리고 대중의 이해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의사들이 궁극적으로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시스템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전공의들의 사직 이유가 대중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하면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의료계에 대한 대중의 오해는 의료 전문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의료 시스템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협력을 힘들게 만들게 된다. 따라서 언론의 책임 있는 역할이 중요하다. 의사들의 입장과 사직 이유 등을 명확히 밝혀, 국민들이 모두를 위한 의료 서비스 개선 노력을 잘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한국 의료계와 정부, 한국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달라.
정부는 대화와 건설적인 협력으로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 강압적인 방식으로는 의미 있는 해결책 도출이 더 힘들어질 뿐이다. 모든 당사자가 열린 자세로 서로 존중하며 소통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의료 전문가와 한국 국민 모두를 위한 더 좋은 의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