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국민참여형 숙의 토론 의제로 올린 가운데, 환자단체가 건강보험 재정은 탈모 치료제보다 생명과 직결된 중증질환 치료에 우선 투입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29일 오전 11시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 근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숙의는 필요하지만 순서가 틀렸다”며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은 탈모 치료 중심이 아니라 중증질환과 암질환 치료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는 오는 7월 4일 ‘모두의 토론회’ 첫 번째 의제로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다룰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도 탈모 치료제 급여화 방식과 대상, 재정 소요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회는 탈모 환자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유전성 탈모 치료제 급여화에 투입하는 문제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회는 “건강보험은 보험료를 낸 사람에게 똑같이 혜택을 돌려주는 환급제도가 아니다”라며 “건강할 때 함께 부담하고, 질병과 의료비 부담이 큰 사람에게 필요한 치료를 우선 보장하는 사회보험”이라고 밝혔다.
이어 “급여화는 국민적 관심도나 정치적 요구만으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며 “의학적 필요성,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환자의 경제적 부담, 건강보험 재정 영향, 다른 미충족 의료수요와의 우선순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연합회는 4대 중증질환과 암질환 보장률 하락을 근거로 들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 환자 진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건강보험 보장률은 2021년 64.5%에서 2024년 64.9%로 60%대 중반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4대 중증질환 보장률은 84.0%에서 81.0%로 3%p 하락했다. 암질환 보장률은 80.2%에서 75.0%로 5.2%p 떨어졌다.
연합회는 “보장률 현황만 보더라도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가장 절실한 영역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며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를 기다리다 치료 기회를 놓치는 암환자가 있고, 희소질환 환자와 가족은 비급여와 돌봄 부담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희소질환인 KT증후군으로 투병 중인 환아의 어머니인 한국PROS환자단체 서이슬 대표와 확장기 소세포폐암 환자의 딸 허지형 씨가 참석했다.
서 대표는 KT증후군 환자들이 진단 지연, 치료제 부족, 비급여 부담, 돌봄 부담을 동시에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KT증후군은 국내 환자 수가 500명 남짓인 희소질환으로, 완치법은 없고 일부 증상을 완화하는 약물이 시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 대표는 “사회적 차별과 삶의 질 저하가 건강보험 보장성의 기준이 될 수 있다면, 왜 선천성 희소질환 환자들은 여전히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허지형 씨는 소세포폐암 3차 치료제 임델트라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 필요성을 호소했다. 허 씨가 제기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52647명의 동의를 받아 지난 6월 11일 보건복지위원회에 자동 회부됐다.
허 씨는 “소세포폐암 환자들에게 반년은 너무나 긴 시간”이라며 “정식 급여가 결정될 때까지 몇 달만이라도 환자들이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한시적인 지원 방안이라도 마련해 달라”고 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정부에 탈모 치료제 급여화 숙의 과정에서 급여 대상, 기준, 약제 범위, 본인부담률, 예상 이용자 수, 재정 소요 규모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또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우선순위를 생명과 직결된 중증질환 치료 영역으로 전환하고, 2021년 이후 하락한 4대 중증질환과 암질환 건강보험 보장률을 끌어올릴 구체적 목표와 실행계획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년층 유전성 탈모 지원이 필요하다면 건강보험 재정이 아니라 별도 국고 재정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도 냈다.
연합회는 “청년정책은 청년정책답게, 사회정책은 사회정책답게 국고로 추진해야 한다”며 “건강보험 재정은 생명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의학적 필요성이 높은 치료에 우선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