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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20대 의사의 자살…의사 '과로' 해결 꾀하는 일본

    2024년 4월부터 의사 ‘시간외근무’ 제한 적용…의사 과로 심각한 우리나라도 논의 속도 내야

    기사입력시간 2023-09-05 12:03
    최종업데이트 2023-09-05 12:03

    다카시마 준코 씨가 기자회견장에서 지난해 자살한 아들 다카시마 신고 씨의 사진을 들고 있다. 사진=테레비오사카뉴스 유튜브 영상 갈무리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최근 일본 의료계는 과중한 업무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전공의에 대해 산업재해(산재)가 인정된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일본 고베시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다카시마 신고(高島晨伍·당시 26세) 전공의는 지난해 5월 17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와 형 역시 의사인 다카시마 씨는 중학생 시절부터 의사를 목표로 했다. 꿈을 이룬 그는 2020년 4월부터 고베시 소재 코난의료센터에서 초기연수를 받게 됐고, 2022년 2월부터는 해당 병원에서 소화기내과 전문의가 되기 위한 전문연수를 시작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다카마시 씨는 전공의 수련을 받기 시작한 후 쉴틈없이 이어지는 장시간 근무와 학회 발표 준비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한다.
     
    실제 그는 2월초부터 5월 중순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꼬박 100일을 연속으로 일했으며, 학회 발표 준비에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카시마 씨는 자살 당일 어머니에게 “아침에 나쁜 생각을 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후 연락이 되지 않는 아들의 자취방을 찾은 다카시마 씨의 어머니는 싸늘한 주검이 된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자살 日 전공의 ‘산재’ 인정…직전 한 달 시간외근무 207시간·100일간 휴일 없어
     
    유족은 그해 8월 노동기준감독서에 산재를 신청했고, 12월에는 노동기준법 위반으로 병원을 형사고소했다.
     
    산재 신청 결과는 1년여가 지난 올해 6월 5일에 나왔다. 노동기준감독서는 다카시마 씨의 자살은 장시간 노동에 의한 정신질환이 원인이라며 산재를 인정했다. 노동기준감독서에 따르면 다카시마 씨의 시간외근무가 자살 전 1개월 간 200시간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병원 측은 다카시마 씨의 시간외근무는 30시간 정도였다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다카시마 씨의 어머니 다카시마 준코(高島淳子) 씨는 8월 31일 후생노동성을 찾아 코난의료센터에 대한 조사와 의사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제 아들은 친절한 의사가 되는 것도, 환자들을 구해 사회에 공헌하는 것도 할 수 없게 됐다”며 “앞으로 병원의 노무관리가 개선돼 의사들의 노동환경이 개선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의사 일하는 방식 개혁’ 선언 日 정부…시간외근무 연 960시간 제한
     
    일본의 장시간 근무 문화는 악명이 높다. 과로사를 의미하는 일본어 단어 ‘카로시(過労死·Karoshi)’가 영어사전에 그대로 등재돼 있을 정도다.
     
    일본 의사들 역시 과로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병원 내에서 직급이 낮고 나이가 어린 전공의들일수록 과로를 피하기가 어렵다. 실제 지난 2015년과 2016년에도 도쿄와 니가타에서 전공의가 과로로 자살을 택한 일이 있었다.
     
    다만 이처럼 의사들의 과로에 기대 의료체계를 유지하는 방식은 점차 어려워질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의사의 일하는 방식 개혁’을 기치로 의사 근무시간 줄이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 4월부터 의사의 시간외근무는 법에 따라 기본적으로 연 960시간(A수준)으로 제한된다.
     
    예외적으로 지역의 응급의료 체제 등의 확보를 위해 기본 상한을 초과해야 하는 경우에는 ‘지역의료 확보 잠정 특례 수준’(B수준), 전공의 수련이나 공익상 고도 기능 육성 등이 필요한 경우에는 ‘집중적 기능 향상 수준’(C수준)이 적용돼 연 1860시간까지 시간외근무가 가능하다.
     
    하지만 의료기관이 B∙C 수준의 예외를 적용 받기 위해선 의사 노동시간 단축 계획안 제출 등을 거쳐 도도부현의 지정을 받아야 한다. 일본 정부는 B수준에 대해 2035년을 끝으로 특례를 없앨 예정이며, C수준에 대해서도 시간외근무 상한을 지속적으로 줄여갈 계획이다.
     
    또, 의사는 A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일반근로자에 적용되는 연 72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외근무시간이 설정되는 것을 고려해 연속근무시간 제한, 근무간 일정 간격 확보 등의 추가적인 건강확보 조치를 취하도록 한다.
     
    일본 정부는 이렇게 의사 근무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태스크 시프트·쉐어(Task shift·share)를 추진해 의사의 부담을 경감하면서 의료 관련 타 직종 종사자들이 보다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각 직종의 업무 범위 확대 등을 실시한다.
     
    또, 의대생들이 임상실습 시 의사 지도하에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검증하는 공용시험을 의사국시 수험 자격 요건으로 하고, 실제 해당 시험 합격자가 임상실습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취지를 명확히 한다는 계획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실태 조사에서 주당 80시간 이상 근무하는 전공의의 비율은 52%로 과반을 넘었다. 자료=대한전공의협의회

    우리나라 의사들도 과로 ‘심각’…“의사·환자 위해 정부·국회가 적극 나서야”
     
    우리나라 역시 의사들의 근무시간은 살인적인 수준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36시간 연속 근무 중 사망한 이대목동병원 신형록 전공의, 2018년 과로로 쓰려졌다 지난해 유명을 달리한 세브란스병원 송주한 교수 등이 산재를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특히 전공의들의 주당 근무시간 상한(80시간)은 여전히 일반 근로자의 두 배에 달하는데, 현장에서는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올해 초 발표한 전공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 80시간 이상 근무하는 전공의는 52%로 과반을 넘었다. 24시간 초과 연속근무를 일주일에 3일 이상하고 있는 전공의도 16.2%나 됐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와 국회도 의사들의 과도한 근무시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 대책을 통해 전공의 연속근무 등 의사의 당직, 근무시간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는 전공의 연속근무 시간 상한을 현행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줄이거나, 주당 근무시간을 68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전공의법 개정안들이 발의돼 있다.
     
    다만 논의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번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될지 여부는 불투명한 실정이다. 또, 의사 근무시간 관련 논의가 전공의에 치중돼 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된다.

    강민구 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일본은 예전부터 전 사회적으로 과로사와 과로 자살이 크게 이슈가 돼 왔다. 마지막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직역이 의사인데, 결국은 내년부터 근로시간을 줄이는 지침이 도입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관련 개선책을 검토하고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노재성 노동부회장(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역시 “우리나라 의사들이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의사들의 과로는 의사 본인의 건강은 물론 환자안전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전공의를 포함해 전체 의사들의 근로시간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