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액체생검(liquid biopsy)은 혈액과 같은 액체시료 내 특정 조직에서 유리된 DNA, RNA, 단백질 등을 얻어 암과 같은 질병을 진단하는 기술로, 기존의 조직생검을 대체할 비침습적 검사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예를들어 혈액 속의 순환 종양 DNA(circulating tumor DNA, ctDNA) 수준을 모니터링하면 암 발생 또는 재발을 조기에 발견하거나, 진행성 암에서 환자가 특정 치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저항성을 보일지 등 치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전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일루미나(Illumina)의 자회사인 그레일(Grail)은 창업 1년만에 1조 원에 가까운 투자로 임상연구 자금을 확보해 가장 유망한 바이오텍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다양한 유형의 DNA 가운데 미량의 ctDNA를 정확하게 식별하고, 징후가 없는 사람에게서 암을 발견하고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지 등의 여러 도전과제에도 간단하면서 빠르게 암을 진단할 수 있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관련 업계의 기대감이 높다. 최근 맞춤 암 치료에서 액체생검에 대한 다양한 연구성과들이 발표되면서, 그 유용성과 실현가능성에 대한 근거가 쌓이고 있다.
액체생검, 유방암에서 조직생검보다 무진행생존 향상
최근 미국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2018 샌안토니오 유방암 심포지엄(SABCS 2018)에서는 미국 메사추세츠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연구팀이 액체생검으로 돌연변이 상태를 평가하는 것이 조직생검보다 임상적 혜택이 더 크다는 연구결과(Abstract #GS3-08)를 발표했다.
이는 유방암 임상으로는 처음으로 액체생검의 잠재적인 역할을 입증한 연구다. [관련기사=유방암 임상유전체학 문 열까…알펠리십, PIK3CA 변이 환자 PFS 개선]
연구팀은 노바티스(Novartis) 알파 특이적 PI3K(phosphatidylinositol-3-kinase) 억제제인 알펠리십(alpelisib, 개발명 BYL719)에 대한 3상 임상 SOLAR-1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호르몬 수용체 양성 HER2 음성 진행성 유방암 환자 341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대상자들은 내분비 치료를 받기 전 조직생검을 통해 PIK3CA 변이를 확인한 환자들이었다. 연구팀은 조직 기반 분석 외에도 ctDNA에서 측정한 PIK3CA 변이 상태에 따른 무진행 생존율을 평가했다.
연구결과 조직샘플에서 PIK3CA 변이가 있었던 환자의 질병 진행 위험은 35% 감소했지만, ctDNA 평가에서 변이가 있었던 환자에서는 45% 감소했다. ctDNA 평가 시 무진행 생존기간(PFS)은 3.7개월에서 10.9개월로 향상됐다.
연구팀은 "조직 DNA와 비교했을 때 ctDNA는 돌연변이 프로파일링을 위해 매우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서 "액체생검을 통해 돌연변이 상태를 평가하는 것이 조직생검보다 임상적 혜택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 이번 연구결과는, 이 바이오시료(biospecimen)의 임상적 유용성을 더욱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노바티스는 퀴아젠(Qiagen), 파운데이션 메디슨(Foundation Medicine)과 종양조직 및 혈장샘플을 동시에 사용하는 알펠리십의 동반진단을 개발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알펠리십 승인과 함께 바로 동반진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재 임상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미국·호주 연구팀, 폐암 치료 결정에서 액체생검 실현 가능성 확인
액체생검이 폐암 치료 결정을 내리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메모리얼 슬로언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 호주 시드니대학교(University of Sydney),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기술 회사인 레졸루션 바이오사이언스(Resolution Bioscience)은 11월 28일 국제학술지인 JNCI(Journal of the National Cancer Institute)에 현재 진행중인 연구의 초기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처음 등록된 환자 210명을 대상으로, 비소세포폐암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21개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찾는 액체생검과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의 468개 유전자 암 패널 검사인 MSK-IMPACT를 사용해 동시 조직 NGS를 시행했다. 대상자들은 약물로 표적할 수 있는 변이가 없거나 표적치료제에 반응이 중단된 진행성 비소세포폐암(NSCLC) 환자였다.
연구결과 환자의 45%가 액체생검에서 현재 승인받은 또는 임상시험 중인 의약품으로 표적 가능한 변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약 22%(n=46)가 이러한 약물을 투여받았고, 거의 대부분 종양 크기 감소를 보였다.
액체생검 결과와 종양 조직검사 결과를 비교했을 때 일치율은 56.6%였다. 이는 대상자의 절반 이상이 2개 검사에서 최소 1개의 돌연변이가 공통적으로 확인됐다는 의미다.
액체생검에서 암 변이에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의 89.6%는 종양 조직검사에서 확인한 것과 동일한 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액체생검에서 발견된 암 유발 변이(driver mutations)를 놓고 봤을 때 두 검사 간의 일치율은 96.1%였다.
연구팀은 액체생검 유도 치료(liquid biopsy–guided treatment)가 실현 가능하고 신속하며 유용하다고 결론내렸다. 단 액체생검에서 음성이 나오더라도 환자에게 표적 가능한 변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이 경우 표적 돌연변이를 찾기 위한 조직생검이 필요하다.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 밥 리(Bob T. Li) 박사는 "만약 환자가 액체생검에서 특히 암 유발 변이 양성을 보인다면,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고 조직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즉시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