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세계 첫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백신부터 첫 당뇨병 세포치료제, 첫 CRISPR 유전자 편집 의약품까지 202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생물의약품평가연구센터(CBER)는 20여가지가 넘는 신약을 승인하며 여러 '최초' 타이틀을 달성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이 가운데 화제를 불러온 신약과 주요 희귀의약품 등 한 해 동안 어떤 치료 옵션이 새롭게 추가됐는지 알아봤다.
GSK·화이자·사노피, 각기 다른 접종 연령대 첫 RSV 백신 승인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RSV 백신 분야에서는 회사마다 다른 적응증을 허가 받으며, 신생아 및 영아, 노년층에서 연령대별 백신이 확보됐다.
RSV는 전염성이 매우 높은 바이러스로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폐와 호흡기 감염을 일으킨다. 계절에 따라 유행하며, 일반적으로 가을에 시작해 겨울이 되면 절정에 이른다. 폐렴과 세기관지염을 유발할 수 있는 하기도질환의 흔한 원인이지만, 그동안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은 없었다.
가장 먼저 GSK가 5월 60세 이상 성인에서 RSV로 인한 하기도질환 예방을 위해 사용하도록 아렉스비(AREXVY)를 허가 받았다.
같은 달 화이자(Pfizer)의 아브리스보(ABRYSVO)가 동일한 적응증으로 승인을 받으며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8월에는 출생부터 생후 6개월까지의 영아에서 RSV로 인한 하기도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임산부(임신 32주에서 36주 사이)에게 사용하도록 허가 받는데 성공했다.
이 외에도 화이자는 2~5세 건강한 어린이, 기저질환이 있는 5~18세 어린이, 기저질환으로 인해 고위험군에 속하는 18~60세 성인, 면역력이 저하되고 RSV 고위험군에 속하는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백신을 평가하는 여러 임상시험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와 사노피(Sanofi)는 7월 의약품평가연구센터(CDER)를 통해 유아용 RSV 백신 베이포투스(Beyfortus)를 승인 받았다. 첫 번째 RSV 시즌에 태어났거나 진입하는 신생아와 영아, 두 번째 RSV 시즌까지 중증 RSV 질환에 취약한 24개월 이하의 소아가 그 대상이다.
화이자의 첫 5가 수막구균 백신, GSK·사노피 경쟁 판도 바꿀까
수막구균 백신 사업에서도 GSK와 화이자, 사노피 세 회사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동안 수막구균 백신 시장은 사노피의 4가 백신 메낙트라(Menactra)와 멘쿼드피(MenQuadfi), GSK의 4가 백신 멘비오(Menveo)와 1가 백신 벡세로(Bexsero)가 주도해왔다. 화이자 역시 1가 백신 트루멘바(Trumenba)와 4가 백신 니멘릭스(Nimenrix)를 판매하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은 미미했다.
이 가운데 10월 화이자가 세계 첫 5가 수막구균성 백신 펜브라야(PENBRAYA)를 허가 받으며 시장 판도에 변화가 생길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펜브라야는 트루멘바(B혈청군 백신)와 니멘릭스(A, C, W-135, Y 접합 백신)의 성분을 결합해, 침습성 수막구균 질환(IMD)의 대부분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5가지 수막구균 혈청군(A, B, C, W, Y 그룹)을 예방하도록 만들어졌다.
GSK 역시 멘비오와 백세로를 결합한 5가 백신 GSK3536819A의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첫 경구용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허가…네슬레와 공동 상업화
2022년 처음으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신약이 승인받은데 이어 2023년 4월 처음으로 먹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가 승인됐다. 미국 세레스 테라퓨틱스(Seres Therapeutics)의 보우스트(VOWST)다. 두 제품 모두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Clostridium Difficile Infection, CDI) 재발을 예방하도록 개발됐다.
독특하게 보우스트의 상업화를 위해 세레스가 손을 잡은 곳은 제약회사가 아닌 식품회사다. 세레스는 2021년 7월 스위스 네슬레의 자회사 네슬레 헬스 사이언스(Nestlé Health Science)와 미국과 캐나다에서 보우스트를 공동으로 상업화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네슬레 헬스 사이언스는 2020년 인수한 제약 사업부 에이뮨 테라퓨틱스(Aimmune Therapeutics)를 활용하고 상업화 주체의 역할을 맡기로 했다. 세레스는 선불 라이선스 대금으로 1억7500만 달러를 받았고, FDA 승인으로 1억2500만 달러를 추가로 받았다.
첫 혈우병A 유전자 치료제, 제1형 당뇨병 세포 치료제 승인
2022년 세계 첫 B형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 헴제닉스(Hemgenix)가 허가 받으며 혈우병의 유전자 치료제 시대를 열었고, 2023년 6월 첫 A형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 록타비안(ROCTAVIAN)이 허가 받으며 뒤를 이었다.
미국 바이오마린(BioMarin Pharmaceutical Inc.)이 개발한 록타비안은 1회 투여로 환자 스스로 8인자를 생산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3상 임상 GENEr8-1 연구의 3년 분석 결과 치료를 필요로 하는 출혈이 기준시점에 비해 82.9% 감소했고, 8인자 사용을 96.8%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1형 당뇨병 치료 분야에서는 첫 세포 치료제가 탄생했다. 미국 셀트랜스(CellTrans Inc.)가 개발한 란티드라(LANTIDRA)가 그 주인공이다. 란티드라는 사망한 기증자의 췌장 세포로 만든 동종(기증자) 췌장 섬세포 치료제로, 집중적인 당뇨병 관리에도 중증 저혈당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목표 당화혈색소에 도달하지 못하는 성인 제1형 당뇨병 환자 치료제로 승인됐다.
간 문맥에 1회 주입하며, 주입된 동종 섬베타세포가 인슐린을 분비한다. 참가자 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에서 21명이 1년 이상, 11명은 1~5년 동안, 10명은 5년 인상 인슐린을 투여할 필요가 없었다.
첫 낫형세포병 유전자 치료제이자 첫 유전자 편집 기술 활용 치료제 탄생
블루버드(Bluebird Bio Inc.)의 리프제니아(LYFGENIA)와 버텍스(Vertex Pharmaceuticals Inc.)의 캐스게비(CASGEVY)가 12월 7일 나란히 허가를 받으며 낫형세포병(SCD) 치료를 위한 첫 세포 기반 유전자 치료제도 탄생했다.
낫형세포병은 미국에서 약 10만 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유전성 혈액 질환이다. 신체 주요 조직에 산소를 전달하는 적혈구에서 발견되는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의 돌연변이가 주요 문제다. 이 돌연변이로 인해 적혈구가 초승달 모양 또는 낫 모양을 띈다. 낫 모양의 적혈구는 혈관의 흐름을 제한하고 신체 조직으로의 산소 공급을 제한해 혈관폐쇄성사건(VOE) 또는 혈관폐쇄성위기(VOC)를 유발하며, 이러한 사건이나 위기가 재발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장애나 조기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캐스게비는 CRISPR/Cas9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해 FDA 승인을 받은 첫 치료제다. CRISPR/Cas9은 표적 부위의 DNA를 절단하도록 유도할 수 있어 절단된 부위의 DNA를 정확하게 편집(제거 또는 추가, 대체)할 수 있다. 수정된 혈액 줄기세포는 환자에게 다시 이식돼 골수 내에서 생착(부착 및 증식)하고 산소 전달을 촉진하는 헤모글로빈의 일종인 태아 헤모글로빈(HbF)의 생성을 증가시킨다. 낫형세포병 환자에서 HbF 수치가 증가하면 낫적혈구화를 방지할 수 있다.
리프제니아는 유전자 변형을 위해 렌티바이러스 벡터(유전자 전달체)를 사용한다. 환자의 조혈모세포를 유전자 변형해 낫형세포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에게서 생성되는 정상적인 성인 헤모글로빈인 헤모글로빈 A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유전자 치료용 헤모글로빈 HbAT87Q를 생성하도록 한다. 적혈구에 HbAT87Q가 있으면 낫형세포병에 걸리거나 혈류를 차단할 위험이 낮다. 이렇게 변형된 줄기세포는 환자에게 전달된다.
FDA CBER 소장인 피터 마크(Peter Marks) 박사는 "이번 승인은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질병을 표적하고 공중 보건을 개선하기 위해 혁신적인 세포 기반 유전자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의학적 진보를 나타낸다"면서 "이번 승인은 뒷받침하는 과학 및 임상 데이터를 엄격하게 평가한 결과이며, 인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질환에 대한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 개발을 촉진하려는 FDA의 노력을 반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