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강원도 속초에서 제왕절개가 필요한 임신부가 분만이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헬기를 타고 서울 목동의 한 병원에서 출산한 사실이 알려졌다.
아무리 분만취약지라 하더라도 강원도 관내에 제왕절개가 가능한 분만실이 없어 200km 떨어진 서울로 원정 출산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분만취약지 지원을 받아 고위험 산모를 담당하는 대형병원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속초 인근 대형병원에 문의했지만…'분만실 없다', '의료진 없다' 거절
13일 강원도소방본부에 따르면 6일 새벽 4시 28분께 속초 한 리조트에 묵고 있던 한 임신부가 양수가 터졌다는 신고가 접수돼 119구급대가 출동한 사건이 발생했다.
30대인 임신부는 분만 예정일을 일주일 가량 앞두고 속초로 쉬러 왔다가 갑자기 양수가 터진 것으로, 태아가 자궁 안에 거꾸로 자리한 상태여서 제왕절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119구급대가 인근 병원에 응급 제왕절개가 가능한 분만실을 찾기 위해 병원을 수소문했으나 강릉의 한 대형병원은 "분만실이 없어 수술과 입원이 불가하다"며 환자를 받아주지 않았고, 속초 한 의료원에서도 "야간 시간에는 분만 수술이 어렵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급대는 멀리 떨어진 원주 대형병원에도 수술 여부를 문의했으나 해당 병원도 임신부를 거절했고 결국 200km가량 떨어진 서울 한 대형병원으로 해당 임신부를 이송했다. 임신부는 다행히도 서울에서 제왕절개를 받아 무사히 출산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분만의료기관 매년 감소 추세…관내 분만율 평균 44.5% 불과
해당 소식에 우리나라의 분만취약지의 현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강원대의대 산부인과학교실 이세진 교수팀이 2022년 발표한 '한국의 관내 분만율 현황' 연구에 따르면 2020년 분만 의료기관 개수는 518개소로 2014년 675개소와 비교해 157개소가 감소했고, 분만실은 2020년 496개실로 2014년과 비교해 36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매년 감소하는 분만 의료기관과 분만실 개수로 인해 2020년도 관내 분만율 평균은 44.5%였고, 군 지역의 평균 관내 분만율은 22.1%로 가장 낮았다.
즉 전국 임산부의 55.5%는 다양한 이유로 본인 지역이 아닌 타 지역에서 분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 및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취약지역에 분만산부인과를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시설·장비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복지부는 60분 내 분만의료이용율 30% 미만이면서 60분 내 분만 가능한 의료기관에 접근이 불가능한 인구비율이 30% 이상인 지역을 A등급 분만취약지로, 이 둘 중 하나를 충족하는 지역을 B등급 분만취약지로, A와 B등급은 아니지만 분만 외부유출지수 등을 적용해 취약지로 지정한 C등급 분만취약지로 분류해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이렇게 분류된 분만취약지역은 시‧군 내 의료기관, 보건의료원 중 1개소를 사업수행기관으로 선정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게 되는데, 수행 의료기관 선정 시 해당 지자체는 지역거점공공병원,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순으로 우선해 지원 대상을 선정하게 된다.
이렇게 선정된 의료기관은 1차년도에 개소당 시설·장비비 10억원 및 운영비 2억5000만원을 지원받고, 2차년도 이후는 개소당 운영비 5억원을 지원받게 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속초 산모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관내 분만율은 쉽게 오르지 않고 있다.
강원도 소방본부에 따르면 2020∼2023년 5월까지 헬기를 통해 임신부 등 구급 환자를 옮긴 건수는 714건이었으며, 올해에만 출산이 임박한 2명의 임신부를 헬기 이송했던 것이다.
대형병원‧공공병원 중심 정부 지원에 지역 병‧의원은 '고사직전'…저위험 환자도 대형병원으로
이처럼 정부가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속초에서 분만실이 없어 원정 출산을 떠나는 일이 빈발하는 문제에 대해 대한분만병원협회 오상윤 사무총장(예진산부인과의원 원장)은 정부의 분만취약지 사업 실패를 지적했다.
오 원장은 "분만취약지 지원사업비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전부 합치면 1년에 200억 가까이 된다. 그런데 이 분만취약지 지원이 대형병원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지역의 분만병‧의원들은 소외되고 대형병원과의 경쟁에서 도태돼 분만을 포기하고 있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위험군 임신부들도 모두 대형병원 분만실을 이용해 정작 필요할 때 응급으로 발생한 고위험 산모들이 대형병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임신부는 시시각각 상태가 변하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고위험 산모가 될 수 있다. 대형병원은 이런 고위험 산모를 위해 병상을 비워놓고 환자를 받아야 한다"며 "대형병원 중심의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은 대형병원의 배만 불리는 정책이며 이로 인해 인근 분만 병의원을 말라 죽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분만취약지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오 원장은 "대형병원 중심의 인프라 정책 대신 지역에서 저위험 산모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역 분만 병‧의원을 골고루 지원하는 정책을 통해 관내 분만율을 높일 수 있다"며 "지역 분만 병‧의원은 민간병원이지만 사실상 공공의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민간병원에 대해서도 충분한 지원이 이뤄질 때 분만취약지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