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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부탁

사람을 살리는 건 의사가 아니었다

[칼럼] 양성관 가정의학과 전문의 겸 작가

기사입력시간 22-04-16 18:13
최종업데이트 22-04-1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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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관 작가의 의학 칼럼 쉽게 쓰기 
양성관 가정의학과 전문의 겸 작가의 ‘의대 교수와 전문가들을 위한 칼럼 쉽게 쓰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의대 교수와 전문가들은 의학 논문 쓰기에는 익숙하지만 칼럼을 비롯한 일반적인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의대 교수들이 건강칼럼을 쉽게 쓰면 쓸수록 올바른 의학정보가 같은 전문과는 물론 다른 전문과 의사들, 그리고 일차 의료기관의 의사들, 나아가 환자들에게까지 두루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시작 자체가 어려운 의대 교수와 전문가분들이라면 관심과 참고 부탁드립니다. 

①간만에 청진기 대신 펜을 드신 교수님께
②글로 살아남기
③작가의 필살기
④타이타닉과 고혈압
⑤ 사람을 살리는 건 의사가 아니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이런 글을 읽을 사람이 있을까요?”

처음 칼럼 제의를 받았을 때 제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이었습니다. 의학 칼럼이나 글을 쓰는 의사와 교수님을 상대로 글 쓰는 방법에 대한 칼럼을 써 달라니.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독자나 청중은 교수입니다. 거기다 그냥 교수가 아니라 의대 교수라니. 가뜩이나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독자가 극소수여서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거기다 낮은 원고료는 더욱더 칼럼을 쓰는 것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필요하나 수익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소송에 시달리는 바이탈과를 의사들은 기피합니다. 마찬가지로 상당히 까다로운 환자 아니 교수님과 의사들을 상대로 원고료도 적고, 잘못 썼다가는 욕만 먹기 십상인 이런 글이 무려 5회에 걸쳐 길게 이어질지 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편집자님께서 이런 글이 꼭 필요하며, 다른 의사분들에게 원고를 부탁할 때 제가 쓴 글을 모범 답안처럼 참고하시라며 링크를 보내준다는 말에 이어 저를 '언어의 마술사'라고 극찬까지 하시니, 어깨가 으쓱해져서 펜을 들게 됐습니다.

진정한 마법사는 제가 아니라 몇 마디 말로 저의 몸과 마음을 지배해 이 어려운 칼럼을 쓰도록 만든 우리 편집자님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사람을 살리는 ABCD, 다음은 EF.'  Easy and Fun. 쉽고 재밌으려면 가장 먼저 글의 얼굴인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와야 합니다. '베스트셀러 5의 법칙과 13의 저주'를 기억해 주십시오. 5와 13이 어렵다면 그냥 이름 하나로 오리지널인 ‘비아그라’를 능가한 ‘팔팔’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그 다음은 김춘수의 시 ‘꽃’입니다. 글을 쓸 때는 항상 시인이 되십시오. 시인이 어렵다면 개그맨도 좋습니다. 개그맨이 미인과 결혼할 수 있는 이유는 유머 때문입니다. 웃음으로 입이 열리면, 마음도 열립니다.       

시인이 되었다면, 이제 영화감독이 될 차례입니다. '프로포즈'를 하는 남자가 단순히 '나와 결혼해 줄래?'이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떠올려 주십시오. 

타이타닉이 침몰한 걸 세상 사람 모두가 아는 가운데, 영화 <타이타닉>을 제작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어떻게 배를 침몰시키며 스토리를 풀어갈지 고심한 것처럼, 환자와 독자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설득하고 심지어 감동까지 전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의사로 사는 건 힘듭니다. 한 대학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히 들립니다.  
"사람들이 의사를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심지어 가족들마저도." 

의사로 살아가는 것조차 벅찬데, 시인에 이어 영화감독까지 되라고 말하려니 송구스럽습니다. 변변치 않은 재주로 요란을 피운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합니다. 긴 글 가운데 한번 웃으시고, 한 문장 아니 한 단어라도 마음 속에 남았다면 저는 작가로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한 때 환자를 살리는 것은 의사이고, 글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작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심장이 멎은 환자를 심폐소생술을 하고, 심지어 에크모를 돌려도 결국 환자의 심장이 스스로 뛰지 않으면 의사가 모든 노력을 다해도 환자를 살릴 수가 없더군요. 마찬가지로 열성껏 글을 써도,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면 죽은 작품이라는 것을 꽤 긴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건, 의사가 아니라 환자 본인이었고 글에 생명을 주는 것도, 작가가 아니라 독자라는 것을 깨닫는 지금입니다. 

기회를 주신 편집자님과 긴 글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며 연재를 마칩니다. 모두 '팔팔'하시기 바랍니다. ^^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