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글로벌 비만·대사질환 신약 개발이 확대되면서 한국에도 새로운 임상시험 기회가 열리고 있다. 다만 이를 실제 임상시험 유치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실행 속도와 환자 모집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릴리 추지연 임상개발 컨설턴트는 15일 열린 '2026 코넥트 임상시험 국제 콘퍼런스(KIC)'에서 글로벌 임상시험 환경의 변화와 한국의 성장 가능성을 소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글로벌 비만 임상 증가세…"한국, 기존 연구 역량 확장할 기회"
아이큐비아(IQVIA) 자료에 따르면 비만 분야의 글로벌 임상 1~3상 시험 시작 건수는 2019년 대비 2025년 152건 증가했다. 이는 항암제(224건)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증가 폭이다.
추 컨설턴트는 "글로벌 CMH(Cardiometabolic Health) 연구가 확대되는 만큼 한국에도 더 많은 임상시험의 기회가 열릴 수 있다"며 "그 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오랫동안 종양학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왔다"며 "이미 구축된 한국의 임상시험 실행 역량을 빠르게 성장하는 비만·대사질환 분야로 확장할 수 있다"라고 부연했다.
다만 글로벌 임상시험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임상시험 실행 속도와 환자 모집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추 컨설턴트는 "한국의 제약사 주도 임상시험 국가별 순위는 2023년 4위에서 2025년 8위로 하락했다. 한국의 연구 역량이 약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국가도 규제 환경과 임상시험 실시기관 활성화, 환자 모집 역량을 빠르게 개선하고 있는 만큼 한국 역시 기존의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임상시험 속도와 환자 모집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속도는 국가 경쟁력"…규제 심사·기관 활성화 개선 과제
추 컨설턴트는 임상시험 실행 속도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규제 심사,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 승인과 계약 등 기관 활성화, 환자 모집 범위, 환자 접근성과 편의성 등 네 가지를 꼽았다.
그는 "비슷한 역량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는 이 역량을 얼마나 빨리 실행으로 전환하느냐가 큰 차이를 만든다"며 "속도는 단순한 운영 지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규제 심사에서는 신속성과 함께 일정의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임상시험계획(IND) 공식 심사 기간은 30일로 국제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기준이지만, 릴리의 2025년 내부 추적 자료에서 실제 소요 기간의 중앙값은 67일로 나타났다.
추 컨설턴트는 "30일과 67일, 두 수치는 근무일과 달력일로 산정 기준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면서도 "예상하지 못한 보완 질의가 발생하면 전체 소요 기간이 늘어나고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그는 "스폰서와 연구팀은 초기 제출의 완성도를 높이고 사전 질의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며 "제도 측면에서는 심사의 예측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임상시험 실시기관의 준비 과정에서도 불필요한 지연을 줄이기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추 컨설턴트는 일라이릴리의 비만·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질환(MASLD) 임상시험 사례를 소개하며, 연구계획 제출부터 기관 활성화까지 93~212일이 소요됐다고 밝혔다. 기관별 준비 기간에 차이가 발생하면서 실제 환자 등록에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은 41~160일로 달라졌다.
일부 기관에서는 영상검사 적격성 확인을 위한 자원자 스캔에 앞서 IRB 승인과 계약 체결, 처방 코드 신설 등의 절차를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했다.
추 컨설턴트는 "늦게 활성화된 기관이 같은 환자군과 같은 역량을 가지고 있더라도 등록에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지면 결과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며 "규정과 기관 절차상 가능한 업무는 병렬로 준비하고, 순차적 진행이 불가피하더라도 각 단계의 담당자가 전체 일정을 공유해 불필요한 대기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환자 모집 경로 확대·참여 부담 완화…환자 중심 임상 강화
임상시험을 신속하게 시작하더라도 환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연구 속도를 높이기 어렵다. 특히 당뇨병과 비만 등 만성질환 환자들은 대형 임상시험 실시기관뿐 아니라 지역 의료기관으로까지 퍼져있어 기존의 실시기관 중심 모집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추 컨설턴트는 "시험이 빨리 열려도 환자를 만나지 못하면 연구는 빨라질 수 없다"며 "데이터와 디지털 인프라, 의료진 네트워크, 실시기관 기반 모집을 연결해 환자 유입 경로를 넓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일라이릴리는 지역별 인구와 유병률, 연구자 관련 데이터를 활용해 잠재적 환자 분포를 파악하고 있으며, 디지털 광고와 소셜미디어, 의료진을 통한 사전 평가 및 의뢰 네트워크를 환자 모집에 활용하고 있다고 추 컨설턴트는 소개했다.
환자의 참여 부담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운영 방식도 도입했다. 구체적으로 당뇨병 임상시험에서는 지역 의료기관을 통해 안과 안전성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비만 임상시험에는 비대면 영양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외에도 장거리 이동 환자를 위한 교통편·숙박 지원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다만 이러한 환자 중심 서비스를 국내에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IRB 승인 등 제도적 절차가 과제로 남아 있다고 추 컨설턴트는 평가했다.
추 컨설턴트는 "한국의 IRB를 통과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벤더가 가지고 있는 자료와 한국 IRB에서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자료 사이에 차이가 컸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를 선택하는 것은 글로벌 스폰서이지만 연구를 선택하는 것은 환자"라며 "이 두 선택 모두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