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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의 거대화로 훼손되는 의사의 '의학전문직업성'...의협은 전국 의사노조를 설립하라

독일은 12주간 700개 의료기관·7만명 의사 파업으로 처우 개선...우리나라는 아주의대 교수노조 설립 취소 위기

[칼럼] 안덕선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 부회장

기사입력시간 22-11-21 07:20
최종업데이트 22-11-2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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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아주대 의과대학의 교수노동조합이 대학 당국과 노조 설립에 대한 법적 분쟁으로 의과대학 교수노조의 설립 취소의 위기를 맞게 됐다. 물론 지방법원의 판결로 대법원까지 간다면 아직 최소 몇 년간은 현재의 노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이 여파는 현재 추진 중인 전국 단위의 의과대학 교수노조 설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현대에서 의과대학교수로 제한된 노조 설립을 금한다는 사실과 교수노조는 교육법에 의해 단체행동권과 정치활동이 금지된 것도 시대착오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의료법인은 비영리기관이지만 수익 증대가 최대 목표, 훼손되는 의사의 의학전문직업성 

현대 의료는 시간이 갈수록 단독 개원의가 줄어들고 있고 반면에 거대 의료자본과 거대 의료기관이 의료의 주된 형태로 바뀌고 있다. 최근 몇 개 대학이 수도권과 지방 도시에 대학 병원 분원 설치를 발표해 이런 현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의사가 늘어남에 따라 의사의 노동계급화(proletarianization)도 가속화하고 있다. 의료기관의 거대화의 성공 비결은 임금이 낮은 전공의와 개원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의 대학교수를 이용한 박리다매의 의료가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낮은 의료수가가 항상 문제로 지적될 때 대형 의료기관은 오히려 잉여 자본으로 부속병원을 증설하는 것을 보면 현재의 의료수가가 결코 낮은 것이 아니라는 망극한 주장도 가능해 보인다. 

법인은 법적인 인간의 신분을 갖는데, 결코 인간과 같은 판단을 하지 않는다. 의료법인은 비영리기관임에도 수익증대가 최대의 목표가 되고 있다. 미국은 지금도 35개 주 이상에서 법인의료(Corporation Practice of Medicine)을 금지시키고 있다. 다만 선한 목적일 경우 예외를 두는데 대표적으로 대학 병원이다.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법인 의료 금지조항은 법인 의료가 갖는 비윤리성에 대한 경계의 상징으로 존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법인 형태의 의료기관이 의료의 양적, 질적 현대화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나, 법인 의료에 존재하는 내재적 위험인 의학전문직업성의 훼손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의사에게 환자 진료실적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형태는 의료윤리에서 금기하는 사안이다. 일부 국가는 아예 법으로 금지를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의료의 전문직업성에 대한 낮은 인식과 우리의 수직적이고 권위적 조직 문화가 의사의 근무 환경과 임상자율권(Clinical Autonomy)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병원 간 무한 경쟁과 진료 실적에 대한 집착이 기관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의사의 노동계급화화를 촉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료환경의 변화에서 거대의료자본과 거대의료기관에서 파생하는 근로환경의 악화나 부당한 처우에 대응해 적절한 견제 장치가 필요하게 됐다. 의료계는 의사가 의학전문직업성에 충실한 임상적 자율권과 합리적인 진료권의 수호를 위해서는 다름 아닌 인간의 가장 기본권인 노동권을 수호에서 나온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고 있는데, 이를 위한 본격적인 조직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현존 의사 조직의 한계로 의사 노동권의 조직화, 의사노조의 필요성 부각

많은 대학이 대학교수 자치기구인 교수의회, 교수회, 평의회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단과대학교수 조직은 다시 대학 본부의 교수조직과 종적, 횡적 연결이 되고 있고, 교수로서의 신분을 바탕으로 구성된 조직이지 의사라는 전문직이 바탕은 아니다. 의과대학 부속병원에는 대학교수가 아닌 촉탁의사, 전공의, 미래의 의사인 학생, 전임의 등 다양한 의사직이 있다.

우리나라는 사립의과대학이 전체의 70%가 넘고 공립 의과대학도 부속병원의 재정 독립을 추구하고 있는 상태에서 의사의 고용주인 재단이나 상위 정부, 그리고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의한 부당한 압력, 그리고 지난 정권에서 보여준 사회적 편가르기에서 의사의 위치를 매우 취약(vulnerable)하게 만들고 있다.  

법정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법에 설립 근거를 둔 단체로 설립 취지부터 태생적 한계를 보여준다. 협회의 기능과 구조가 의권의 수호를 표방하나, 실제로 의사의 근무환경이나 고용 등 인간의 기본적인 노동권의 수호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대한의사협회는 별도의 비상대책위원회나 일시적 투쟁 기구를 설립해 2000년, 2020년 정부에 대항해 거센 저항을 했으나, 투쟁의 지속성에 대한 한계와 예상 밖 조기 종결로 허탈하게 마무리됐다. 비록 대한의사협회가 의사단체에 잠재하는 조직력과 투쟁력의 파급 효과를 확인했을 뿐, 두 차례 의사의 집단행동은 회원에게 좌절과 무기력감을 느끼게 했다.   

몇 년 전 의사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회에서 노동조합 전문가는 현존 의사 조직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고 의사 노동권의 조직화를 주문했다. 전국의사노조화로 대정부(건보공단이나 복지부)를 상대로 법적 투쟁력과 협상을 이끌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동남권원자력병원, 아주대 의과대학, 중앙보훈병원이 노조를 결성한 상태고 전공의협의회 노동조합 등 다양한 의사노동조합이 출현했다. 아울러 현재 전국단위의 의과대학교수 노동조합도 추진되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전체 의사들의 권익 보호와 실효성 있는 대정부(복지부와 건보공단)협상을 위해 일부 병원이나 의과대학의 의사노조 단체가 아닌 봉직의, 개원의, 의대교수, 전공의 모두를 포함하는 전국의사노조협의회를 구성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리고 의사가 아닌 법조인과 노동단체 구성에 대한 전문가의 조력과 타 보건의료인과의 연대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사회(British Medical Association)는 단체의 정체성을 전문직협회(Professional Association)겸 의사노동조합(Trade Union)으로 정의하고 있다. 의사의 법정단체(Statutory Body)는 영국의학협회(General Medical Council)로 교육과 면허관리가 주된 업무다. 프랑스도 직역별 7개의 의사노조가 연합해 전국적인 의사노조를 형성하고 있다. 

독일 의사노조 12주동안 700개 의료기관, 7만명 의사가 파업 참여해 처우 개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름인 마부르그분트(Marburger Bund)는 독일의 병원 및 공공의사 노동조합으로 개원 자영업이 아닌 병원의 피고용 의사와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의사를 위한 노조로 1947년 설립됐다. 현재 독일 병원 근무 의사의 70%가 가입돼있다. 유럽연합 최대의 의사노조로 초기에는 사무노동자조합의 산별노조로 출발했으나 꾸준히 성장해 2006년 독립 의사노조로 변경한 후 회원가입이 급증했다고 한다. 

독일의 마구르그분트(Marburger Bund)가 유명한 것은 최대 12주 동안 700개 의료기관과 7만명의 의사가 참여한 성공적 의사 파업기록이다. 장기간의 파업으로 결국 정부가 의사에 대한 처우를 개선했고,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의사도 일반 공무원과는 다른 단체협상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의사를 비롯해 대학 병원에 근무하는 모든 직역의 급여 상승도 주도했다고 한다.

독일은 모든 근로자에게 파업 권리를 헌법(제9조 3항)으로 보장하고 있다. 파업 참여는 고용 의무의 위반이 아니고 파업에 참여를 사전 통보할 필요도 없고 파업 기간 중 기존 고용계약은 자동으로 일시 정지된다고 한다. 파업으로 인한 근로 보상을 위한 근로시간 재조정도 불필요하며 고용주로부터 민, 형사상 책임면제와 파업과 관련해 보복성 제제인 해고나 경고도 금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 민주화 정권이 의사집단의 파업을 이유로 대한의사협회장을 수갑과 포승줄로 묶어 구속시키고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형사처벌과 면허까지 박탈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세력이 보여준 근로의 민주화 발달 정도가 독일과는 너무나도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이번에 법원에서 내려진 아주대 의과대학 교수노조에 대한 판결은 우리나라의 의학전문직업성은 여전히 전문성이 문제가 될 수 있는 법적 판단에 의존한다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본격적인 전국단위의 의사노조 설립을 위한 성장 과정으로 애써 해석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의과대학교수가 주동이 돼 전국단위의 의사노조 결성도 중요하나, 실질상 이익단체의 성격으로 인식되는 대한의사협회가 전국의사노조협의회의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 전국의 병원별 의사 조직들과 개원의협의회까지 합류시켜 모든 직역의 전국단위 의사노조가 출발한다면 의학전문직업성의 수호와 의료의 질적 향상, 그리고 회원을 위한 법적 투쟁과 협상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대한의사협회는 기관 자체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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