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의 요청 속에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제3자에게 의료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됐지만, 정작 해당 데이터를 생산하는 주체라 할 수 있는 의료계는 소외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모습이다.
19일 열린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토론회에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마저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의료 마이데이터 정책의 하나로 추진된 '마이 헬스웨이' 등의 제도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며 수가 보상을 통한 인센티브 안을 제시했다.
제3자 전송 요구권 포함한 '디지털 헬스케어 진흥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촉진법안' 발의
개인의 건강정보를 관리, 보호하고 활용하는 법안은 이미 제17대 국회에서부터 수 건 발의됐으나 민감한 개인 건강정보 활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법안 처리가 불발됐다.
이번 제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 3건이 발의된 가운데 올해 10월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이 개인 의료데이터의 제3자 전송요구권이 포함된 '디지털 헬스케어 진흥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촉진법안'을 대표발의해 산업계는 물론 의료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국대 법학과 김재선 교수는 해당 법안에 핵심에 대해 "디지털헬스케어 정의를 의료행위보다 넓은 '예방‧진단‧치료, 건강관리, 연구개발 및 사후관리'까지 포함했다"며 "무엇보다 가명 처리 방법과 절차를 법제화했고, 전송 요구권 및 디지털 헬스케어 특화 규제 샌드박스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민감정보 중 정신질환, 유전질환 등 사생활 보호가 필요한 데이터는 동의 또는 기관보건의료데이터심의가 필요하다고 명시했고, 개인 의료데이터 처리자가 가명 처리한 후 인간대상연구를 수행할 때 동의를 면제 및 IRB 심의를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특히 김재선 교수는 본인데이터에 대한 제3자 전송 요구권을 집중적으로 살폈는데, 해당 법안 제14조에서 1항에서는 '의료데이터 주체는 다양한 기관으로부터 본인의 식별의료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 등을 제공받기 위해 데이터 보유기관을 대상으로 본인의 전송대상데이터를 활용하고자 하는 기관에게 전송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의료데이터 주체의 제3자 전송 요구권에 따라 요구 받은 데이터 보유기관인 ‘의료기관은’은 의료법, 약사법, 생명윤리법 등에도 불구하고 데이터 주체의 요구에 따라 해당 정보를 활용기관에 전송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이다.
김재선 교수는 해당 법안에 따라 ▲'전송 대상 정보'의 유형 ▲데이터 보유기관의 의무와 권리 ▲고지대상과 전송요구 철회 등이 쟁점 대상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데이터 보유기관인 의료기관 측면에서는 전송 의무의 표준화, 보안 처리 의무에 관한 행정적‧기술적 지원, 법적 책임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며 "전송 의무기관에 1차부터 3차까지 의료기관을 모두 포함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며, 전송 비용 및 권리 배분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데이터의 활용을 위해서는 이해관계인들이 협의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전했다.
산업계 "제3자 전송요구권 환영"…의료계 "의료데이터 전송에 대한 보상 명확화해야"
산업계 대표로 참석한 카카오헬스케어 신수용 소장은 산업계 입장에서 해당 법안에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해당 법안이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의료데이터를 처리하는 산업계가 개인의료데이터를 가명처리해 신규 서비스 개발 목적 등을 수행하는 경우에는 IRB(기관생명윤리위원회) 심의 과정을 생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나아가 "산업계 입장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조항은 역시 본인데이터의 제3자 전송요구권이다. 단, 이 조항이 없더라도 개인을 통한 재전달이 가능해 사업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상당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며 "의료법에 의해 금지된 '제3자 민간기관'에 전송하는 것도 허용되는 것인지 보다 명확히 기술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보건복지부가 허가한 기관만이 의료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도 "허가제를 통해 새로운 규제가 생길 것으로 우려된다"며 "활용기관의 최소한의 요건을 지정하는 것은 기관의 질 관리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복지부가 정한 기준을 준수할 것을 동의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법적 요건을 갖춘 기관의 '신고제' 또는 '등록제'로 변경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연세대 의과대학 유승찬 교수는 의료기관의 입장에서 "왜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은 의료데이터의 주체로 포함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상당한 우려가 있다. 이 법 자체가 의료데이터의 주체를 위한 법인데 의료 데이터 주체에 의료기관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권한은 앞으로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의료데이터를 생산하는 주체인 의료인이 제3자에게 해당 데이터를 전송까지 해야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로 번질 수 있다. 물론 해당 법안에는 데이터보유기관인 의료기관이 고시에 따라 전송 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유 교수는 "의료데이터 전송에 대한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가 아니라 의료기관이 적절한 보상을 받고 전송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전송 대상 데이터의 범위가 상당히 넓은 편이고,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도 많아서 의료기관 입장에서 어디까지 전송을 해야 하는 것인지 명확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복지부 의료기관에 '수가 보상'…"민간에서 보상 제공하는 비지니스 모델 나와야"
이어진 토론에서 좌장인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한상원 부원장은 "의료데이터 안에는 의사의 지식재산이 들어가 있다. 환자가 동의했을 때 제 3자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할 때, 의사는 자신의 노력과 지식의 가치를 어디서 보장받아야 하느냐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자꾸 나오는 얘기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한 부원장은 “결국 의료데이터가 산업화돼서 고도의 부가가치를 올려 수익이 발생한 다면, 그 수익은 누구에게 나눠줘야 할까"라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료데이터를 제공하는 의사나 환자에게 보상을 지불한다면, 그 돈은 세금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고생은 의사와 환자가 하고, 정부가 준 마중물을 바탕으로 산업계가 과실을 따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는 공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 정연희 과장은 "복지부는 관련 법안이 법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이 헬스웨이라는 의료 마이데이터 산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기관은 의료기관에 한정된다"며 "물론 산업계의 요청으로 해당 사업이 시작되긴 했지만, 이 사업을 하면서 정말 환자가 자신의 정보에 대한 권리를 찾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라고 전했다.
그는 "환자, 국민이 자신의 의료 데이터를 직접 보고 확인한다는 것을 통해 의료 리터러시가 향상되고 있고, 나의 건강 기록 앱도 직접 써본 사람들은 내가 먹는 약의 종류, 진료 받은 검진내용 등을 직접 관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만족도가 크다"며 "의료 마이데이터 산업이 단순히 산업계만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그런 관점에서 의료인이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공유한 것에 대한 인센티브로 보상 수가를 제공하는 것이 틀린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수가밖에 보상 방법이 없어서 수가를 통해 적정 부분까지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법안이 통과돼 의료데이터의 활용 범위가 넓어진다면 해당 법에도 나와 있는 수수료 규정을 통해 새로운 수익 구조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상원 부원장은 "만약 의사의 지식 재산이 들어간 의료데이터를 제3자가 제공받아 산업화에 성공해 수익을 걷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제3자가 의사가 제공한 의료데이터가 해당 산업화에 얼마 정도 기여해서, 얼마 정도의 보상을 해야겠다고 하는 게 가능할까"라며 제3자 제공권에서 의료계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고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이에 대해 네이버 클라우드 이상호 부장은 "향후 의료계에 보상을 제공하는 방법은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제3자 민간기관이 의료 데이터를 제공한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정부 세금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민간 주도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