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중환자들을 돌보다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한 세브란스병원 송주한 호흡기내과 교수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 의료인들의 근무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의사 과로 문제를 짚어보고 중환자실 근무여건 등 처우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송 교수는 2014년부터 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에서 근무해왔고 2018년부턴 중환자실 전담의로 환자들을 돌봤다. 열악한 중환자 진료 환경에도 송 교수는 생전 환자 진료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퇴근을 하지 못하는 날도 많았고 병원에서 야간당직을 서며 쪽잠을 청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결국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도 송 교수가 뇌출혈로 쓰러진 원인을 과로로 인정하고 직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고(故) 윤한덕 센터장·신형록 전공의 등 의사 과로사 문제 해마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사실 의료인들의 과로사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만 해도 지난 2019년 국립중앙의료원 윤한덕 응급의료센터장, 가천대 길병원 신형록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과로로 사망했다.
고(故) 윤한덕 센터장의 경우 당시 서울업무상질병판전위원회에 따르면 사인은 '고도의 심장동맥(관상동맥) 경화에 따른 급성심정지'였다. 판정위는 발병전 1주간 업무시간이 129시간 30분, 발병전 4주간 주 평균업무시간이 121시간 37분으로 과로기준을 훨씬 초과했다고 봤다.
특히 판정위는 발병전 12주간 휴일도 없이 응급센터에서 주야간 근무했다는 점, 응급상황에 따른 정신적 긴장이 크다는 점 등을 업무부담 가중요인으로 봤다.
같은해 가천대 길병원 신형록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도 당직실 내 침대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누운 상태로 사망한 채 발견됐다.
당시에도 판정위는 고 신형록 전공의가 "사망 전 4주 동안 1주당 평균 업무시간은 115시간 32분이고, 사망 전 12주 동안의 1주당 평균 업무시간은 117시간 50분에 달해 장시간 노동이 상당기간 지속돼 극도의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산재를 인정했다.
신 전공의가 사망 5개월 전 인원 부족으로 전공의 4명이 처리해야 할 업무를 2명이 처리하다 보니 피로가 누적됐고 사망 1개월 전부턴 소아중환자실까지 담당하면서 극심한 긴장 상태에 시달렸다는 게 판정위의 최종 견해였다.
OECD 의사 진료량 1위, 중환자실서 주 50시간 이상 과로 54%
우리나라 의료인의 근무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우선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의사 평균 진료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2017년 기준 OECD 회원국의 연평균 환자 1인당 진료횟수는 7.4회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이에 2.3배에 달하는 17해에 달한다.
특히 생사가 오고가는 중환자실 내 과로가 심각하다. 대한중환자의학회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중환자 전담전문의가 주당 50시간 이상 일하는 비율은 54%정도였다.
중환자실 전담전문의의 32%는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주당 50~60시간은 22%, 주당 40~50시간은 19%에 그쳤다.
봉직의사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설문조사 결과, 입원 환자나 응급실 환자 진료를 해야하는 경우 정규 근무와 별개로 야간당직 근무를 해야 하는 봉직의 비중은 27.78%에 달한다.
평균적인 야간 당직 횟수는 1주에 1.43일이었고, 야간 당직 포함 최장 연속 근무 시간은 평균적으로 34.08시간(내과계열 31.08, 외과계열 40)이었다.
특히 야간 당직 봉직의들의 71.68%는 야간 당직 후 충분한 휴식을 보장 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또한 70.67%가 야간 당직으로 인해 다음 날 정규 근무에 지장을 느낀다고 답했다.
야간당직·교대근무가 생체리듬 파괴 심혈관질환·수면장애 등 유발
양적인 근무시간과 더불어 의사들의 야간당직과 교대근무 등이 건강에 가장 큰 악영향을 끼치고 연구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19년 관련 보고서를 통해 노동시간 배치와 관련해 야간작업이나 교대제 등 '일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한 시간에 업무를 하는가'라는 조건이 과로의 요소가 된다고 짚었다.
그 이유는 교대제가 장시간 노동을 하게 만드는 주요 요소로 활용되고 생체리듬을 깨뜨려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노동기구(ILO)도 장시간 노동과 교대 근무 등을 '비정상적인 근무일정'으로 정의하고 해당 근무가 심뇌혈관질환, 정신질환, 수면장애, 암 등 주요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아주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과 연구팀의 2007년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응급 환자를 책임지는 병원 의료진의 교대근무는 생리적 리듬 주기를 파괴해 불면증 등 수면장애를 발생시키고 소화기계, 심혈관계 질환 등을 겪게 될 확률이 높다.
미국 의사들도 과로와 번아웃에 시달리는 것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다.
미국 의료정보사이트 메드스케이프가 2019년 미국 의사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번아웃이라고 생각하는 의사는 전체 응답자의 44%에 달했다. 우울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15%였다.
번아웃이 가장 높은 진료과는 비뇨기과 54%에 이어 신경과 53%, 재활의학과 52%, 내과 49%, 응급의학과 48%, 가정의학과 48%, 내분비내과 47% 등의 순이었다. 반면 공공의료와 예방의학의 번아웃 경험은 28%로 가장 낮았다.
의료계는 지금이라도 의료기관 내 의료인들의 근무환경 개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림대성심병원 박성훈 호흡기내과 교수(대한중환자의학회 홍보이사)는 "의사의 과로는 환자 건강에 영향을 준다. 특히 중환자 전담전문의의 과도한 근무는 환자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수가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전담전문의 가산수가가 전문의 1인당 환자 약 30명을 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 업무부담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한 교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또다른 과로 의사 희생자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 의사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적정하게 근무하고 제대로 진료를 볼 수 있는 의료체계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