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1월 분만 건수가 100건을 겨우 넘겼다. 12월은 연말이라 계획 임신을 통해 아이를 더 많이 낳지 않는 달이라 분만이 50여 건에 불과했다. 결국 지난달 직원 월급은 85%밖에 지급하지 못했다”
지방 의료취약지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모 산부인과 병원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힘겹게 분만을 유지하고 있는 30병상 규모의 모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 A씨는 7일 메디게이트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서울도 이런 판인데 이번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대책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며 현 정부의 재정 지원 없는 필수의료 지원책에 격분을 토로했다.
A 원장은 “분만을 유지하려면 365일 24시간 당직 의사가 필요한데 지난 주말에는 분만이 0건이었다. 환자가 없어도 당직 의사는 채용해야 하는데, 당직을 꺼리는 분위기와 올라가는 의사 급여와 최저임금으로 분만을 유지하는 데 드는 인건비 부담이 극심하다”고 현실을 전했다.
저출산으로 분만 건수 급감, 산부인과 직격탄
이런 현실로 인해 분만을 전문적으로 하던 산부인과 전문병원의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전문병원인 ‘제일병원’도 방만한 경영 문제도 있었지만 한 달에 약 1000명의 산모가 분만하던 시절에서 출산율 감소로 분만 건수 3분의 1 가량 줄어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경영 위기를 맞아 2021년 해체됐다.
A 원장이 운영하던 산부인과도 원래 60병상 이상 규모에서 30여 병상으로 규모를 줄여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2021년 26만명의 아이가 태어나 합계출산율이 0.81명으로 집계됐다. 그중 서울특별시 합계출산율은 0.63로 전국에 비해 낮았다. 부산시 0.73, 대구시 0.78, 인천시 0.78인데 반해 강원도 0.98, 충청북도 0.95, 충청남도 0,96, 전라북도 0,85, 전라남도 1.0, 경상북도 0.97, 경상남도 0.9 등으로 인구밀집도가 높은 특별시와 광역시의 출산율이 더 낮게 나타난 것이다.
A 원장은 1월 31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대책’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해당 발표를 통해 분만 수요 감소 및 고난도‧고위험 분만 증가로 점점 사라지고 있는 분만 의료기관 감소 문제와 그로 인한 지역별 분만의료 접근성 격차를 해소하겠다며 ‘지역수가’ 도입 및 ‘안전정책수가’ 지급, ‘고위험분만 지원’ 등의 정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복지부가 제시한 ‘지역수가’는 특별‧광역시 등 대도시를 제외했고, 그마저도 엄격한 시설‧인력기준을 갖춘 분만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분만수가를 100% 가산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아이를 낳지 않는 인구소멸도시는 분만 건수가 한 달에 100건도 안 돼, 분만을 위한 인력 등 인프라를 구축하더라도 해당 분만 건수에 대한 가산인 ‘분만수가’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관련기사:최대 300% 분만수가 인상은 ‘허상’…“인구 소멸 지역, ‘분만수가’론 못 버틴다”]
여기에 의료사고 예방 등 안전한 분만 환경 조성을 위한 ‘안전정책수가’ 역시 분만을 담당하는 의사에게 지급되는 것으로 ‘분만 병원’을 유지하는 데는 큰 효과가 없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분만 유지하려면 대기 인력과 보조인력, 시설유지비 등 고정 비용 필요
A원장은 "‘분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산부인과 의사 한 명의 인건비만 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기 인력과 보조인력, 시설 유지비용 등 필요한 비용이 고정적으로 있는데 분만 환자가 없다면 그 비용은 온전히 분만병원이 감내해야 할 비용이 된다"고 호소했다.
A 원장은 “당장 분만하는 사람이 없어서 병원 유지가 어려운데 의사에게 수가를 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분만 병원은 분만 한 건을 받기 위해 산부인과 당직을 서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엄청 쓰고 있다"라며 "정부는 분만하는 의사를 늘리기 위해 이러한 정책을 내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 앞서 분만병원이 망할 것이다. 분만병원이 망하면 그 의사들도 갈 곳이 없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도 감소하게 될 것이다”라며 정책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종별가산 조정에 대해서도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분만 병원 입장에서는 이번에 종별가산도 추가로 빠지면서 병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메리트도 사라졌다. 허울만 좋은 각종 수가정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분만병원들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더 어려운 현실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정부의 정책이 전형적인 현실과 괴리된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정부의 대책은 행위별 수가제 아래에서 건강보험 재정을 통한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식’의 대책에 불과한 만큼, 진정한 필수의료 살리기가 되려면 재정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도 강조됐다.
A 원장은 “과거 분만건수가 46만건일 때 병원을 개업했는데, 분만 건수가 26만건으로 반 토막이 났다. 줄어든 분만 건수만큼 수익도 반 토막이 났다. 그럼 분만병원을 유지하게 하려면 상식적으로 분만 건수 감소에 따른 재정을 지원하는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랜 기간 지역사회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분만을 유지하고 있다. 온 정열을 바친 만큼 분만을 하루 아침에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정부 정책 방향을 보면 우리 같은 작은 병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긍지를 가진 산부인과 병원의 사기를 꺾는 정책에 허탈감 마저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