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기초의학을 연구할 의사들이 크게 줄고 있어 적극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울의대 생화학교실 김종일 교수는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의사과학자 진로콘서트’에서 의사과학자 양성은 필수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안임을 강조했다. 과거에 비해 기초의학 등을 전공하며 의사과학자로 활동할 사람들이 크게 감소한 상태라 십수년 뒤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줄어드는 기초 연구 인력...미국 사례 참고해 의사과학자 양성 지원 늘려야
김 교수는 “지난 5년동안 서울의대 출신으로 의대 졸업 후 기초의학 분야로 들어온 사람은 한 명에 불과하다. 올해 전국 의대 졸업생 중 기초의학으로 간 학생이 몇 명인지도 알음알음 조사해봤더니 연세대에 2명을 제외하고는 없었다”며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임상쪽에서 진료를 보며 기초 연구를 하는 의사들도 줄어드는 추세다. 과거에는 평소 진료에 열중하던 임상 교수들도 해외 연수 기간을 기초 연구에 할애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진료 실적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해외 연수에서 경험만으로는 국내에서 연구를 이어가기 어려워지며 이 같은 사례마저 사라지고 있다.
김 교수는 “서울의대 기준으로 요즘은 해외 연수시에 기초 연구를 하고 오면 망한다는 말이 족보처럼 돈다”며 “과거에는 해외에서 2년 동안 트레이닝 한 것만으로도 연구비를 따고, 랩을 이어갈 수 있었는데 요즘은 의사 외에도 연구진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2년 배운 걸로는 명함도 못내미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김 교수는 기초의학을 살리고, 의사과학자를 성공적으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미국은 의사과학자 양성에 막대한 금액을 쏟아붓는 것은 물론, 의대생들이 이른 시기에 연구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학부과정부터 젊은 교수급까지 다양한 단계의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있는데, 실제 미국 전체 R&D 예산 200조원 중 1조원 이상의 금액이 의사과학자 양성에 투입되고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한 해 R&D 예산이 30조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1500억원 정도는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지원해야 하는 셈”이라며 “우리나라는 아직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연구를 시작하는 시기가 빠를수록 헤딩 분야에 오래 남을 확률이 높다는 점에 착안해 의대생들의 연구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김 교수는 “미국 의대생들은 우리나라 본과 1학년에 해당하는 시기에 연구계획서를 쓰고 여름방학에 인턴을 한다”며 “하버드나 스탠포드의대생들은 대부분이 여기에 참여하는데, 연구계획서를 써내고 학회, NIH, 학교 등에서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직접 수행하는 식”이라고 했다.
이어 “학부생 시절 1년 이상 갭 이어(gap year)를 갖고 연구에 참여하기도 하는데, 스탠포드의대는 그 비율이 75%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몇년 새 국내에서도 의사과학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됐다. 이에 정부가 다양한 관련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고, 일선 대학들도 대학별로 프로그램을 만들며 이에 호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란 평가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 같은 지원 프로그램들이 꾸준히 지속돼야 더 많은 학생과 연구자들이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덜고 연구에 뛰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학생들이나 연구자들의 불만은 안정적이지 못 하다는 점”이라며 “중간에 프로그램이 없어져 버리는 경우도 있고, 지원 기간도 짧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나마 대학에서 지원하는 것은 안정적이란 인식이 있지만, 학생들은 이 같은 혜택 역시 대학을 벗어나면 사라질 수 있단 점을 우려한다”며 “소속 기관이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일과 정부에서 타이틀을 주고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병행될 때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사과학자 나아가야 할 방향은 '창업'...새로운 서비스로 글로벌 진출 노려야
의사과학자로 활동하며 유전체 분석 전문기업 지니너스를 창업한 박웅양 대표(삼성서울병원 삼성유전체연구소장)는 의사과학자의 창업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의사과학자가 궁극적으로 가야하는 방향은 창업”이라며 “공부한 것들로 환자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지만 권장하고 싶은 방향 중 하나”라고 했다.
박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창업시 유의해야 할 점들을 짚었다. 먼저 사업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서비스인지 혹은 일반 헬스케어 서비스인지에 따라 적용되는 규제나 법률 등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박 대표는 “단순히 글로벌 시장의 사이즈가 크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바로 공급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가령 유전체는 우리가 일본보다 우수한데 그런 것을 갖고 글로벌로 어떻게 진출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각 시장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일본 가튼 경우는 실제 건강보험 시장이 반, 나머지 시장이 반 정도라 프라이빗 한 시장이 굉장히 커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포인트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벤처기업으로서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각 기업마다 사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기존의 성공적 모델을 단순히 벤치마킹해서는 안 된다””며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봐야하겠지만 기존 회사를 따라한다고 해서 그 분야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기존에 있는 것들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이미 늦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며 “실제 IT 회사에 간 의사가 2년짜리 계획을 세웠더니 3개월 후에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며 기업에서 그 계획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고 했다.
투자사들에게 사업의 비전과 성공 가능성을 제대로 확신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내가 잘 할 수 있으니까 그냥 투자하라는 식으로는 안 된다”며 “투자를 받는 것은 본인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기술을 갖고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자신있게 설명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