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는 "해당 의료진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고 사건이 발생한지 4개월이 지난 이후의 구속은 부당하다"라며 "정확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법과 원칙이 아닌 국민 여론에 좌지우지 된 것 같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렇다면 국민 여론과 밀접하면서 평소 의료계와 생각을 달리하는 일이 많은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구속 결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시민사회단체 역시 "의료진의 구속 수사는 과하다. 근본적인 책임은 병원장과 정부가 져야 한다"고 밝혔다.
C&I소비자연구소 “구속 수사 과하지만 현장의 감염관리 책임 인정해야”
C&I소비자연구소 조윤미 대표는 “의료진 구속은 과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구속은 사건에 대한 조사를 보다 치밀하고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라며 “마녀사냥식으로 너무 여론의 눈치를 본 처사로 보인다”고 했다.
조 대표는 “이 사건 외에도 최근 들어 검찰이나 법원이 구속을 결정하는 일이 많아 보인다”라며 “의료계는 구속적부심 심사를 요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현장에서 일한 의료진의 책임이 없다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해석했다. 조 대표는 “신생아 중환자실은 가장 완벽한 감염관리가 이뤄져야 하는 곳”이라며 “원칙은 원칙이다. 여기서 일하는 전문가들은 원칙에 맞춰 인력이나 시설이나 기준을 갖추거나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원칙에 맞는 체계를 갖추고 감염을 통제하는 일에 대해 경영진 탓으로 돌린다면 현장의 의사, 간호사가 필요하지 않다”라며 “국가 자격을 받는 전문가 집단이라면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 때 책임 소재를 가리면서 실형이 맞는 것인지는 법정에서 쌍방 논쟁을 벌여 가려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의협 “의료행위 책임을 국가 아닌 개인에게 맡긴 잘못된 판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의료진의 구속 수사는 과도하고 잘못된 접근”이라며 “의료행위의 리스크를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전가한 미국식 책임론을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미국은 의료진 개인이 의료행위의 엄청난 리스크 비용을 전담하고 유럽은 공적인 영역으로 국가가 분담하도록 하고 있다”라며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라는 제도를 운영하면서 공적 영역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와 달리 법리적으로 미국식 책임론을 적용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일선에서 진료하는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게 되면 지금보다 의료수준이 훨씬 더 퇴보할 수 있다”라며 “의료진이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 진료과를 기피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 위원장은 “이번 결정은 의료제도를 민간에게 맡기는 것으로 해석되고, 큰 파장이 생길 수 있다"라며 "병원에 수가나 인건비를 막대하게 지불하지 않으면 중환자실이나 고위험군 치료 영역에는 엄청난 피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사회적으로 공적 시스템을 강조하는 한국 의료시스템은 미국 시스템과 다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묻더라도 병원 경영진에게 물어야 한다”라며 “병원은 신생아 중환자실의 인력 충원을 하지 않았고 제대로 운영하지 않았다. 의료진 구속은 경영진에 대한 관리 책임은 면죄부를 준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그는 특히 경영진이 초기에 대응을 잘못한 사실이 문제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경영진은 유가족에게 사과를 해야 하고 의료진 구속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며 "병원이 병원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병원장이 사과하고 구속에 대한 책임도 지겠다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사건이 발생한지 4개월이나 지나서 구속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면 초기부터 막아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료진 구속은 일종의 정치쇼인 것으로 보인다"라며 "'의사 때리기'를 해도 보통 사회적인 반감이 별로 크지 않다 보니, 사법당국 역시 부담이 없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제도적 허점 만든 병원과 정부에 책임
보건의료노조는 주사제 분할 사용이라는 잘못된 관행을 방치한 제도적 허점을 만든 병원과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분명히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보건당국은 지난 3월 7일 주사제 분할 사용 후 증량 청구의 개연성이 높은 84개 의료기관을 선정해 자진신고 하도록 요구했다”라며 “이들 의료기관 모두가 이대목동병원과 같은 사고로 이어질 것이라 단정할 수 없지만, ‘잘못된 관행’을 방치해온 제도적 허점이 존재한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잘못된 관행을 방치하도록 한 관리감독의 의무가 과연 이들 구속영장이 청구된 의료진들에게만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며 “당장 자진신고를 요구한 의료기관이 84개에 이른다는 것은 병원과 정부의 감염관리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여실히 보여 준다”고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경찰이 밝힌 잘못된 관행의 책임은 해당 의료진만이 아니라 해당의료기관과 경영진, 보건당국 모두에게 있다”라며 "감염관리시스템과 병원운영시스템의 총체적 부실로 인한 의료사고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보건의료노조 한미정 사무처장은 “구속수사 방침은 반대한다”라며 “이번 구속 결정은 상당히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속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할말이 없다”라며 “다만 유가족들이 의료진의 책임 면제를 반대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일단 법의 해석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한편, 서울남부지방법원은 3일 오전 10시부터 4일 오전 2시쯤까지 이대목동병원 의료진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결과,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의료진 3명(교수 2명, 수간호사 1명)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해 12월 16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 사망사건을 수사한결과, 신생아중환자실의 잘못된 관행에 따라 지질영양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균(Citrobacter freundi)에 감염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3월 30일 의료진 4명에 대해 잘못된 관행을 묵인·방치해 지도·감독의무 위반의 정도가 중(重)하다는 이유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 중 간호사 1명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았던 교수 1명과 전공의 1년차, 간호사 등 3명에 대한 혐의는 인정되지만, 구속 수사 대상에서는 제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