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전국 전공의들이 의대정원 증원 등의 정부 정책을 반대하며 21일 연차별 파업을 시작한데 이어 23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오전 전공의들은 각 수련병원별로 모여 가운을 벗은 다음 성명서를 낭독하고 가운을 고이 접어둔 상태로 일제히 병원을 떠났다.
서울아산병원 전공의 10여명은 23일 오전 7시 병원 동관 로비에서 이 같은 단체행동을 펼쳤다.
이날 만난 서울아산병원 서재현 전공의 대표(정형외과 레지던트 4년차)는 "전공의들은 의료현장에서 정치에 얽매인 정책 실현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의료인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 때문에 병원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라며 "정부가 의료인을 마치 물건 취급을 하거나 기만하는 듯한 태도에 견디기가 힘들다. 정부가 전공의를 포함한 의료인들을 이해하고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 전공의 대표는 환자들을 생각해서 진료 현장에 복귀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문에 "전공의는 교육수련을 받는 피교육인 신분이다. 전공의가 없다면 병원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라며 "이것이 바로 의료의 가장 큰 문제다. 전공의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의료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서재현 전공의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서울아산병원 전공의들은 인턴을 포함해 570명이다. 이날 정찬엽 인턴 대표와 김윤재 울산의대 학생 대표도 함께 참여했다.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해 전국 모든 전공의들이 23일(오늘)부터는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대해 병원장이나 교수들의 반대는 없나.
교수들도 대부분 지지해주는 입장이고 반대하지 않는다. 교수들은 전공의들에게 환자를 돌보던 초심으로 돌아가서 병원 밖에서 충분히 목소리를 내고 돌아오라고 응원해주고 있다. 물론 일부 진료과에서는 전공의들과의 마찰이 아예 없지 않았다. 하지만 대체로 의사들의 올바른 목소리를 전공의들이 내고 뒤에서 선배 의사들이 도와주고 있다.
-인턴이나 의대생들 입장에서도 교수들의 반대는 없나.
서울아산병원 인턴들도 전부 단체행동에 참여한다. 인턴들의 참여를 반대하는 교수는 없고 오히려 응원의 목소리가 더 크다. 일부 인턴 참여를 반대하는 병원도 있다고 들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의사들이 힘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찬엽 인턴 대표)
울산의대 학생들도 학장단 교수들과 여러차례 회의를 거쳤다. 교수들도 본과 4학년 학생들의 국가시험 거부와 휴학에 대해 큰 반대 없이 오히려 응원하고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본과 3학년까지는 진작에 휴학을 결의한데 이어 전국 본과4학년 학생들도 휴학을 하기로 했고 여기에 대해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 (김윤재 학생 대표)
-21일, 22일 보건복지부가 전공의 업무개시명령 등 행정명령을 내리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지 않은가.
행정처분이라는 이야기 나오면서 교수들이 스승의 입장에서 제자인 전공의들을 걱정하고 있다. 전공의들에게 너무 극단적으로 가지 말고, 극단적으로 행동하면 잘못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의사라면 누구나 전공의 파업을 지지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병원 경영자나 학교 운영자 입장에서는 전공의 파업을 반대할 수 있지만, 대다수 의사의 의견은 그렇지 않다. 교수들도 같이 병원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많다. 제자들을 병원 밖으로 보내고 교수들은 병원을 지키면서 제자들이 올바른 목소리를 내려는 마음을 지키고자 하고 있다.
-복지부의 업무개시명령 발표 이후로 전공의들의 파업 참여율이 높아졌다고 들었다.
분명히 강조하지만 파업을 하고 싶어하는 전공의, 의대생은 아무도 없다. 전공의들은 마땅히 있어야 할 병원에서 자긍심을 느끼면서 일하고 싶다. 다만 전공의들은 의사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고, 자주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의료환경에 대한 불만이 크다. 이런 상태에선 도저히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다. 그래서 병원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공부하다 보니, 수련을 받다 보니, 갑자기 의료계 동의 없이 다양한 정부 정책이 추진된다. 하지만 근거가 너무 없다. 의대정원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 한방 첩약 급여화 등 정부 정책이 현실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서만 추진되고 있다. 현재 젊은 세대는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분명히 이야기할 뿐이다.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상황에서 전공의들의 업무 복귀는 언제쯤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나.
업무 복귀에 대해서는 개별 전공의들마다 생각이 다 다르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이 있다고 하더라도 복귀라는 행동을 어떻게 실천할지는 다를 수 있다. 정부의 행정명령까지 언급된 상황에서 다같이 뭉치고 복귀 시점도 다같이 정해야 한다.
정부가 전공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수용한다는 전제에서 누구에게도 불이익이 가지 않는 안전한 병원 복귀도 매우 중요하다. 병원 복귀 시기는 전공의들의 뜻이 일치한 상태에서 모든 전공의들이 날짜를 맞출 것이며, 절대로 분열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정부가 전공의들을 의료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
전공의들은 단지 ‘밥그릇 싸움’이라는 마음으로 이러지 않는다. 의료현장에서 정치에 얽매인 정책 실현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의료인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 탓이 크다. 정부가 의료인을 마치 물건 취급을 하거나 기만하는 듯한 태도에 견디기가 힘들다. 정부가 의료인들을 존중해주는 태도를 보여주길 바란다. 정부가 전공의들을 이해해주고 전공의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징계를 한다거나, 의대생들이 국시를 안보면 불이익을 준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 아니라 이럴 때 정부가 오히려 전공의들을 정부편으로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전공의 파업 때문에 환자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는 여론이 늘어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환자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소식에 가장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바로 전공의들이다. 정말 전공의 파업으로 환자들이 사망한다면 전공의들이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환자 생명만은 지키고 싶은 가치다.
교수들, 선배 의사들이 더 이상 환자 생명 위협을 막기 어렵겠다는 순간이 오면 병원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또한 파업을 벌이는 중에도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크게 닥칠 경우 지자체나 근처 병원에 자발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전공의 파업으로 인해 환자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났는데, 실제로 확인해 보니 전공의 파업과 관련성이 없었다. 원래 병원에서 생로병사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병원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환자가 잘 치료받고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의 사망가능성도 존재한다. 의사들은 항상 그것을 안고 있다. 환자가 죽었다고 무조건 파업 탓을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병원에 의사가 전공의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전공의는 분명히 교육수련을 받는 피교육인 신분이다. 전공의가 없다면 병원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전공의가 없더라도 병원이 돌아가는 현실인지를 확인해야 하고, 현실이 왜 그러지 못한지를 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의료의 가장 큰 문제다. 전공의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의료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
-선배들, 교수들도 같이 파업에 동참하자고 요청하고 있나.
병원이 망가지길 바라는 의사는 하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섣불리 교수들도 파업에 동참하기는 어렵다. 교수들이 전공의 파업에 대해 괜찮다고, 평소에 일할수 있는 역량을 넘어 더 일할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공의들도 용기 내서 병원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의료계에서 보면 교수들이 어른이지만 국가에서 보면 작은 부분이고, 교수들도 일방적인 정부 정책에 무기력할 수 있다. 전공의와 교수들은 불합리한 정부 정책에 있어 서로를 위하고 공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공의들이 하고자 하는 주장의 핵심은 무엇인가.
의료정책은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고 반드시 현장의 전문가 의견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 채 정치적인 목적으로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현장과 전문가 의견이 반영된 정책이 곧 환자, 그리고 국민들을 위한 것이다. 국민들도 누구보다 환자들을 생각하는 의사들의 진심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