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사직 전공의들이 수련병원 대신 개원가로 봉직의 취업으로 대거 향하면서 일부 의료기관에선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고 일하는 전공의들도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계는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봉직의 급여가 결정되는 것은 맞지만 현재 상황이 의료대란으로 인한 특수상황인 만큼, 일선 개원가에서 취업 전선에 나선 전공의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5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최근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사직서 수리가 이뤄지면서 많은 전공의들이 개원가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A 전공의 역시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참여하지 않고 8월부터 개원가에 취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최근 개원가에서 새로 직장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단기간에 사직 전공의들이 대거 개원가 일자리로 몰리면서 수련을 마치지 않은 일반의 봉직 월급은 이미 2배 가까이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구인구직 사이트 등에 따르면 주 5일 풀타임 기준 1000만원 가까이 하던 봉직의 급여가 최근 400만~500만원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주 7일 근무에 600만원을 제시하는 사례도 존재했다.
심지어 최저시급 혹은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근무조건인 곳도 간혹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 전공의는 고심 끝에 일요일 주말 24시간 당직근무(4시간 휴식)를 서는 의료기관에 지원했지만 24시간 당직 일급이 30만원밖에 하지 않는다는 근무조건을 듣고 원장과 다툼을 벌였다.
해당 의료기관에서 제시한 급여를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시급의 1.2배 정도지만 야간·주말 수당이 포함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에도 못치지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한 사직 전공의는 "잘못된 정부의 의료정책에 맞서기 위해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떠나 거리로 급작스럽게 나오게 됐다. 사태가 길어지면서 생계 문제로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봉직을 구하는데 일부 의료기관에서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로 전공의를 착취하는 일들이 간혹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원가 등 의료계는 사직 전공의들을 위해 스스로 자정작용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잘못된 의료정책을 바로잡고 의료계의 미래를 위해 전공의들이 희생하고 있지만 일부 개원가에서 채용 시장에 나온 전공의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대한일반과개원의사회 좌훈정 회장은 "24시간 당직에 30만원 급여를 받는 것은 27년 전 내가 직접 당직을 설 때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런 근무조건으로 의료계 미래를 위해 사직한 전공의들을 채용하는 것은 우리 개원의들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며 "A 전공의의 사례는 휴일과 야간 업무 수당까지 고려하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건 법적으로도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좌 회장은 "옛날 경주 최부자 집에서도 '흉년에 땅을 사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이는 농민들이 먹고 살기 힘든 시기에 농지를 헐값에 사서 부를 축적하지 말라는 뜻"이라며 "전공의들이 사직한 이유는 의대증원 이외에도 개원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필수의료패키지 등도 포함된다. 후배들을 돕진 못할 망정 이용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
전공의 취업 알선을 주선하고 있는 한 시도의사회장도 "시장 상황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것은 맞지만 현재 상황이 의료대란으로 인한 특수상황인 점이 고려돼야 한다. 개원가에서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생계를 위해 나선 전공의들을 최대한 배려하는 등 의료계 내부에서 자정작용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발족한 전공의 진로지원 테스크포스(TF)를 통해 이 같은 전공의 채용 과정의 문제를 줄여가겠다고 했다.
채동영 의협 홍보이사는 "개개인 간의 다툼에 대해서 협회 차원에서 개입하기 보단 결국 표준적인 계약에 대한 기준이 어느정도 마련돼야 궁극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며 "사직 전공의 채용 등에 대한 기준을 의협 진로지원 TF에서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