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선 보건의료 데이터가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빅데이터 연구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연구 기준 확립, 정보의 주체인 개인의 데이터 전송요구권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1일 서울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헬스케어 미래 토론회’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활성화를 주제로 전문가들이 열띤 논의를 벌였다.
데이터 연구는 기존 연구와 윤리기준 달라야..."의료 데이터 후손들에게 안 주고 갈 건가"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건양의대 김종엽 교수는 데이터 연구에 대한 윤리기준은 기존 연구윤리와 달라야 한다고 제언했다.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는 실제 환자에게 약을 투여하는 임상연구와 달리 환자에게 신체적 위해를 줄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연구 종료와 함께 연구목적으로 모은 데이터를 폐기하도록 하고 있는 생명윤리법이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현재의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생명윤리법에서 데이터 윤리에 관한 내용들은 현재 이뤄지고 있는 연구들과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며 “임상연구에선 연구 종료시에 연구목적으로 모은 데이터를 폐기하게 돼있는데 실제 이걸 폐기하고 있는 병원이 있겠느냐. 데이터가 자산으로 인정받는데 연구를 끝났다고 버린다는 건 데이터 댐까지 만들고 있는 시점에서 맞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이어 “데이터를 활용해 연구하고 결과가 나왔으면, 그걸 통해 더 연구를 해야지 지워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생명윤리법은 그게 원칙”이라며 “언제까지 모든 연구자들을 범법자로 둘 것인가. 빠르게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데이터 활용에 대한 ‘포괄적 동의’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존 연구들의 경우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사전동의 방식으로 해왔다. 실제 그게 소비자 보호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지금 생산되고 있는 다양한 라이프로그 데이터는 어떤 가치를 가질지 미리 알 수 없어 활용 방법에 대한 사전 동의를 받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어 “미국의 경우도 의료정보보호법(HIPPA)에선 사전 동의를 원칙으로 했지만 캘리포니아 주법에서는 사후철회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며 “우리도 생산되고 있는 데이터를 어떻게 향후에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끝으로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지금 의학 교과서에 있는 내용들은 모두 임상시험에 기반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건강관리 과정에서 모은 데이터로 항암제도 먹고 간장약도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 우리는 지금 치료받으며 생산되는 데이터를 후손들에게 주는 것에 대해 주저하고 있단 느낌이 든다. 언제까지 데이터의 주인이 환자인지 병원인지 의사인지를 두고 싸움만 할건가. 생명윤리 외에도 이런 시민윤리에 대한 부분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환자단체에선 데이터를 빨리 가져다 쓰고 결과를 얻어서 본인들을 치료해 달라고 하고 있다. 그 부분에 한 번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데이터 생성하는 '의료기관' 역할에도 주목할 때...'전송요구권' 법적 근거도 중요
카카오헬스케어 황희 대표는 데이터를 가치 있는 형태로 가공하는 의료기관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데이터 소유(Data Ownership)와 데이터 생성(Data Generation)을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황 대표는 “어떻게 하면 헬스케어 데이터를 잘 사용하고 보호할 수 있을까에 대해선 오랜기간 사회적 논의가 있었는데, 가장 많이 나온 애기가 데이터 주체에 대한 것”이라며 “데이터 소유권이 환자에게 있단 걸 부인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하지만 환자가 자연어로 애기한 데이터를 의료적으로 의미있는 데이터로 가공하는 의료기관의 역할이나 기여도에 대해선 의료계 외에는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데이터 활용을 더 활성화하기 위해선 데이터 소유권과 데이터 생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이게 결국은 미래에 산업계가 데이터 활용으로 부가적인 수익을 얻었을 때 환자와 의료기관에 어떻게 수익이 흘러갈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할지와도 이어지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황 대표는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이렇게 한번 생성한 데이터를 표준화해야 빅데이터로서 가치가 생긴다. 점점 EMR 외에 여러 다양한 데이터 소스가 나오고 있고, 병원 간 데이터 표준화도 확립이 안 된 상황이란 점에서 헬스케어 데이터의 복잡성은 금융데이터나 행안부데이터보다 훨씬 크다”며 “그렇기 때문에 현재 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표준화 작업 등은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반드시 넘어야 하는 허들”이라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의료데이터의 주체인 개인의 전송요구권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환자 본인 또는 의료인, 의료기관 이외엔 개인 진료기록을 전송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는 “이미 선진국에선 보건의료데이터를 포함한 데이터 전송요구권과 관련해 명확하게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있다. 어기면 상당한 수준의 패널티도 감수해야 한다”며 “더 이상 국내에서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라고 했다.
이어 “적정한 수준으로 데이터가 보호되는 동의 기반의 전송요구권 법안이 제정돼야 하고, 이는 의료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들 간 조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대표는 이와 관련, 제도상의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들이 해당 분야에 선뜻 투자를 하기 힘들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현재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마이헬스웨이 플랫폼은 처음 설계시에 추적∙감시가 가능한 플랫폼 상에서 동의기반으로 데이터의 이동을 보장하고, 데이터를 기업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단 개념이었다”며 “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기술적 플랫폼은 논의가 됐지만 아직 사회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산업적 측면에 대한 공감대는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산업계로선 명확하지 않은 측면들이 있어 쉽사리 투자를 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최소한 가이드라인 수준으로라도 기준이 확립되면 좋겠다. 여기엔 비용 부담 주체와 부가 수입 분배도 따라가야 하고, 의료기관 입장에선 다양한 장소에서 생산된 데이터의 품질이나 신뢰도와 그에 따른 책임소재 문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이런 문제가 잘 해결된다면 국민들 입장에서 개개인의 데이터 주권시대가 열리게 된다. 산업계∙병원계∙학계는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의 바이오헬스 연구와 서비스 기반이 조성되는 셈”이라며 “국가 전체로 보면 데이터 비즈니스 기반의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을 위한 산학병연 연계 기반이 확립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