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대학에 있다 개원가로 나오니 확실히 의료소송 리스크 체감이 크다. 소송을 당해보면 분만은 접을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온다."
김미선 산부인과 전문의(직선제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공보이사)는 전공의 시절까지 포함해 대략 10년 가까이 대학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다. 그는 최근 대학 교수 생활을 정리하고 개원가로 나왔지만 분만을 직접 담당했던 의사로서 체감하는 필수의료 붕괴 현실은 착잡하기만 하다.
김 전문의가 산부인과 로컬 병원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안전하지 않은 진료환경'이다. 어느 정도 소송이나 환자 문제제기로부터 보호를 받았던 대학병원 생활과 달리 개원가에선 의사가 직접 이런 모든 문제를 떠맡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지난해부터 의료사고 위험이 큰 '분만' 관련 진료를 그만 둔 상태다.
그는 "큰 병원에 오는 환자들 자체가 위험을 어느 정도 예견한 상태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의사에게 무조건 책임을 전가하거나 컴플레인을 거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한 소송이 걸리더라도 대학병원에선 법무팀이 따로 있어 의사가 느끼는 부담은 훨씬 적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개원가에선 보호자가 문제제기하는 것을 오롯이 의사가 모두 책임지고 많게는 수십억씩 소요되는 소송의 위험도 크다 보니 로컬로 나온 뒤 심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이런 이유로 분만을 접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산부인과에서 억대 배상, 혹은 법정 구속 사례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23년 4월 수원고등법원은 분만 과정에서 과다출혈 등으로 뇌손상 장애를 입은 환자가 의료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약 15억원 가량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또한 2019년 대구지방법원은 사산아 유도분만 중 태반조기박리를 제때 진단하지 못해 산모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의사에게 금고 8개월에 법정 구속을 명령했다.
관련해 김미선 전문의는 "최선의 의료행위를 함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지속된다면 필수의료는 유지되기 어렵다"며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2명의 의사가 의료과실에 의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고 있다"고 전했다.
개원가 산부인과 현실이 점점 각박해지면서 분만실이 없는 지역 역시 늘고 있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분만이 가능한 의료기관 수는 2020년 517곳에서 2022년 470곳으로 약 9% 감소했다. 10년 전인 2012년 739곳과 비교하면 36.4%(269곳) 줄었다. 산부인과가 있지만 분만실이 없는 지자체는 지난해 12월 기준 50곳에 이른다.
분만 전문의를 구하는 것 역시 하늘의 별 따기다. 연도별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 현황을 보면 2004년 259명에서 2023년 102명으로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이마저도 분만을 하는 산과보단 암이나 내분비질환 등 부인과를 선택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김 전문의는 "지금도 직접 분만으로 아이를 받았던 환자들이 '원장님 둘째도 분만 도와주세요'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많이 흔들린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분만 분야를 그래도 해야 되지 않을까 지금도 고민이 많지만 동료들과 얘기해보면 다들 법적인 리스크를 가장 고민한다. 소송을 당해보면 분만은 접을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온다"고 전했다.
그는 "분만은 오래 손을 놓으면 다시 돌아가기 힘들다. 현재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한 보상금이 최대 3000만원에 불과한데 이를 현실적으로 10억원까지 대폭 상향하는 등 조정이 필요하다"며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빠르게 통과시켜 의료진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과도한 형사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