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연초에는 진로를 고민하는 의사들로부터 비임상 영역으로 진출에 대한 문의가 늘곤 한다. 2000년대 초반처럼 의사들의 산업군 진출이 적을 때라면 정보를 얻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수 있지만, 요즘은 이미 기업에 진출한 업계 선배들이 직접 강의를 하기도 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정보 공유를 하기도 한다. 마음만 먹으면 한두명만 거쳐도 업계 진출한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정보를 획득해도 여전히 질문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어떤 기업으로 가야하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지? 만약 가서 잘 적응을 하지 못 하면 어떻게 하지? 혹은 잘 적응을 한다면 향후 경력은 어떻게 되는 것이지?” 이런 물음에 대해 약간의 도움을 주고자 한다.
R&D 중요성 강조...2020년 전년 대비 국내 기업 의사 채용 증가세 뚜렷
메디게이트 의사경력관리서비스 H-Link 내부 집계자료에 따르면, 2019년 비임상 의사 채용 발주건수가 70여건이었던 반면 2020년에는 연간 80여명으로 늘었다. 물론 업계 전체의 숫자는 아니지만 대략적인 비임상 의사 채용의 추이를 살펴볼 수 있다. 2019년에서 2020년이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제약, 바이오벤처회사, 벤처캐피탈 등 국내 기업이 영입하는 의사의 숫자가 외국계 기업에 비해서 많아지고 절대적인 숫자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에서 가장 많은 채용이 이뤄지는 곳은 제약회사다. 일반적으로 임상과학개발(Clinical Science Development)이라고 하는 업무를 한다. 이는 현재 LG화학에서 제약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손지웅 전 한미약품 부사장(내과 전문의)이 한미약품에서 라이센싱아웃에 성공하면서 시작된 업무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품을 도입해서 개발한 후에 일정 단계에서 다국적 제약회사에 판매하는 업무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의사들이 하는 일은 ‘GO or NO GO’에 대한 의사결정이다. 제품을 사올지 아니면 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제품을 개발할 것인지, 어디에 팔 것인지, 언제 팔 것인지 등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을 한다. 과정 중에 제품을 사오는 곳과 임상 시험을 진행하는 곳이 국내 보다는 외국일 가능성이 크다. 국내 관계자들을 만나기보다는 외국에 있는 관계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국내 기업에 가면 외국어를 쓸 일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김석란 전 한미약품 이사는 2018년 웨비나에서 “외국계 기업에서도 느끼지 않았던 언어 장벽을 한미약품에서 일하면서 느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함께 팀을 이뤄 일하게 되는 연구원들도 국내에서만 공부한 사람들만으로 이뤄질 확률이 낮다. 해외에서 학위를 한 Ph.D.혹은 해외에서 의사 면허를 획득한 사람들이 함께 일하게 된다. 국내 기업에 입사하는 의사는 동시에 연구원들을 조직원으로 두고 움직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외국계 기업이 입사 초에 대부분 개별기여자(individual contributor, 관리 책임 없이 실무에 매진하는 사람)로 움직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외국계 기업에 비해 국내 기업 종사자들의 팔로십(followership)이 좋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 해도 학위 후에 수년간 혹은 10년 이상 기업에서 근무한 사람들을 본인의 아래에 두고 일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자리를 옮기기 직전의 인터뷰 과정에서는 병원과의 문화적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어떤 부분에서 이 자리에 사람이 필요하고, 회사가 어떤 점을 검증할지, 그래서 후보자가 그 자리에 어떤 점에서 필요한지 등을 설명해 주는 국내 기업의 인터뷰는 드물다. 아마 내부에 지인이 있거나, 심지어 그 지인이 면접관이지 않고서는 설명을 듣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국내 기업에서 인력을 영입하기 위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기인한다. 대략 1년에 한 번 정도 인력 영입에 대해 결정하는데, 이 과정 중에 ‘사람이 필요하다. 얼마나 필요하다’ 이런 조직적 필요성이 공유되고 그 필요성이 ‘필요인력 몇 명’이라는 식으로 인사팀을 통해 결정된다. 의사의 필요성도 마찬가지다. 연구개발부터 생산, 그리고 판매까지 모두 한국에서 이뤄지는 만큼 한국 본사에서 모든 과정을 진행한다.
폐암 신약 ‘레이저티닙’ 개발에 나서고 있는 유한양행은 내부에(컨설팅 회사 제외) 2인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고 올해 MSD에 판권 수출을 성공한 한미약품에는 3인의 의사가 근무 중이다. 현재 회사가 해야 하는 업무들에 비하면 의사들의 수는 많이 부족한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거치면서 기업의 연구실적은 기업의 가치와 정비례하게 됐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연구개발에 부정적이었던 기업들도 현재는 R&D기업을 표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게다가 지난해 영업활동을 많이할 수 없었던 국내 기업들의 순이익률이 좋아지다 보니,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바이오벤처와 VC, CRO까지...새롭게 의사 영입하려는 수요 늘어
여기에 이어지는 의사 채용 움직임이 늘어난 곳이 바이오벤처와 벤처캐피탈(VC)이다. 국내 바이오벤처는 국내 제약회사로부터 투자를 받기도 하고 공동연구를 하기도 한다. 관 주도의 투자가 아니라 VC주도의 투자가 되면서부터 VC역시 많아지고 바이오 영역에 투자심사역 영입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의사들이 있는 VC와 그렇지 않은 VC들에 대한 LP(Limited Partner, 유한책임투자자)들의 평가는 물론 업계 전반적인 평가가 다르나 보니 의사들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는 ‘아는 사람’ 위주로 영입하던 VC들의 채용 형태도 많이 변화됐다. 자체적으로 의사를 영입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각자에게 맞는 평가테스트 과정을 만들어 인력 영입을 하고 있다. 가령 일반적으로 특정 주제를 주고 ‘이 기업에 투자 하겠는가? 한다면 왜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업무 영역은 CRO와 컨설팅이다. 국내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 영역이 활발해 지면서 ‘진정하게 이익을 본 회사는 CRO’라고 이야기할 만큼 중요해진 곳이다. 국내 제약회사가 고객이 되는 구조이고, 임상시험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서 이전에 복제약과는 달리 ‘컨설팅’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수년 전부터 우수한 경력을 갖춘 의사들 영입에 적극적이다. 2019년 LSK글로벌에 유한양행 및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경험을 쌓은 나현희 상무(내과 전문의)가 이동하면서 한 번 더 이슈가 됐다. CRO는 임상 시험을 이해하고 운영하는 경험을 쌓기에 좋은 환경이 된다.
국내 기업에 도전하고 싶다면 아래와 같은 점들을 생각해 보고 본인이 국내 기업에 맞는지 판단해 보기 바란다. 만약 5가지 항목 중 본인이 3개 이상 긍정적이라면 국내 기업에서 근무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일 것이다.
1. 문제 해결 :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로 해결하기보다는 혼자서 문헌을 보거나 자료를 찾아서 해결 방법을 찾는 편이다.
2. 인정 욕구 : 나 자신에 대한 즉각적인 평가 보다는 조직 안에서 평가 받고 장기적으로 평가 받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편이다.
3. 업무 영역 : 업무의 영역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되레 불편하다. 목표가 있고 그 일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즐겁다
4. 영업 성향 : 자사 제품의 우수성을 고객을 상대로 알리고, 영업으로 연결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느낀다
5. 기타 : 외국어로 학술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상사와 부하직원의 수직적 관계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2. 인정 욕구 : 나 자신에 대한 즉각적인 평가 보다는 조직 안에서 평가 받고 장기적으로 평가 받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편이다.
3. 업무 영역 : 업무의 영역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되레 불편하다. 목표가 있고 그 일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즐겁다
4. 영업 성향 : 자사 제품의 우수성을 고객을 상대로 알리고, 영업으로 연결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느낀다
5. 기타 : 외국어로 학술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상사와 부하직원의 수직적 관계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현재 국내 기업에서 일하는 의사들에 대한 수요는 과히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딜레마가 있다면 의사 채용 수요는 늘고 있지만 어떤 의사가 각 회사와 맞는지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기존에 누군가가 일했던 자리라면 기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국내 기업의 의사들을 영입하는 자리는 대부분 새로운 포지션이다. 그 자리에 명확하게 무엇을 원한다고 규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사실 구직자 입장에서 본인의 가치는 수요공급의 균형이 깨져야 많이 오른다. 공급이 적고 수요가 많아야 한다. 지금 국내 기업에서 의사 수요는 확실히 많아졌다. 그렇지만 현재 시장은 필연적으로 ‘모호함’이 존재한다. 조직이 성장하고 있고 그 속에 의사가 뛰어든다면 해야할 일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기회로 보고 일을 해보고 싶은 의사들은 국내 제약회사, 바이오벤처, VC, CRO 등에 문을 두드리고 진출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시점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