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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반의 성공 그친 의사과학자 양성...남은 절반의 숙제는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김하일 교수 "병원 수입원 다양화, 의대 기초연구 능력 향상 등으로 미래 이끌 혁신가 키워야"

    기사입력시간 2022-03-22 14:23
    최종업데이트 2022-03-22 14:23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카이스트(KAIST) 의과학대학원 김하일 교수가 그간의 의사과학자 양성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병원 혁신, 의대 기초연구 능력 향상, 국가의 장기적∙체계적 지원, 혁신가 양성 등은 풀어야 할 나머지 절반의 숙제로 언급했다.

    김 교수는 최근 발간된 대한의학회 이뉴스레터(E-Newsletter)에 3월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지난 30년 동안의 의사과학자 양성 노력이 가진 한계에 대해 진단하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우선 지난 2005년 의학전문대학원 도입으로 시도된 의과학자 양성과정(MD-PhD 과정)이 실패한 원인으로 문화적 특수성, 기존 의과대학과 다르지 않은 교육, 의사과학자 양성에 충분치 않은 의대 연구환경, 양성된 의사과학자들이 진출할 산업의 부재 등 4가지를 꼽았다.

    의전원, 문화적 특수성 등 여러 이유로 실패...의과학대학원도 절반의 성공 그쳐

    그는 문화적 특수성과 관련해 “같이 입학한 학생들은 같이 졸업해야 한다는 사고가 강한 우리 문화에서 전공의 수련 대신 연구 트랙으로 나아가는 소수의 학생들은 동료 집단에서 이탈하게 된다”며 “사회적으로 이런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돼있지 않은 상태에서 소수의 학생들이 별도의 교과과정을 통해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은 지원자의 감소로 이어졌다”고 했다.

    또한 “의전원 제도만 도입했지, 실제 교육에서는 의과대학과 차별성이 없었다”며 “오히려 의전원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예과를 거친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았으며, 임상 위주의 의대문화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더 현실적 선택을 하게 됐다”고 교육 과정에서 문제를 지적했다.

    현재 국내 의대의 연구 환경이 의사과학자 양성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연구력이 높은 다양한 분야의 교수와 이를 뒷받침하는 첨단 인프라, 연구가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효과적으로 융합된 생태계가 중요하다”며 “하지만 진료와 교육의 논리가 우세한 의과대학, 병원의 환경에선 호흡이 긴 연구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젊은 의사들이 의과대학을 떠나 다른 이공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여건도 조성되지 못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성과가 창출되고 이것이 다시 젊은 의사들을 유입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형성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양성된 의사과학자들이 진출할 수 있는 산업도 없었다”며 “우리나라 의사들에게 진료가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수준의 급여를 제공했고, 이를 뛰어넘는 수준의 성공 모델이 창출되지 못했다. 양성된 소수의 의사과학자는 대부분 대학의 교수직이나 해외로 진출하고, 다시 임상으로 돌아오는 일도 빈번했다”고 했다.

    카이스트가 처음 시도한 의과학대학원 모델에 대해서는 ‘절반의 성공’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은 2006년부터 매년 200명 이상의 의사출신 이∙공학 박사를 양성하며 외형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이들 중 상당수가 대학병원에서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며 의학발전에 기여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점들이 많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저수가 의료환경에서 병원으로 돌아간 의사과학자들은 진료 수입 입박과 연구할 시간, 공간 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다”며 “사회가 원하는 혁신가로 성장한 의사과학자 수도 많지 않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지난 실패 교훈 삼아야...병원 혁신∙의대 기초연구 능력 향상∙정부 지원∙혁신가 양성

    하지만 김 교수는 이 같은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지난 30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4가지 숙제를 제시했다.

    그는 우선 “병원의 혁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병원을 가지고 있지만 낮은 의료수가 극복을 위해 의료진들은 격무에 시달린다”며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연구비에서 발생하는 간접비를 직접 병원으로 흡수해 병원에서의 연구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임상연구 환경을 갖고 있다. 여기에 미충족 의료수요에 기반한 병원 중심의 중개연구를 통해 병원의 수입원을 다양화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는 의대의 기초연구 능력을 향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초의학이 완전히 무너지면 의대나 병원에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것도 무너지고 종국에서 임상도 무너진다”며 “기초연구를 잘하지 못했던 이유가 내부 문제도 있지만 기초 연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서임을 인정하고 국가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자체적인 연구능력을 갖춘 2~3개의 의대는 현재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 연구 중심 의대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놨다.

    국가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도 주문했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의사과학자가 되는 진로를 택하고 긴 수련기간을 견뎌낼 수 있게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의사에 대한 국가적 지원에 대해 냉소적인 국민적 감정을 설득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의사과학자 양성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젊은 의사들이 따라 할 수 있는 롤모델을 찾아야 한다”며 “과거 전통적인 의사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의사의 모습에 대한 모델이 될 수 있는 30대, 40대 젊은 의사과학자를 스타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는 정책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끝으로 “미래를 이끌어 갈 혁신가들이 필요하다”며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혁신가를 키우고 그들에 의한 혁신이 이뤄지도록 의료계가 힘을 합쳐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