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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파일] 2018년엔 의료계 기자였는지, 사회부 기자였는지

    후배 의사들에게 암흑기 의료현실 아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길 기대하며

    기사입력시간 2018-12-31 10:35
    최종업데이트 2019-01-01 04:11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응급실에서 겪었던 사건을 제보할 수 있을까요? 환자 보호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뒤에서 저를 때렸습니다. 그 뒤로 온 몸이 떨리고 의욕이 없습니다. 응급실에서 일하기가 너무 싫어요.”
     
    어느 날 새벽, 여성 인턴 전공의 선생님 한 분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메시지로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통화를 했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떨렸고 흐느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제보마저도 힘들어하셨습니다. 이 내용이 기사화되면 자칫 환자 보호자에게 보복을 당할까 두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냥 잊어버리고 싶다고도 하셨습니다. 기자 입장에서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가벼운 폭행 사건은 경찰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소를 하기도 어려워보이더군요.
     
    올해는 유독 응급실 폭행 사건이 많았습니다. 제가 대체 사회부 기자인지, 의료계 매체 기자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용기를 내서 제보를 한 선생님들조차 자칫 보복을 당하거나 병원에서 보호해주지 않을까봐 무섭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사건 발생 때마다 입장을 여쭤봤던 대한응급의학과 임원진의 목소리는 항상 격앙돼 있었습니다.
     
    응급실 의료진을 폭행하면 가중처벌되는 응급의료법이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응급실 폭행 사건 소식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반복적으로 같은 소식을 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가 의료진 폭행범에게 강력한 처벌을 하겠다는 신호를 줬으면 합니다. 우리 사회가 다른 환자들의 원활한 진료를 위해 폭행 예방에 노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랍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사망 사건은 또 어땠나요. 7월과 9월 이 사건의 증인신문 때 며칠간 연달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갔습니다. 피고인이 무려 7명이 되다 보니 증인신문이 상당히 길어지더군요. 이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초기 때와 달리 의료계의 관심이 갈수록 사라지는게 보였습니다. 당시 증인신문의 쟁점은 허술한 역학조사 결과로 의료진이 어떻게 법정 구속이 됐는지에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대목동병원 모교수는 “역학조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다면 지금까지 구속됐던 건 누가 보상하죠?”라고 소리치시기도 했습니다. 구속됐던 의료진 3명 중 조모 교수는 14일, 나머지 박모 교수와 수간호사는 2달동안 구속돼서 수사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이르면 내년 1월이나 2월쯤 최종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횡격막 탈장 오진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가정의학과 전공의(현 전문의) 등 의사 3인 구속 사건도 정말 뜨거웠지요. 의사 3인은 형사 판결과 동시에 법정구속됐습니다. 이번 형사소송은 3년 전 민사소송 판결이 끝난 다음에 제기됐습니다. 이 사건으로 환자들이 민사소송에서 승소 가능성이 있으면 형사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환자들의 권리가 날로 중요시되고 있고 의료소송도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의 불신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누가, 어떻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고갈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혜안이 있는 분이라면 언제든 알려주십시오. 
     
    의료계 정책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대한의사협회 이야기를 해볼까요. 3월 23일 오직 문재인 케어 저지를 위해 최대집 후보가 의협회장에 당선됐습니다. 당시 '최대집 회장'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은 보수단체 활동 이력을 등에 업고 화려하게 시작했습니다.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수시로 오르내렸고 저희 사이트 역시 '최대집 회장' 인물 검색으로 폭발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8개월간 의협의 위상을 지키지 못한 회무에 회원들의 관심이 줄어들다 못해 실망하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의정협상에서 복지부가 마치 강의를 하듯 협상을 시작한다거나, A4용지 4장짜리 허접한 내용의 '더뉴건강보험', 그리고 산하단체가 의협을 비판하면 안 된다는 고압적인 태도, 최근 최 회장 수행기사의 의사회원 욕설 논란까지 나왔습니다. 수가 인상률은 2.7%에 머물렀고 최저임금은 2018년 16.4%로 인상된데 이어 2019년 10.9%로 또 한 차례 인상됐습니다. 반면 의협이 문재인 케어의 점진적, 단계적 추진이라는 협상의 대가로 제시한 진찰료 30%의 인상과 처방료 부활은 요원해 보입니다. 초회상담 30분에 3만4500원에 불과한데도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에 참여해 몇 푼의 수가라도 얻어가자는 회원들이 늘어났습니다. 의협은 올해 5월과 11월 궐기대회를 비롯해 각종 집회와 1인시위 등을 진행했지만 그 자체로는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새해에는 의협이 전략을 재정비하고 회원들을 위한 실제적인 성과를 얻어내길 바랍니다.
     
    정부 정책은 원래 계획대로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습니다. 의료 질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는 가치기반의 심사체계 개편이 시작됩니다. 요양급여비용에서 불가항력 의료사고 분담금 강제징수가 이뤄지고 한방 추나요법에 대한 급여화가 시작됩니다. 응급관리와 중환자 중심이라지만 문재인 케어가 예정대로 진행됩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의 특별사법경찰 제도가 시행됩니다. 지역사회 돌봄을 강화하는 커뮤니티케어가 추진되고 방문간호인력이 보건소의 전담공무원으로 인정받는 지역보건법이 통과됐습니다. 제주녹지국제병원 설립으로 시작된 영리병원 논란과 기획재정부가 만성질환관리 비대면 모니터링을 원격진료로 규정한 것 등을 보면 어디로 튈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각종 의료현안은 진료과별 혹은 직역별 처한 환경에 따라 온도차가 너무 달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가운데, 미래에 필요한 의료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의대생 인공지능(AI) 교육이나 서울의대의 VR 수업, 연세의대의 파이썬 실습 등을 참관해보면서 의대생들과 달리 정작 의료계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1월 방학을 맞은 몇몇 의대생 인턴기자들이 의료현장을 체험하러 회사에 옵니다. 의대생들과 어떤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까요. 의료현실은 암흑기에 빠졌다고 할지, 아니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할지 의사 선배들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2019년 새해에는 의료계에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소식, 희망적인 소식을 가득 전달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종 의료현안을 치열하게 논의하고 밤낮으로 함께 고민해주는 의료계 관계자분들이 계셔서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지식과 지혜를 나눠주시는 칼럼니스트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의료현장 가까이에서 발로 뛰고 상세한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