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장기요양기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장기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을 받더라도, 그 사유가 곧바로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에 의한 청구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환수처분 자체는 적법하다고 봤지만, 법원이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에 따른 부정청구가 아니라 ‘법상 원인 없이 지급받은 비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 향후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정지나 과징금 처분 연동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고등법원 제4-1행정부는 지난 5월 13일 사회복지법인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장기요양급여비용 환수결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건보공단이 2024년 1월 16일 원고에게 내린 1억9407만390원의 장기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은 유지됐다.
사건은 노인주간보호센터의 조리원 배치 여부에서 비롯됐다. 해당 기관은 외부 급식위탁업체로부터 국과 반찬을 공급받아 수급자에게 식사를 제공했고, 밥은 별도로 즉석밥을 구매해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요양보호사들이 음식 해동, 즉석밥 데우기, 반찬 배분, 설거지, 간식 준비 등을 수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건보공단은 해당 기관이 조리원을 배치하지 않은 채 장기요양급여비용과 인력추가배치 가산금을 청구했다며 인력배치기준 위반과 인력추가배치 가산기준 위반을 이유로 환수처분을 내렸다.
원고 측은 외부 업체로부터 완제품을 공급받았으므로 급식을 위탁한 경우에 해당하고, 조리원을 상시 배치한 경우와 실질적으로 동등한 수준의 급식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또 현지조사 사전통지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고, 관련 고시가 비례원칙 등에 반한다고도 다퉜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기관이 조리원을 두지 않아도 되는 ‘급식을 위탁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급식을 위탁한 주야간보호기관이 조리원을 배치하지 않아도 되는지는 조리원을 상시 배치해 장기요양서비스와 급식을 제공하는 것과 규범적·실질적으로 동등한 수준으로 급식이 제공됐는지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해당 기관이 외부 업체로부터 국과 반찬만 공급받았고, 밥은 즉석밥을 별도 구매해 제공한 점, 요양보호사들이 해동·배식·설거지 등 급식 관련 업무를 수행한 점, 일부 수급자에게 죽이 제공된 기록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조리원 상시 배치와 동등한 수준의 급식 제공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특히 법원은 요양보호사들이 본연의 업무를 해야 하는 시간에 조리업무를 수행했다면 수급자 돌봄 공백이 초래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조리원 인력배치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장기요양급여비용과 인력추가배치 가산금을 받은 것은 법상 원인 없이 급여비용을 지급받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다만 법원은 원고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장기요양급여비용을 청구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관련 규정이 ‘영양사 및 조리원이 소속돼 있는 업체에 급식을 위탁하는 경우에는 조리원을 두지 않을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급식 위탁의 범위 등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에 원고가 외부 업체에 급식을 위탁했으므로 요건을 충족했다고 오해할 여지가 있었다고 봤다.
또 원고가 급식 위탁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사실을 알면서도 허위, 기만, 은폐 등 사회통념상 부정이라고 인정되는 행위를 통해 급여비용을 청구했다고 볼 증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을 대리한 김준래 변호사(법학박사,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1급 선임전문연구위원)는 판결 주문만 보면 기관이 패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장기요양기관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장기요양기관이 건보공단에 환수비용을 돌려주더라도, 지자체로부터 업무정지처분과 과징금 처분을 모두 받지 않을 수 있는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2008년 장기요양사업이 시작된 이래 최초의 판결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그는 “건보공단이 장기요양기관에 대한 현지조사를 하고 비용환수처분을 하는 경우, 처분사유가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이면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연동해 업무정지처분 또는 과징금처분을 한다”며 “실무상 건보공단은 비용환수처분을 할 때 기계적으로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을 처분사유로 삼아왔고, 장기요양기관들은 지자체의 업무정지처분이나 과징금처분을 받아 결국 폐업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그런데 이번 판결은 건보공단이 애초에 처분사유로 삼은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은 잘못된 사유이고, ‘단순히 원인 없이 받은 비용’이라고 판단했다”며 “이에 따라 지자체의 업무정지처분과 과징금처분을 모두 면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이 사건의 실익이 환수금 자체보다 향후 과징금 방어에 있다고 봤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의 경우 공단 환수금은 약 2억원이었고, 예상 과징금은 약 10억원이었다”며 “공단 상대 소송에서 환수금 자체를 다투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요양기관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예상 과징금처분 10억원을 방어했다는 점에서 더 큰 실익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으로는 공단 환수금을 줄여 지자체의 업무정지나 과징금을 줄이는 방향으로 대응해 왔지만, 이번 판결은 공단 환수금을 줄이는 것과 무관하게 지자체의 업무정지와 과징금을 모두 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밝혔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이번 판결은 건보공단 환수처분과 지자체 행정처분의 관계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환수처분이 있었다고 해서 곧바로 ‘거짓·부정청구’로 단정할 수 없고, 단순 요건 미충족에 따른 법상 원인 없는 수령인지, 허위·은폐·기만이 동반된 부정청구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건보공단 환수처분을 받더라도 업무정지처분 등을 받지 않음으로써 장기요양기관과 입소 어르신들이 모두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며 “장기요양기관 행정처분 대응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