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난치성 두통환자들이 불합리한 급여 조건으로 인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따르면, 올해 9월 시행된 항 CGRP 급여 조건으로는 급여 적용을 받을 수 없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의 'GGRP 표적치료제 급여혜택 강화 촉구' 게시글이 올라왔다.
두통학회에 따르면 두통 환자 중 본격적으로 통증이 나타나기 전에 환자의 독특한 조짐이나 전조 증상이 10~20%의 환자에서 발생한다.
조짐의 유무에 따라서 크게 조짐 편두통과 무조짐 편두통으로 나뉘며, 편두통의 빈도에 따라 월 15일 미만이면 삽화 편두통, 월 15일 이상의 두통이 3개월 이상 지속되고 그 절반(8일) 이상이 편두통이면 만성 편두통으로 진단한다.
만성 편두통은 인구의 1~4%에서 발생하며 치료가 꼭 필요한 심각한 상태다. 또한 매년 2.5~4.6%의 삽화 편두통 환자가 만성 편두통으로 진행하고 있다.
편두통 치료제는 발작 당시에 먹을 수 있는 약과 편두통을 예방하기 위해 먹는 약으로 구분되며, 편두통 발작 당시에는 보통의 진통제(NSAIDs)나 편두통에 특이하게 작용하는 트립탄이라는 약을 사용한다.
편두통이 잦거나 생활에 영향을 줄만큼 심할 경우 ▲베타 차단제(프로프라놀롤, 나돌롤 등), ▲칼슘 채널 차단제(플루나리진 등), ▲일부 항우울제(아미트리프틸린 등), ▲ 일부 항전간제(토피라메이트, 디발프로엑스 등) 등으로 예방 치료를 한다.
편두통 예방 치료에 치료 옵션이 다양하지만 이들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있거나 효과가 없어서 예방 치료에 실패하는 환자들이 있다. 이 같은 환자는 만성 편두통의 경우 보톡스(비급여)를 사용하거나 CGRP를 표적으로 한 항 CGRP 항체 치료제를 처방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앰겔러티가 삽화성 편두통, 만성 편두통, 군발 두통에 허가가 나있으며, 아조비가 삽화성 편두통과 만성 편두통 모두에 허가됐다. 올해 8월까지는 이들 약제는 비급여였으나 올해 9월 1일 기점으로 앰겔러티는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문제는 편두통을 심하게 앓는 환자 누구도 앰겔러티를 급여로 맞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의사들도 CGRP 억제제의 급여 정책에 문제가 많다고 토로하고 있다.
두통학회에 따르면, CGRP 억제제를 맞으려면 최근 6개월간 15일 이상의 두통일수와 8일 이상의 편두통일수가 증명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 최근 6개월간 환자가 직접 작성한 두통일기를 제출·보관해야 한다. 6개월 이상 만성 편두통의 조건을 만족하는 환자면서 편두통 장애 척도가 21점 이상이거나 HIT-6 척도가 60점을 넘겨야 한다.
또한 최근 1년사이 3가지 이상의 경구용 약물의 실패를 증명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실패는 최대 내약용량(부작용이 발생하기 직전 용량)으로 각 약물에 대해 8주 이상 사용을 해도 월 편두통일수가 50% 이상 감소하지 않거나 약물에 부작용 또는 금기가 있어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를 뜻한다.
게다가 대부분 CGRP 억제제는 투약을 중단하면 1년 내로 투약이 필요한 상태로 돌아오는데, 어렵게 급여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급여 투약 기간은 최대 12개월에 그친다.
실제 난치성 편두통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학수고대하던 약제의 급여화에도 혜택을 보지 못하자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GGRP 표적치료제 급여혜택 강화 촉구'를 제목으로 청원을 게재했다.
두통 환자는 청원을 통해 "CGRP 억제제를 비급여 혹은 100% 자기 부담으로 내고 효과를 보던 환자들이 급여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누리려면 CGRP 억제제를 끊고, 8주 이상 안 듣던 약을 다시 먹고, 심평원이 요구하는 기준까지 증상이 악화돼 삶이 망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항 CGRP 치료전 HIT-6 점수가 심평원이 제시하는 60점 이상이었는데, 그 때는 정말로 죽고싶을만큼 두통이 심했다. 이를 6개월 지속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급여를 해주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의 고시대로라면 환자에게 이 약을 급여하기 위해 환자에게 해로운 일을 시키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환자들에게 있어 투약 조건이 매우 불합리하고 잔인하다. 이는 옆 나라 일본과 매우 다른 상황"이라며 "일본은 앰겔러티, 아조비, 한국에는 시판되지 않은 에이모빅(Erenumab) 등 항CGRP 주사제를 모두 급여화하고 있으며, 건강보험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보다 약값이 비싸지만 후생노동성의 적정 투약 가이드라인을 지키고 의사가 특정 학회에 소속된 전문의라면 모두 급여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이 환자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우려해 이 같은 불합리한 급여 조건을 내건 것이라면, 환자에게 부적절한 투약방식을 강요할 게 아니라 본인부담금을 높이는 등 다른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며 "현재의 가이드라인으로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편두통 급여 정책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경종을 울리고 싶다. 현재 많은 환자들이 돈이 없어서 CGRP 표적 치료제를 시도해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편두통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 질병 부담이 적지 않다는 것을 헤아려서 급여 기준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본 진료지침(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환자의 조건은 ICHD-3 기준 편두통을 만족하는 삽화성 편두통 및 만성 편두통 환자 중 평균 두통 일수가 4일 이상이면서 비약물요법에도 차도가 없고 기존 약물(발프로산, 프로프라놀롤, 로메리진)에 효과가 적거나 내약성이 낮거나 부작용이나 금기에 해당되는 환자다. 또한 CGRP 억제제 사용 중 효과가 부족해서 다른 약으로 교체하는 일도 가능하다.
두통학회 조수진 회장(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신경과)도 최근 열린 추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를 통해 "항CGRP제제의 급여기준은 거의 모든 환자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며 "급여 등재라는 것이 완결된 몫이 아니라 이제 다시 평가해야 할 내용"이라고 밝혔다.[기사 항CGRP 제한적 급여 적용으로 '비급여' 투여 대부분…경구용 약제 삭감도 우려]
이미지 학술간사(서울의대) 역시 "항 CGRP를 쓰기 위해 기존 약제를 최대 용량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환자에게 해롭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모호한 기준으로 삭감에 대한 걱정이 있어 보수적으로 쓸 수밖에 없다"며 "보건당국과 논의해서 급여기준 수준을 낮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