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세라 칼럼니스트] 2018년 8월 2일, 오늘은 의료기관 내 폭력을 멈추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7월 1일 발생했던 전북 익산병원 응급실 폭행 동영상을 봤을 때 느꼈던 울분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합니다. 지난 1개월이라는 기간동안 대한의사협회의 여러 사안들을 챙기면서도 의료기관 내 폭력을 멈추게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가장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나 오늘 새벽에 확인해봤을 때 국민청원 참여인원이 여전히 14만여명에 멈춰있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이렇게 되면 오늘 자정까지 국민청원 성사인원인 20만명에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슷한 사건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강릉에서의 진료실 폭력, 전북 전주에서의 응급실 폭력, 그리고 경북 구미에서의 응급실 폭력 사건 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많은 응급실, 진료실 폭력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사회에 더 많이 알려지고 더 공론화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육군 군의관으로 39개월 복무를 했던 필자의 경험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 사연은 누군가에게 누를 끼칠 수 있겠으나, 원만히 해결된 일이고 오래된 일이라 공개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996년 4월의 마지막 어느 날 군의학교에서 모든 훈련을 마치고 대위계급장을 수여받은 뒤에 각각의 부대에 배치를 받을 때였습니다. 마침 필자가 배속받은 부대가 야외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훈련 중인 병사들은 더운 날씨에 지하수로 추정되는 물을 마음 놓고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내심 걱정이 되더군요.
“지휘관님, 병사들이 저 물을 마시는 것은 안전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힘들더라도 끓인 후 마시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군의관, 부대 여건상 그것은 힘들어. 지금껏 아무 일 없었으니 그냥 마시도록 해야 해.”
3일쯤 뒤 자대 복귀 후 병사들이 설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400여명의 병사들 중에 약 160여명이 설사를 하더군요. 사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지휘보고라는 것을 통해 상급부대에 상황을 보고하고 종료해야 하는데, 당시 지휘관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예전에 훈련 받을 때는 논물을 퍼먹고 했어요. 지금 저 물은 깨끗한 겁니다.”
응급실 폭력 사태의 문제도 하루이틀된 일이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의료계가 '옛날 우리 때는 더 했어'라는 방식의 문제 인식이 여기까지 문제를 키운 것으로 보입니다.
원로교수님의 글을 하나 인용합니다.
“사회적으로 의료인들을 보호하는 법안의 발의도 중요하지만, 병원의 경영자가 직원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의료인이 위험한 곳에서 근무하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은 윤리적인 경영이라 보기 힘듭니다. 군대에서 지휘자가 사병을 사지로 몰아 넣는 것과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비록 오늘 국민청원 20만명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이런 사건에 대해 좀 더 치밀하고 성숙한 대응, 그리고 법률적인 정비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의료기관 내 폭력이 사라지도록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의료기관 내 폭력의 문제는 의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환자 안전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리고 의료기관 내 폭력은 의사라는 직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간호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 의료기관내에 모든 직역과 관련돼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의료인들이 의료기관과 응급실에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십시오.
보건의료계 각 단체장 여러분, 응급실이라는 최전선에서 일을 하는 직역이 안전하게 근무할 환경을 만들어 주십시오.
병원장, 의료원장 여러분, 여러분들의 동료이자 제자 그리고 직원들이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여 주십시오.
-대한의사협회 이세라 총무이사 올림-