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공공데이터 민간보험사 제공 여부가 이르면 이달 중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공단은 개별 데이터 신청 건에 대해서는 심의 기준에 따라 자료제공심의위원회가 결정해야 하겠지만 민간보험사에 데이터를 제공할지 말지 여부 자체에 대해서는 공단이 결단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5일 공단 관계자에 따르면 공단은 최근 민간보험사에 공공데이터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해 가입자∙공급자∙전문가단체 등과 각각 간담회를 가졌다. 현재는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들을 기반으로 재차 각 단체 등과 논의해 최종적인 중재안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공단은 이를 통해 민간보험사에게 데이터 제공을 할지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낸다는 계획이다. 공단이 큰 틀에서 데이터 제공 여부를 결정하면 이후에 심의위원회가 개별 요청건에 대해 심의 기준에 따라 판단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심의위 부담 커지자 공단이 나서...간담회 내용 기반으로 중재안 도출 예정
공단 관계자는 “심의위는 자료가 형식이나 과학 연구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보고 제공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민간보험사에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무조건 불가라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래도 큰 방향은 공단이 제시를 해야 심의위원들이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며 “민간보험사에 데이터를 제공하느냐 마느냐하는 부분에서는 공단에서 미리 체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지속되면서 심의위원들에 가해지는 부담이 커지고 있는 데 따른 행보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는 설령 자료제공 요청이 심의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심의위가 승인 결정을 하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에 공단이 심의위가 심의 기준에만 충실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겠단 취지다.
심의위는 공단 내부 인사 7명, 외부 인사 7명 등 총 14명으로 구성된 독립적 의사결정 기구다. 지난해 9월, 6개 보험사의 데이터 제공 요청에 대해 미승인 결정을 내린 바 있는데, 보험사들이 제출한 연구계획서가 과학적 연구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는 앞서 지난해 7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민간보험사들에게 데이터를 제공하기로 한 결정과 대비되며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보험사들은 아쉬움을 표한 반면, 대한의사협회와 시민단체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후 한화생명이 심위의가 지적한 부분들을 보완해 재차 자료 제공 신청에 나섰고, 지난 1월말 재심의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재심의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고 있는 상태다.
이 관계자는 “가급적 4월 내로 결론을 내려고 하지만 확답은 어렵다. 늦어도 2분기 내로는 마무리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세부적인 논의들이 깊이 있게 진행돼야 한다. 이번에 논의를 진행하면서 논란이 되는 부분들을 깜끔하게 정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계획대로 공단이 민간보험사 데이터 제공에 대해 결론을 내리게 되면 심의위에 재심의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보험 가입 방지∙보험료 인상에 활용할 위험 높아...우려 불식 쉽지 않을 듯
관건은 반대 측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민감한 내용이 담긴 의료 데이터가 재식별되거나 유출될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미 제약사나 의료기기사들은 공공데이터를 제공받아 활용하고 있단 점에서 민간보험사에만 이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국 민간보험사의 공공데이터 제공 요청이 이처럼 거센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약사, 의료기기사가 데이터를 통해 신약과 새로운 기기를 개발하는 것은 기업의 영리와 국민의 이익을 동시에 충족시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반면, 민간보험사는 제공받은 데이터를 자사의 손해율을 줄이기 위해 보험료를 높이고, 보험 가입의 문턱을 높이는 데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보험사들의 수익성 추구와 국민의 이익 확대가 함께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의협과 시민단체가 데이터 제공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도 결국 이 대목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자료제공 요청이 오히려 취약계층, 임산부, 희귀질환자, 고령 유병자 등에 대한 보장확대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간 국내 데이터 없이 외국 데이터에 의존하다보니 오히려 보장 확대나 가입 문턱을 낮추는 데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보험업계의 주장을 신뢰하기 힘들다는 것이 반대 측의 입장이다.
의협 박수현 대변인은 “영리 기업인 보험사들이 공공데이터로 가입자들에게 유리한 상품을 만들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잘 발병하는 질환에 대해선 보험료를 올리거나 가입 문턱을 높이고, 발병이 드문 질환에 대해선 역선택으로 보험료를 낮게 매겨 이익을 추구하는 식으로 흐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 역시 “보험사가 가입자들의 복리나 혜택을 위해 운영되는 게 않느냐”며 “결국 수익을 남기기 위해 손해율을 줄여야 하고, 이를 위해 데이터를 요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이에 대해서는 지난해 9월 데이터 제공 미승인 결정 당시 심의위 내부에서도 의견 합치가 이뤄지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보험사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정보 주체인 국민을 배제하기 위한 것인지 반대로 더 많은 국민을 포괄하기 위한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공단 관계자는 “민간보험사가 데이터를 악용할 수 있는데 이를 어떻게 막을 것이냐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일부이긴 지만 오히려 소비자의 선택권 측면에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의견도 있었다”며 “다양한 의견들 가운데서도 공통되는 부분들을 모아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