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을 두고 의료계에 대한 국회의 질타가 쏟아졌다.
의료계는 법안 통과에 따른 부작용이 많고 내부적인 의사면허관리, 공익제보 보상 등 제도로 충분히 대리수술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들은 의사와 환자간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현재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6일 오전 10시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안규백, 신현영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CCTV설치 관련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 공청회를 개최했다.
의협 “대리수술 비율은 0.001% 수준…CCTV 설치 실효성 없어”
우선 이날 공청회에선 수술실 CCTV법안을 두고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의견이 충돌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병원협회는 CCTV 설치 자체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주장하며 영상자료의 관리가 어렵다는 점, 방어진료가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반면 환자단체 측은 대리수술과 의료인 성범죄, 의료사고 은페 등을 예방하기 위해 반드시 수술실 입구가 아닌 내부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의협 측은 CCTV설치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연간 수술건수가 200만 건에 육박하는데 2013년에서 2018년까지 6년 사이 대리 수술 적발 건수는 112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대리수술과 수술실 내 의료사고에 대한 사회적 파장은 크지만 실제로 발생율을 따져봤을 때 0.001% 수준의 문제라는 취지다.
의협 김종민 보험이사는 "수술실 CCTV설치는 기대되는 사회적 이익은 적고 부작용은 크다. 법제화할 영역이 아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도 2018년 CCTV설치 논의가 있었지만 법안 통과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제 우리나라에서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가 시행됐지만 보육교사에 의한 아동학대 적발 건수는 CCTV 의무 설치 이전인 2014년 295건에 꾸준히 늘어 2019년 1371건으로 증가했다"며 "경기도 의료원도 수술실 CCTV 시범사업 이후 영상 복사 신청이 1건도 없었다"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 보험이사는 환자단체 견해와 다르게 CCTV설치가 의료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의료분쟁의 주요 쟁점은 수술 합병증과 후유증, 수술 결과에 대한 불만족이고 대리수술 여부를 판단하는 소송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영상을 30일 보관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의료 분쟁 자료로 활용되기 어렵다. 또한 고정식 수술실 CCTV론 수술실과 연관된 의료소송의 자료로 사용되는 데에도 한계가 명확하다"며 "오히려 수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녹화된 영상으로 인해 모든 의료행위가 소명해야 할 대상으로 변질돼 불필요한 민원과 의료소송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병협 “환자 인권 침해‧방어진료 확대로 부작용 심각”
병원협회도 수술실 CCTV설치로 인한 역기능 발생 가능성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고 봤다. 특히 신체 노출로 인한 환자 인권 침해와 영상자료 관리 문제, 방어진료 확대는 우려되는 대표적 부작용이다.
병협 오주형 회원협력위원장은 "수술실 CCTV설치 의무화는 너무 과도한 입법으로 그 파급효과와 부작용을 고려했을 때 득보다 실이 많다"며 "만약 수술의 전체 과정에 대해 일거수일투족을 CCTV로 감시당한다면 아마도 심리적 위축으로 사고 위험성이 높은 수술을 거부하거나 환자에게 다른 방식으로의 진료를 유도할 가능성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생명과 직결되는 응급수술이 빈번한 기피 과목인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등의 전공의 지원율이 더욱 하락해 중증질환에 대한 의료제공체계가 유지되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며 "이외에도 의사와 환자간 불신을 증폭시키고 무분별한 CCTV 열람 요구로 남은 치료를 거부하는 등 후속 치료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영상 유출로 인한 사후적 인권침해적 요인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병협은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50곳 이상의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려다 보면 비용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 위원장은 "상급종합병원은 CCTV 설치와 부수적인 영상 보관 문제, 외부 유출방지 등 보완시스템 구축, 이력 채용 등 막대한 유지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비용대비 효과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예산을 지원하다고 해도 막대한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여야 의원들, 의료계 주장에 적극 반박…“지금까지 의료계 노력 없었다”
반면 환자단체를 포함한 여야 의원들의 맹공은 무서웠다.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은 의료분쟁에 있어 CCTV 영상이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지 물었고 이에 이나금 한국환자단체연합회장은 "권대희 사건 등에서 결정적 근거로 사용됐다"고 답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장도 "의료전문 변호사들도 최근에 CCTV 설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환자 입장에서 의료사고를 다 입증할 수 없지만, CCTV로 인해 응급상황에서 적절한 조치 여부를 기본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협에서 주장하고 있는 CCTV 설치의 실효성에 대한 반박 주장도 나왔다. 서정숙 의원은 "CCTV 설치 이후에도 병원 의료사고가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설치 이전에 발견 건수가 적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의협 김종민 이사는 "그렇지 않다. 예방효과를 기대하고 설치했지만 일선 의료기관에선 억제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가 많다"고 답했다.
내부자 제보를 통해 대리수술을 적발하겠다는 의협 측 주장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서정숙 의원은 "의협이 내부자 제보에 의한 자정 노력이 가능하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으면 내부 고발이 아니면 적발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된다. 수술실 내 모든 구성원이 상호 감시자라는 주장은 안이한 것 아닌가"고 지적했다.
그는 "의협은 내부적인 면허관리 능력이 강화되면 대리수술이 줄어들 것이라고 하는데 현재 드러난 대리수술은 빙산의 일각일 것 같다"며 "이런 방안 정도론 실효성이 없다. 의협이 주장하는 대안 중 오히려 실효성 있는게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안기종 대표는 "오히려 의료기관에서 대리수술이나 성범죄, 의무기록을 조작하고 은폐하려는 유혹이 많은 상황이다. CCTV가 설치된다면 이런 부분에 대한 예방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제기에 김종민 이사는 "의료기관 내 비밀서약서 하나로 내부자들끼리 공모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내부 고발에 대한 보상책이 이뤄지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도 실질적으로 지금까지 의협과 병협이 의료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노력한 점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김 의원은 “현재 환자에게 집중돼 있는 입증책임제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에서 의료계가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을 본 기억이 없다”고 발언했다.
이에 김종민 이사는 "설명 의무를 확대해 환자가 기본권을 더 얻어낼 수 있다고 본다. 아직까지 세부적 결론은 도출하지 못한 상태로 의협이 면허관리권을 갖게 되면 변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사-환자 무너진 신뢰 회복이 핵심…복지부, 자율 맡기고 환자 선택 넓혀야
의료인과 환자의 신뢰가 무너진 것이 이번 CCTV 설치 문제의 핵심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국민의힘 전봉민 의원은 "의료계에선 소수 의료인에 의해 대리수술이 이뤄진다고 하지만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입장은 그렇지 않다. 의료계가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국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지 명확한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병협 오주형 위원장은 "현재 의료는 과거 공급자 중심이었던 것과 달리 환자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맞춰 개별 병원들도 많은 개선책을 찾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법 개선과 더불어 각 병원들도 사소한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를 꾸준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의사들의 일탈행위가 있고 최근 벌어진 대리수술 사건도 굉장히 유감이다. 그러나 이런 일로 전체 선량한 의사들의 사기가 저하되지 않도록 배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는 대리수술과 유령수술 자료부터 명확히 확립하자는 견해도 제시됐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대리수술에 대한 근본적인 파악이 필요하다. 내부 설치 의무화와 함께 국민적인 피해 발생 여부도 같이 검토돼야 한다"며 "성형과 비급여 영역 등에서 대리수술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일부 CCTV가 설치된 병원에서의 활용 현황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는 필수 진료과와 비인기과 기피현상이 우려된다는 점에서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CCTV를 설치하고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흘러가는 것이 적당하다고 봤다.
복지부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료현장 의견수렴 시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돼야 하지만 오히려 CCTV로 인해 위험도가 높은 수술이 기피되는 등 부작용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도록 유인하고 이를 환자들에게 알려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설치 비용 등을 지원하면 설치하겠다는 의료기관들의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이후 단계적으로 설치기관과 촬영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