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의대생과 전공의의 복귀는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투쟁이 자유롭지 못할 경우 그 가치를 잃는다. 생명을 담보로 한 투쟁의 무게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18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융합관 양윤선홀에서 개최된 '우리의 현주소; 의료시스템 수행지표의 팩트 검토' 토론회에서 이같은 주장이 나왔다.
전공의·의대생 저격 강희경·오주환 교수 "복귀 막은 이들 비판한 것…의료계 서로 존중하길"
이날 서울의대 의학과 오주환 교수와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강희경 교수는 최근 발표한 '복귀하는 동료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께 이제는 결정할 때입니다' 성명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앞서 이들은 성명을 통해 "의사 면허 하나로 전문가 대접을 받으려는 모습은 오만하기 그지 없다. 의사의 전문가 정신은 의사의 이익과 환자의 이익이 충돌할 때 환자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환자와 국민의 불편과 공포를 무기로 요구를 관철하려고 한다"며 전공의·의대생을 비판했다.
수련 과정이 착취라는 전공의 주장에 "개선할 점에는 동의한다"면서 "지금의 교수는 주당 140~150시간씩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과정이 지금의 한국 의료 수준을 만든 기반이 됐다"고 했다.
이후 논란이 지속되자 해명에 나섰다.
오 교수는 "개인적으로 사직이라는 형식을 합법적으로 취하고, 행동에 옮기는 이들을 비난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이 메시지를 낸 것은 자유를 억압하는 이들을 향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쟁은)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의 복귀를 막고 강요하는 억압적인 행동은 폭력이다. 가치 있는 투쟁은 자유로움에 있다. 자유롭지 않은 순간 투쟁의 가치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했다.
강 교수는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기성세대 의사로서 수련 환경을 마음에 들게 개선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절대 돌아오라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의료대란은 정부와 의료계가 존중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했다. 의료계도 서로 존중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해도 무시하지 않고, 그게 당사자의 선택한 바른 선택이었음을 인정해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생명 담보한 무게 결코 가볍지 않다…명심하고 투쟁 이어가길"
서울대학교병원 흉부외과 곽재건 교수는 첫 번째 세션 토론에서 의료 대란 이후 의료진의 현실과 의료시스템 변화에 대한 소회를 밝히며, 전공의 없이도 병원이 돌아가도록 시스템이 변화하고 있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현재 병원은 간호사와 다른 의료진이 업무를 분담하면서 적응하고 있다. 이미 전공의와 전임의가 없는 병원에서 10년 가까이 일해 밤에 당직 서고, 응급 환자 보는 것은 익숙하다. 다만 당직 다음날 정규 일을 소화하는 데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긴 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교수의 복귀 외침에 대한 전공의·의대생의 부정적인 반응에 "교수들이 힘드니까 돌아오라고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예전과 비교해 크게 힘들지 않다. 해낼 수 있다"며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등으로 상황이 많이 바뀌고 있다. 이미 전공의 없이 돌아가도록 바뀌고 있다. 이 상황이 무섭다"라고 언급했다.
곽 교수는 사직한 전공의와 휴학한 의대생에게 메시지도 전했다. 그는 사직 전공의와 휴학 의대생의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일부 교수와 대립하고 복귀와 복학을 막는 사직 전공의와 휴학 의대생에게 일침을 가했다.
곽 교수는 "휴학, 사직과 같은 대응이 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연 이들이 현장을 벗어나지 않고 주장했다면 과연 일이 빠르게 처리됐을지 의문"이라며 "전공의와 의대생이 버텨줬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무조건 돌아오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의료)을 계속하면서 뭔가를 바꿀 수는 없었을까 고민했다"며 "일각에서는 아무것도 바뀐 게 없어 돌아가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현장에서는 변화를 많이 느낀다. 의료대란 초반 무조건 비난하던 국민 중 다수가 의료계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고, 공감하고 있다. 아직 의대 정원과 의료 사고 등 의사와 환자 사이에 해결할 문제는 많지만,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복귀 여부는 개인의 신념과 선택에 달려 있지만, (복귀를 고려하는 이들을) 겁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의 선택은 산 자의 생명을 담보하고 있는 것으로, 생명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기고 투쟁을 이어가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이어 일부 전공의와 의대생의 '교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정부 대변인 노릇을 한다', '교수의 휴진이 없어 사태가 장기화했다'는 주장을 언급하며 "전공의 공백을 메우며 환자를 지킨 것도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메스를 들고 환자를 마주하는 순간 압박감과 책임감을 느꼈다"며 "자기 이름을 걸고 내 앞에 있는 환자를 떠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마음이 아프다"라고 했다.
"의료진 번아웃, 한계 도달했다…의권 보장받아야"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의학과 하은진 교수는 의료대란과 관련한 논의에서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복귀만 강조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의료진이 떠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논의가 전공의·의대생 복귀에 집중돼 있지만, 의료 현장에서 남아 있는 의료진은 극심한 번아웃을 겪고 있다"며 "사회는 의료진이 당연히 남아 있을 거라 믿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경고했다.
또한 의료진이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의료진의 권리도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의사 역시 사람이다. 환자의 권리가 중요하듯, 의료진의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며 "의료현장은 환자와 의료진이 서로 존중하고 팀으로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의료진이 지나친 희생을 감수하며 일할 경우, 팀은 와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하 교수는 필수의료 전문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병원 시스템 개혁과 정부의 적극적인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신경외과 전문의가 각 병원에 한두 명씩 배치돼 있다. 이 때문에 당직과 응급을 병행하기 어렵다"라며 "전문의가 한곳에 모여 응급 진료를 담당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당직 부담을 줄이고 환자 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 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민간 자본 베이스로 병원이 운영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국민 건강권을 지키는 것이 의무이자 책무"라며 "그간 병원 시스템, 의료시스템에 얼마나 투자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복귀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현재 가진 자원을 어떻게 잘 활용하고 효율적으로 배치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